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입대 전, 아들과의 1박 2일
새로운 일을 시작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큰아들의 해군 입대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필요한 물건을 알아서 사면 돈을 주겠다고 했더니 아들의 대답은 늘 “내가 알아서 해!”였다. 벌써부터 정을 떼려고 하는 것인지, 이제 성인이니 참견 말라는 것인지, 둘 다여도 여전히 너는 내 마음속 아이인 것을, 평생 신경이 쓰이는 것을, 너는 아는지….
아들은 과외알바를 그만두고 열흘 남짓 신나게 놀러 다녔다. 군대 잘 다녀오겠다고 대학교에, 동아리에, 고교 동창들에게 신고식을 하고 바쁜 아빠를 대신해 작은 아빠와 둘이 낚시를 다녀왔고 우리 친정식구들과도 서울에서 인사를 진하게 하고 온 모양이었다.
시시때때로 주변 호수를 돌아다니며 배스를 한번 낚아 보겠다고 어슬렁거렸다. 손맛을 봤다면서 창원으로 떠나기 전날에는 단짝 친구와 1박 2일 호수 선상 낚시까지 다녀왔다. 낚시에 진심이었다. 질투가 날 정도였다.
아들은 대학에 들어가 창원 NC팬이 되어왔다. 해군 입대전날 창원에서 NC와 기아의 경기가 있는데 그걸 보고 가겠단다. 게다가 시골 어머님, 아버님은 큰 손주 군대 가기 전 얼굴 한번 봐야겠다며 우리의 여정에 손을 얹혔다. 아니 조심스럽게 물어보셨다. 나는 어버이날 바빠서 못 내려간 죄가 있으니 그렇게 하시라고 선뜻 말씀드렸다. 남편은 창원에 숙소를 예약했고 아들은 야구장 티켓을 예매했다. 입대는 월요일, 경기는 일요일. 시부모님은 토요일에 올라오셨다.
“야구경기가 일요일 2시야? 저녁 경기가 아니고?”
6시쯤 경기가 끝나고 2시간 30분이면 9시쯤 집에 도착. 다음날 오전 9시 출발, 피곤할까? 집에서 자도 되지 않나?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호텔비용도 비용이지만 남겨질 두 아이가 신경 쓰였고 큰아들에게 하루라도 내손으로 지은 밥을 한 번이라도 더 먹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남편과 아들이 야구를 보는 사이 나는 백화점 구경을 하거나 카페에서 책을 읽고 싶었다. 시부모님은? 관광이라도 시켜드려야 하나? 오식이(차이름)는 내가 운전하기도 부담스럽고 낯선 창원을? 내 입이 앞으로 점점 튀어나왔다.
“호텔 취소하면 안 돼?”
거실에 있는 시부모님에게는 들리지 않게 남편에게 속삭였다.
“어머니, 아버지는 호텔 근처 시장구경하시면 돼.”
남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해? 취소하면 안 돼?”
남편의 얼굴이 내 쪽을 향해 일그러졌다.
“그럼, 자기가 아들이랑 야구 봐. 내가 부모님 관광시켜 드릴게.”
그것도 생각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내가 야구에 대해 뭘 아나…. 아들과 둘이 있으면 야구 보는데 말 시킨다고 면박을 줄 게 뻔하다. 남편은 스포츠 광인데, 나 만나서 숨기고 살다가 아들이 커서 이런 기회기 생긴 건데…. 결국 내가 마음을 접기로 했다.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했으니 상황을 뒤엎으면 안 될 것 같았고 무엇보다 아들의 계획을 망칠 수 없었다.
“아들! 짐은 다 챙겼어? 방 정리는 다 했고? 빨래 줘!”
여전히 꽉 닫힌 방문 앞에서 소리를 높인다. 아들의 대답이 어쩐지 시원치가 않아서다.
“물건은 다 샀어?”
여전히 대답이 미온적이다. 2층 아들 방에서 내려왔더니 남편이 「해군병 703기」 입영 안내문을 내밀었다. 목요일까지 홈피가 열리지 않았는데, 금요일에 열렸다면서.
“뭐야 크게 좀 빼오지.”
나는 작디작은 글씨를 꼼꼼하게 읽고는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아들! 입영통지서 출력했어? 은행 앱은 깔았고? 은행가야 해?”
“요즘 누가 은행을 가? 내가 다 알아서 해!”
해군 입대 전, 아들과의 1박 2일
다음 날, 일요일 아침 9시에 출발하기로 했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김밥을 쌌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아침마다 다양한 김밥을 싸서 먹였는데, 혹시 먹고 싶을까 봐 늦어서 아침을 못 먹을까 봐. 아들은 미역국과 김밥을 든든히 먹었다. 그리고 김밥 도시락도 챙겼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는데, 입영통지서 출력이 안 된단다. 어젯밤에 하지…. 10시가 다 되어서야 출력이 되었다.
