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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작가 Sep 16. 2019

당신의 취향은 안녕하신가요?

내 취향은 말이야


아이들 어린이집 등원 시키고 단골 커피숍에 왔다.

노트북을 켜고 자리 세팅 후 이제 막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모금 들이키려는데 나오던 음악이 끝났다.

새로운 음악이 나오기 시작한다. 잔잔한 기타 선율로 시작되는 이 음악 뭐더라?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cayman island다. 


Kings of Convenience는 노르웨이 출신, 두 명의 남성 듀오다.

한국에서는 '편리왕'으로도 부른다. 한국사람들의 작명 실력이란.


오랜만에 들으니 설렌다. 마지막으로 들은 게 언제더라?

결혼 전 서울재즈페스티벌이었던 거 같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건지.


옆에 친구라도 있으면 호들갑 떨며 물었을 것이다.

"이거 알지? 너무 좋지 않아? 이 가을에 정말 잘 어울리는 음악이야 그치?"

하지만, 내 앞엔 노트북과 텅 빈 의자 뿐;;


....


결혼 전, 나는 취향에 민감한 여자였다. 남자친구를 고르는 기준에도 취향이 한 몫했다.

왜 그럴까,생각해보면 내 취향이 그렇게 대중적(?)인 느낌은 아니었기 때문에

같은 취향을 갖고 대화가 통하는 사람에게는 뭔가 특별함을 느끼곤 했다.


나는 주성치와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좋아했다. 홍상수 감독이 지금이야 김민희와 바람 펴서

많은 사람들에게 질타를 받고 있지만, 내 기준에선 영화가 개봉하면 무조건 달려가서 보는 감독이었다.

인간의 찌질함과 날 것 그대로를 보여주는 그의 영화에 매력을 느꼈다.


(지금은 오히려 불륜으로 더 유명해진 듯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영화관에서 홍상수 영화를 보는 사람은 드물었다.

극장 상영관도 거의 없었다. 압구정 CGV에서 상영해서 가보면 보러 온 사람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홍상수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은 무언의 동질감을 느낀다.

'너의 취향도?'

'너도 굳이 이걸 영화관에서 보는 사람이구나'


결혼 전 썸 타던 남자와 영화관에 간 적이 있다.

내가 홍상수 영화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는 그가 먼저 같이 보자고 했다.


제목은 <옥희의 영화>.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영화 얘기를 하게 되지 않나?

나도,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 거렸다.

"어땠어?"

"글쎄, 난 이 영화가 어렵네.'

"재미없었어?"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를 모르겠어"

"..."

영화에 대한 얘기는 그것으로 끝났다.


그 뒤로도 나는 그에게 수시로 취향 테스트를 했다.

결국 오래가지 않아 '취향 안맞음'으로 만남을 종지부찍었다.

생각해보면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마음에 안들었던 건데 취향이 안맞는 걸 핑계로

우리가 만나지 말아야 할 엄청난 결격 사유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견고해보였던 내 취향은 결혼과 동시에 자취를 감췄다.

.

내 취향보다는 아이의 취향이 우선인 사람이 되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색깔(핑크색), 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엘사), 아이가 좋아하는 음악(겨울왕국).


아이의 취향을 생각하느라, 내 취향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늘 귀에 꽂고 들었던 음악들도 홍상수의 영화들도.


한동안 삶이 왜 이렇게 지루해졌을까, 생각해 봤는데 취향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취향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를 찾아봤더니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이라고 한다.


취향은 오직 '나'만이 갖을 수 있는 고유한 선택의 기준이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보고 싶은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자.


'엄마'로 '아내'로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를 잃지 않고 사는 것도 무척이나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내 취향을 존중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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