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작가 Aug 29. 2019

블로그를 왜 해야 하냐구요?

아줌마에겐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다.

김민식 PD는 <매일 아침 써봤니>라는 책에서 드라마 연출을 잠시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자괴감에 빠져 살기 보다 매일 아침 블로그에 글 한 편씩 쓰면서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고 했다. 블로그에 글을 쓰다 보니 매일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를 궁리하게 되고, 그것을 글로 쓰면서 생각지 못한 기회들도 덤으로 얻어 추가적인 수입도 얻었다고 했다.


추가적인 수입이라고? 그러면 좋겠지만 그건 너무 먼 얘기같이 느껴져서 그거보다는 일단 블로그를 하는 데 흥미를 좀 느끼고 싶었다. 블로그에 어떤 것이라도 기록을 하면 흘러가는 하루하루가 적어도 지금처럼 이렇게 허무하게 느껴지지는 않을 거 같았다. 블로그를 하겠다고 마음 먹고 이것저것 시도해 보았지만 전부 며칠 가지 못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블로그에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조차도 스스로 모르는데 재미가 따라올 리가 없었다. 재미가 없으니 꾸준히 할 리가 없었다. 결혼 전에는 나도 분명 취향이 분명한 여자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블로그에 어떤 글을 쓸까, 떠오르는 컨텐츠라고는 육아와 관련된 것뿐이었다. 육아 말고 다른 건 한 게 아무것도 없으니 그럴 만 했다. 재미있고, 생생한 육아일기를 꾸준히 매일 포스팅하는 다른 엄마들이 부러웠다. ‘난 진짜 엄마 자격도 없나 봐, 아이를 위해서라도 할 법도 한데 그 조차도 끈기 없어서 제대로 하지도 못하네’


엄마라면 블로그 해야한다! 이런 법도 없는데, 괜히 혼자서 남의 블로그 기웃거리다가 쓸데없이 비교하고 결국엔 끈기 없는 나를 탓했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건 나도 마음 속에 담아둔 뭔가를 표현하면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또, 나도 나에게 집중할 뭔가를 찾고 싶었다. 전에는 글 쓰는 걸 좋아했는데 왜 지금은 아무것도 쓸 수 없을까? 그때 내 마음은 ‘하고는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 아마도 이게 가장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어떻게 하면 흥미를 갖고 꾸준히 할 수 있을지 그게 가장 고민이었다.   


아이를 재우고 블로그들을 정처없이 헤매고 다니다가 <컨텐츠30일글쓰기과정>이란 제목을 보게 되었다. 30일글쓰기라는 말에 혹해서 들어가보니, 30일간 블로그에 매일 정해진 주제의 글을 쓰면 피드백을 해주면서 돈이 되는 글 쓰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 오, 그래? 나도 한번 해볼까?’ 나는 끈기도 없고 뭘 써야할 지도 모르니까 이런 강제성이 있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았다.


그런데 가만 보니 맨 아래 비용이 있네? 그럼 그렇지.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모든 과정은 온라인으로 진행되는데 무려 30만원이나 했다. ‘글쓰기 어쩌고 해도 결국 블로그 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건데, 이게 무슨 30만원이나해?’ 블로그 하는 게 뭐 대단한 기술이라고?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블로그 아니야? 게다가 나는 한때 홍보를 업으로 삼았던 사람인데, 홍보가 잘 되는 글을 알려준다고? 또 한때는 음악 파워블로거도 했던 사람인데! 그런 내가 돈을 내고 기초라고 생각한 것들을 배울려니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방법을 모르는 건 사실이었다. 인정해야 했다. 과거의 영광을 버리고 다시 모든 걸 시작해야했다. 그때와 지금은 달라도 너무 달라져있었다. 실제로 나도 뭐부터 해야할지 몰라서, 아무것도 못하고있지 않나! 


블로그에서 트위터로, 트위터에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그리고 유튜브로 이어지기까지 업계에 몸 담고 있을 때는 SNS의 변화를 가까이에서 체험했던 사람이었지만, 오로지 아이만 바라보고 지내는 동안 온라인 세상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여전히 사람들이 블로그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은 놀라웠다. 블로그는 이미 한 물 간 채널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처음부터 많은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공부하고 알아가는 것도 좋지만, 나처럼 끈기가 부족한 사람이라면 누군가에게 노하우를 배움으로써 노력의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돈이 든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지만, 투자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이것도 나쁘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모든 30일 과정을 제대로 마치기만 하면 50%는 환급 해준다고 했다. 30만원은 큰 돈이라 느껴졌지만, 반을 돌려준다고 하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여하겠다고 신청을 하고 나니, 돈이 아까워서라도 ‘어떻게든 다 채워서 꼭 환급 받아야지!’ 이런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스스로 돈을 내고 그 돈을 다시 돌려받기 위해 열심히 하는 이상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한달 동안 글쓰기 과정을 함께 할 15명이 되는 사람들이 카톡 채팅방에 모였다. 나처럼 가정주부도 있었고, 중국어 강사, 자영업자, 쇼핑몰 운영자, 직장인 등 다양했다. 자신의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브랜딩을 하기 위해 등등 저마다 이 과정을 듣는 목적이 있었다.