드디어 해군 입대를 위해 우리는 창원으로 하루 먼저 떠났다. 세단 오식이가 우리 다섯을 태우기에는 편안함을 주지 못 했다. 한 시간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남편은 우리 셋을 숙소 로비에 내려놓고 오식이를 주차해 두고 택시를 타고 가버렸다.
그새 점심시간이 다 되었다. 김밥을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호텔로비에서 먹을 수도 없고 해서 우리는 공원으로 나가서 먹기로 했다. 공원으로 걷다 창원 특례시 앞 광장이 있는데, 그늘 한 점이 없었다. 아버님은 배가 고픈지 가로수 옆 화단에 앉아 먹자고 하신다.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김밥을 괜히 쌌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아들과 함께 소풍 나온 기분으로 먹고 싶었던 건데 말이다. 우리는 대형마트의 푸드 코트로 들어갔다. 피자 한 조각과 탄산음료를 시키고 김밥을 함께 먹었다. 어머님이 맛있다고 잘 먹었다고 하셔서 한숨 돌렸다.
그리고는 뭘 할지 고민했다. 시부모님은 따가운 햇살과 많이 걷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셨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을 구경하는 것도 싫다고 하셨다. 결국 두 분은 다시 숙소로 가셨다. 로비에서 앉아 기다리다 4시에 체크인을 하시겠다고. 나 보고는 볼일을 보라셨다.
나는 어디를 가든 그 지역 백화점 구경을 좋아한다. 작은 지방도시에 살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둘러봐도 재밌고 신이 난다. 나는 원피스와 셔츠블라우스를 샀다. 아들 입영식 때 입으려고.
아들이 응원하는 NC가 힘없이 져서 야구가 일찍 끝났다. 아들의 기분은 별로겠으나 입영물품을 사야 한다니 나는 시간을 벌어줬다고 속으로 좋아했다. 알아서 한다더니 하나도 안 샀단다. 남편과 아들은 대형마트에 들러서 필요한 물건들(샴푸, 바디 샤워, 세면도구, 선크림, 두루마리 휴지, 귀마개, 충전기, 무릎 보호대, 발목 보호대, 깔창 등)을 샀고 안경점에서 저렴한 안경을 하나 더 새로 맞췄다. 나도 백화점 쇼핑을 마치고 안경점으로 가 만났다. 안경이 좋을지, 렌즈가 좋을지 모른다며 콘택트렌즈까지 여분을 준비하고 인공눈물과 감기약, 밴드까지 단단히 샀다.
아버님이 맛있는 저녁을 사 주시겠단다. 아들은 숯불구이 삼겹살이 먹고 싶다고 해서 근사한 저녁을 배불리 먹었다.
아뿔싸!
손목시계를 못 샀다. 대형마트로 달려갔으나 시계 점은 문을 닫았다. 그렇게 하루 일과를 마치고 숙소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그때까지도 아들은 머리를 자르지 않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저 여행 나온 기분이 들 뿐이었다.
다음날 호텔조식을 먹으며 여유를 즐겼다.
“일찍 오니까, 요리 안 해도 되고 여유롭고 좋다.”
“취소하라며?”
남편 말에 내가 슬쩍 눈을 흘겨 주었다. 우리 둘은 만족감에 아침을 두 접시나 먹었다. 늦게 일어난 아들은 입맛이 없는지 간단히 국과 밥을 먹고 커피만 마시고 먼저 올라갔다. 체크아웃은 10시. 시부모님과 로비에서 만났다.
드디어 아들이 머리카락을 밀러 혼자 미용실에 갔다. 걱정이 돼서 우리가 아들을 마중 나갔다. 앳된 얼굴의 모자를 눌러쓴 아들이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걸어온다. 조금 실감이 났다. 낯설지만 오히려 아기 때 얼굴이 보였다. 끝내 모자는 벗지 않았다.
이마트에서 손목시계까지 구입하고 우리는 진짜 진해 해군교육사령부로 갔다.
주차가 걱정되어 일찍 갔더니 아직은 들여보낼 수 없단다. 아들은 커피를 찾고 케이크 쿠폰을 써야 한다 하고 아버님은 점심을 먹어야 한다 하시는데, 아들은 입맛이 없단다. 긴장이 되고 실감이 되는 모양이었다. 끝내 아들은 점심을 먹지 않고 커피와 케이크 한 조각만 먹었다.
우리는 해군교육사령부로 들어갔다. 먼저 온 부모들과 아들들이 그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는 아들이 잘 보일만한 데를 찾았으나 아버님은 그늘에 앉아야 한다고 앞장을 서신다. 중앙이 잘 보이지 않는 끝자리였다. 그냥 앉았다. 아들은 고교동창생을 찾느라 전화통을 붙들고 있었지만 아들과 사진 한 장이라도 더 담으려고 나는 아들 옆을 지켰다. 거의 한 시간을 앉아 있는데 아들을 선뜻 만질 수도 안을 수도 없는 긴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아들 오른쪽에 앉은 시부모님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문득 순식간에 눈물이 흘렀다. 옆에 있는 아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하늘을 보며 휴지로 눈물을 찍어냈다. 어느새 자라서 어깨가 떡 벌어진 아들이 내 옆에 있는데, 곧 국방의 의무를 위해 헤어져야 한다는 생이별이 참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좀 실감이 나니?”
