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처음 경매 수업을 들었었다. 부동산에 ‘부’자도 모르던 내가 정신이 번쩍 들어 뭐라도 해야겠다는 심정이었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첫째를 바톤 터치하고 교대역까지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끝나고 집에 도착하면 늘 밤 12시가 넘었다. 회사 다닐 때 주말에 영어학원 다니던 걸 제외하고는 처음 듣는 강의였다.
첫날 강의장에 모인 사람들이 각자 자기소개를 했다. 모두들 열의에 활활 불타고 있었다. 나도 예외없이 마찬가지 였다. 강의를 듣기 전 한동안 경매 관련 책을 많이 읽었다. 읽는 동안에는 방법만 알면 금방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40여명의 수강생들이 각자의 사연과 자기소개를 마치자, 강사님은 이런 얘기를 했다. “지금은 여기 있는 분들 모두 다 뭐라도 할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겠지만, 제 경험상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은 이 중에 5%도 될까 말까 합니다.” 얘길 듣고 나는 그 5퍼센트가 내가 될 거라고 확신했다. 아마 그 자리에 있는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본격적인 수업이 1주차, 2주차 진행되면서는 강사님이 이런 얘기를 하셨다. “남들이 한 채, 두 채 계약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나도 얼른 뭔가 해야할 것 같고 그러시죠? 그런데 절대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본인이 쓸 수 있는 자금은 한정되어 있고 그 기회를 한 번 쓰고 나면 다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할지도 몰라요. 신중하세요! 이번이 끝이 아닙니다. 여기 모인 분들 모두 초보인데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덜컥 일부터 저지르고 뒷수습하려면 그게 더 골치 아픕니다. 조급함을 버리세요.”
백 번 맞는 말이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끄덕.
하지만 이성과 감정은 언제나 그랬듯이 따로 국밥이다. 수업을 들으러 갈 때마다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주에 인천에 갭 얼마로 빌라 계약하고 왔어요” “드디어 아파트 낙찰 받았어요” 등 동기들의 발빠른 실행력에 박수 칠 일이 많았다.
내가 수업을 듣는 반의 이름은 ‘병아리반’이었다. 이제 갓 태어난 병아리, 완전 쌩 초보라는 말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벌써 날개를 펴고 훨훨 나는 것처럼 보였다. 반면, 그렇지 못한 나는 병아리는 커녕 여전히 알 속에 있는 것 같은 답답함이 느껴졌다.
“아, 나도 뭐라도 해야되는 거 아닐까?”
강사님의 조급함을 버리라는 말은 그냥 말이고 텍스트일 뿐이었다. 감정은 그 말을 따라가지 못했다. 지금이 아니면 모든 기회가 다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하반기에는 무조건 꼭 1채를 하겠다고 결심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다행이지만 어쩌다 보니 그 계획은 지키지 못했다.
시간이 조금 흘러 둘째 임신을 했다. 그리고 경매가 아니라 분양권을 갖게 되었다. 경매 수업 들을 당시엔 당장 눈 앞에 것 말고는 주위를 둘러볼 여유를 갖지 못했다. 준비도 되어 있지 않으면서 다른 이들의 잘나가는 소식에 마음만 조급했다.
부동산 공부를 통해서 뒤늦게 조급함이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실제로 내가 대출금을 갚지 않고 그 돈으로 일을 저질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쪼르르 인천으로 달려갔다면? 글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일이 생겼을지 장담할 수는 없다. 어쩌면 투자를 더 열심히 잘 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지금은 그때 그 상태에서 뭔가를 저지르지 않길 천만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런 일들이 비단 부동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닌 거 같다. 뭔가를 하려고 할 때 여전히 다른 이들의 성과를 보면 조급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같은 애 엄마인데, 누구는 돈도 벌고 커리어도 쌓고 있네? 나만 뒤처지는 느낌이 든다.
블로그만 봐도 그렇다. 다들 시작은 미천 했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이미 블로그 이웃이 몇 천명에 방문자수도 어마어마하다. 강의를 하거나 책을 냈고 돈도 벌고 브랜딩도 하고 있다.
‘아, 나만 빼고 다 잘나가!’
나는 아무것도 이뤄낸 게 없는 거 같다. 결과물이 없다는 게 마음을 조급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버리기로 했다. 조급한 마음은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준비가 되어 있으면 조급함을 느낄 필요가 없다. 더 좋은 때를 만나서 훨훨 날아가면 될 일이다.
또 하나는, 조급하게 생각해 봤자 얻을 게 하나 없는데다가 실제로 내가 노력한 시간이 그들에 비해 부족하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블로그를 하는 것도, 책을 쓰겠다고 생각한 것도 그들에 비해서 시간, 노력이 부족한 건 사실이니까. 저 만치 가 있는 그들과 나를 비교하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단시간 내에 밀도 있게 경험하고 성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과 노력의 축적이 필요한 부분도 분명 있다.
그걸 간과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 바라기만은 하지 말자는 것이다. 냉정하게 얼만큼의 시간을 투자 했는지도 따져봐야 할 일이다. 고작 몇 개월 해놓고 왜 나는 이것밖에 안되나, 자책할 일은 아니라는 거다.
조급한 마음을 갖고 있으면 쉽게 포기하게 된다. 자꾸 비교하게 되고 이루려는 목표가 너무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니, 조급함을 버리고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사는 것에 충실해보자. 그런 시간들이 쌓이면 나도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