그럼 나는?


무언가에 이끌려 신청 하긴 했지만, 홍보해야 할 제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 자신을 브랜딩할 만한 것도 없었다.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생각의 범위도 한정되었고, 나 조차도 내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할지를 몰랐으니까 30일 글을 모두 완성하는 것이 차라리 목표라면 목표였다. 그렇게 한달 습관으로 자리 잡고 나면 그 다음에는 스스로 흥미를 갖고 블로그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 과정의 특징은 주제가 매일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밤 12시 안에 쓰기만 하면 미션 완성이다. 쓰고 나면 블로그에서 좀 더 효과적으로 글을 쓰는 법에 대해서 피드백을 해준다. 그 효과적이라는 게 자신이 원하는 목적에 맞는 방향으로 글을 쓰는 법에 관한 것인데, 예를 들어 제품을 홍보하는 사람들은 제품이 다른 사람들에게 더 잘 노출되고,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키워드를 설정하고 글을 구성하는 노하우를 알려준다.


첫날부터 5일간 주어진 주제는 의외였다. 나 자신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첫날은 내 소개였다. 이 블로그의 주인이 누군지 사람들에게 알리는 글을 쓰라는 것이다. 소개 글을 쓰라고 해서 의외라고 생각했는데, 내 집에 문패를 걸어놓는 것과 같은 거라 생각하니 그것도 당연했다. 분량은 워드로 2페이지 정도이고, 사진은 15장이 들어가야 하는 조건이었다. 둘째 날은 나의 재능, 셋째 날은 나의 취미, 넷째는 내가 좋아하는 것, 다섯째날은 내가 좋아하는 책에 대해 쓰는 것이다.


나에 대해 쓰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지 몰랐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뭘 좋아하나요? 어떤 일에 재능이 있나요? 아줌마에게는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다. 나 스스로도 말이다. 아무도 묻지 않는 다면 나라도 나 자신에게 물었어야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에 관한 이야기인데 단 한 줄도 쉽게 써내려 가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다. 삶에서 질문이 멈춘다는 건, 성장이 멈추는 것과 같다. 나를 알아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데 발전할 리가 없다. 그래서 내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던 걸까. 


그래도 그날 하루의 미션을 완성하려면 뭐든 써야 했고, 대충 쓰고 싶지는 않았다. 며칠 동안 나에 대해 집중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도통 잘하는 것도 하나 없고, 뭐가 되고 싶은지도 몰랐다. 한때 내가 꿈꿨던 것들은 다 막연하게만 느껴졌고, 꿈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신기루 같은 것들이라 말하기도 민망하게 느껴졌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는지, 강사님은 스스로에게 좀 더 자신감을 갖으면 글을 쓰기가 수월해질 거라고 조언을 해주셨다. 살면서 단 하나라도 잘했다고 칭찬을 받은 일이 있다면 그게 재능이라고 여겨보라고 했다. 내가 이렇게 쓴다고 해서 문제될 거 하나도 없는데도 쉽사리 쓰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그렇다. 문제는 자신감이었다. 글을 쓰려면 억지로라도 자신감을 찾아야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회사 다닐 때도 글을 계속 써왔고, 잘 쓴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스스로도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먼 훗날엔 내 이름의 책을 쓰고 싶다는 꿈도 있었다. 여행을 다니는 것도 좋아했고, 음악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엄마가 된 것뿐인데 나는 왜 이 모든 것들이 다 사라진 것처럼 굴고있을까?


이 5일 동안 나에 대한 글을 쓰면서 처음으로 설레임을 느꼈다. 그리운 연인을 다시 만난 것처럼 잊었던 나를 다시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나에 관한 글을 왜 써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어떤 일의 최종 목적은 결국은 행복에 있다. 그 행복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잘 할 수 있는 게 뭔지를 파악하는 일은 기본이 된다. 그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를 잃지 성장하기 위해 블로그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는 창구 같은 역할이 될 것이라 기대하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블로그 하나 하는 것도 쉽지가 않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