아들은 말이 없다.
고교동창 친구가 도착했다.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함께 간다니 조금 안심했다. 다시 자리로 돌아왔을 때, 갑자기 들리지도 않는 스피커 소리에 일제히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일어섰다.
드디어 연병장으로 아들들을 불러낸 것이었다. 아무 말없이 옆에 있던 남편은 때마침 없다. 당황한 나는 어색하게 말을 꺼냈다.
“아들, 한번 안아 줘.”
머뭇거리던 아들이 겨우 짧은 포옹을 남기고 할머니까지 안아주고 아래로 내려갔다.
“아빠는 못 와. 화장실 줄이 얼마나 긴데.”
뭐야 계속 앉아있다 이 중요한 순간에 화장실을?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동시에 나는 더 좋은 자리로 이동하고 싶다고 했더니 아버님은 이쪽이라고 나는 저쪽이라고 앞장을 서며 마음이 흩어졌다. 그 사이 남편이 화장실을 포기하고 왔다. 겨우 아들 가슴을 한번 두드리고 아들을 보냈다. 그리곤 다시 화장실로 갔다.
내가 아버님과 자리를 선택하는 동안 사람들은 아들들이 내려간 연병장까지 따라 내려가 자기 아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돌아오고 있었다. 뭐야. 나도 그럴 걸…. 남편은 사라지고 자리다툼이 뭐람. 다시 후회가 확 밀려왔다. 나는 아들이 어디에 줄을 섰는지도 못 보고 수많은 아들들 속에 우리 아들을 놓쳐버렸다. 벌써 아득하고 현기증이 밀려왔다.
가끔씩 자기 아들을 만나고 싶다는 부모들이 내 앞에 선 장교에게 부탁을 했지만 장교는 단호하게 안 된다고 돌려보냈다. 이제 진짜 못 본다. 5주 동안. 흐릿했던 현실이 한꺼번에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온몸으로 실감했다. 그 순간 눈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따가운 햇살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고 그 햇볕에 서 있을 아들을 생각하면 편히 앉을 수도 없었다. 나는 해가 쨍쨍 비추는 잔디밭 맨 앞에 서서 손을 들어 해를 가렸다. 멀리서 아들이 나를 보고 내가 여기 있노라고 알리고 싶었다. 어제 산 원피스를 입고 내가 보이지 않는 아들이 나를 봐주기를 멀리서 알아봐 주기를 바라며 입영식이 끝날 때까지 서 있었다. 시부모님과 남편은 잊고 있었다.
뙤약볕에 선 우리 아들이 모자를 쓰고 간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집 아들인지 초록색 후드를 입고 서 있으니 멀리서도 아주 잘 알아볼 수 있었다. 우리 아들은 까만 티에 까만 바지라 어디를 봐도 알아볼 수 없었다. 둘째는 빨간색 티를 입혀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디에 서 있어도 잘 보이게.
아들들은 ‘어머님의 은혜’를 부르고 큰 절을 했다. 조금 전까지 부모 옆에서 시선을 외면하고 있던 아들들이 잔뜩 군기가 들어차는 데에는 채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 아들은 해군 훈련병이 되었다.
남편은 아이들이 연병장 트랙을 돌며 우리에게 인사를 할 것이라고 했지만, 아들들은 뒤로 돌아 곧바로 신병교육관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빨리 움직입니다!”
군기가 바짝 든 교관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의 행렬을 따라 나도 뛰었다. 아들을 찾을 수 있을까 한 번 더 볼 수 있을까 해서. 그러나 찾을 수 없었다.
“당신 어디 있었어? 저기 우리 아들 있다!”
뒤따라온 남편 덕에 아들 이름을 한 번 더 불러봤다. 아들은 옆으로 살짝 시선을 돌리다 앞을 보고 들어가 버렸다. 나는 아들이 아직 핸드폰을 가지고 있을 테니 급하게 문자를 보냈다.
「아들 잘 있다와. 사랑해 ♡♡♡♡♡」
하지만 1자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폰은 일주일에 두 번. 주말 한 시간씩 허용이라고 한다. 훈련병으로의 5주를 무사히 마치고 1박 2일의 휴가를 학수고대한다.
아들이 벌써부터 보고 싶다. 기숙사 생활을 해서 멀리 떨어져 있어 봤지만, 아무 때나 연락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지 차이다.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은 다르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 아들을 두고 오는 엄마들의 심정을 아빠들은 모른다.
돌아오는 길에 아버님은 어머님 식사를 챙기신다. 휴게소에 들러 식사를 주문하셨다. 며느리가 집에 들어가 식사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게 아버님의 배려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나는 아들이 점심도 먹지 못하고 들어가 도저히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아들의 응원으로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나는 내일 만날 아이들을 위해 수업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 아들은 잘 견뎌내고 잘 해낼 것이라고 믿는다. 나도 하루하루 열심히 일을 하며 널 기다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