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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작가 Aug 15. 2019

변수들 앞에서 일정해지는 연습


나는 언제가부터 경력단절이나 전업주부 같은 단어들로 정의되기 시작했다. 나의 한계를 완전히 차단해버리는 그 단어들이 싫으면서도 나 조차도 나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몰랐다.


아이가 태어나자 사회적 이슈로만 생각했던 일들이 그 누구의 문제도 아닌 바로 내 문제가 되어버렸다. 역시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집에서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이를 낳고도 회사를 다니던 선배들의 고충을 발톱의 떼만큼도 몰랐던 것이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볼 때와 실제로 엄마가 된다는 것의 차이는 엄청났다.


그 차이를 인정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기쁨과 동시에 한없이 낮아지는 나를 발견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진지하게 나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이 될 것인가

나는 이대로 살아야 하는 걸까

내가 원하는 건 뭘까.


육아를 하면, 지금까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침해(?)를 받기 시작한다. 원하는 때에 잠을 잘 수도 없고 먹을 수도 없고 쌀 수도 없는 일들이 매일 같이 반복되면서 나를 찾고 싶은 욕망이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것이다.


그것은 취업이나 시험 등 어떤 특정한 목적을 둔 취준생의 고민과는 차원이 다르다. 순수하고 깊게 진짜 ‘나’를 찾고 싶은 마음, 그 답은 나 외에 는 그 누구도 알려줄 수가 없다. 내가 풀어야 할 숙제다.


어떻게 하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그 고민으로부터 시작 된 것이 바로 자기계발이었다. 자기계발은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이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단순히 그 자체로 자기계발을 설명할 수는 없다. 내가 하는 자기계발은 남들보다 더 스펙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과정이고 연습이다.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이나, 잊고 지냈던 것들을 다시 깨우치면서 나를 좀 더 이해하게 된다. 나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질수록 나는 나를 더 사랑하게 된다. 


아이 키우면서 자기계발하는 게 사실은 쉽지 않다. 변수가 참 많기 때문이다. 꾸준히 뭔가를 해보겠다고 마음을 먹어도 작은 사건이라도 생기면 금새 흐트러지곤 했다. 그런 것들이 여러 번 반복되면서 ‘나란 인간이 역시나 끝까지 하는 게 없네’ 라고 좌절하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극복해 나가면서 끝까지 하는 것이 또 다른 차원에서 자기계발의 목표가 되었다.


집안 행사나, 아이들 문제 등 여러 방해(?) 요소들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 지 모른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어린이집을 다니다 보니 각종 전염병이나 감기에 자주 걸리는 것 같다. 둘째의 경우는 중이염이 수시로 걸리는 듯 하다. 감기에 열이라도 나면 집에서 아이를 돌봐야 하므로 나의 루틴이 무너진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무너진 내 일상이 아니라, 소중한 아이라는 사실이다. 자기계발도 중요하지만, 가족이 가장 중요하니까.


사실 마음 먹고 뭔가를 해보려고 하는데 자꾸만 내 문제가 아닌, 다른 일들이 생길 때 한계가 느껴지기도 한다. 예전 같으면 이렇게 며칠씩 일상이 무너지고 늘 하던 것들을 하지 못하면 금방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핵심은 끈을 놓지 않는 것이다. 아이를 돌보는 걸 최우선으로 하고, 그 뒤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계속 해나가는 것이다.


지금은 ‘나에게는 새벽 두 시간이 있으니까’ 라는 마음으로 그 두시간 동안만큼은 내가 하고자 했던 일들을 한다. 그리고 나머지 아이에게 집중한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하고 자기계발만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직장을 다니던, 자영업을 하던, 전업주부던 각자의 역할에 따라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더 가치가 있는 것이다.


엄마의 자기계발은 변수가 많기 때문에 쉽지 않은 거 같다. 나도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동안만이라도 온전히 전부 내 시간으로 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럴 수가 없다. 내가 해야하는 일들이 있고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 나의 자기계발은 변수들 앞에서 일정해지는 연습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예전처럼 쉽게 무너지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어떤 것에도 흔들림없이 계속 해나가는 힘을 기르기 위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로 매일 나를 다독인다.


새벽4시40분, 아이의 열이 내리길 기도하면서 잠든 아이를 뒤로하고 거실로 나와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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