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아빠가 됐다』, 조기현
‘돌봄’이라고 하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나요? 노부모를 간병하거나 아이를 키우는 모습처럼 막연한 이미지만 스칠 뿐, 정작 자신의 경험 속에서 뚜렷한 순간을 떠올리긴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특히 청년이라면 더더욱 그럴 텐데요. 아직 누군가를 돌본 적이 없거나, 돌봄을 받았던 기억이 흐릿할 수 있습니다. 혹은 언젠가 그런 순간이 올 거라는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을 수도 있겠죠.
조기현 작가의 에세이 『아빠의 아빠가 됐다』는 스무 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돌봄'을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과정을 기록합니다. 예고 없이 알코올성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간병하는 과정은 단순한 개인 서사를 넘어 ‘돌봄의 사회화’라는 문제의식으로도 확장되는데요. 에세이라는 문학적 형식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 이 이야기는, 돌봄이 한 개인에게 어떤 현실로 다가오는지 생생히 보여주며 돌봄의 의미를 다시 묻습니다.
구청을 나와 서류 뭉치를 들고 버스를 기다렸다. 출근하는 사람들 모습이 낯설었다. 아무 탈 없이 출근하고 퇴근하는 삶들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내 곁을 자연스럽게 흘러 지나갔다. 넋 놓고 세상을 바라보는 짓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보였다. 쓰레기통에 서류 뭉치를 버렸다. — 『아빠의 아빠가 됐다』, 40쪽
‘가난의 경로를 탐색하는 청년 보호자 9년의 기록’이라는 부제만으로도, 저자가 어떤 사회적 조건 속에서 돌봄을 수행해야 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청년'이자 '가난'한 보호자였던 그는 아버지를 홀로 돌보며 수많은 어려움에 직면하죠. 이처럼 돌봄은 개인이 처한 사회적 조건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경험됩니다.
저자가 겪은 9년 간의 돌봄은 한 통의 전화로 예고 없이 시작됩니다. 수리 기사인 아버지가 일하던 중, 갑작스럽게 쓰러졌다는 연락이었죠. 아버지를 중환자실에 입원시키기 위해선 연대보증인 서명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스무 살에 불과했던 저자는 만 24세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서류에 이름을 쓸 수 없었습니다. 실질적으로 병원비를 마련하고 간병까지 도맡을 보호자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입원이 늦어진 건 저자의 나이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배경에는 돌봄을 함께 감당할 사람이 없었다는 현실도 있습니다. 어릴 적 부모님의 이혼 이후, 아버지와 단둘이 살아온 저자 주변엔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마땅히 없었습니다. 연락이 끊긴 친척들과는 교류가 거의 없었고, 그 관계들은 오히려 더 부담스럽고 껄끄럽게 느껴졌죠.
이후로도 저자는 아버지를 돌보는 과정에서 경제적 어려움에 계속 부딪힙니다. 책 소개 문구를 빌리자면 당시 그는 “고졸 흙수저”에 불과했고, 간병비나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공돌이”, “노가다”로 불리는 노동을 전전합니다. 공공기관을 찾아가도 제도적 지원을 받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의 위장 이혼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아버지 앞에 실비 보험이 있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따로 살아온 동생의 소득까지 합산하면 기준을 넘길 거라는 이유로, 반복해서 도움의 문턱 앞에서 막히기도 했죠.
그의 생생한 경험은 돌봄이 특정한 사회적 조건과 맞물릴 때 얼마나 더 복잡하고 어려워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청년, 한부모 가정, 취약계층뿐 아니라 조손 가족, 비혼 1인 가구, 동성 커플처럼 정상 가족의 틀에서 벗어난 다양한 삶의 형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돌봄이 필요한 순간 더 많은 제약에 부딪힐 수 있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돌봄 문제에 취약한 이들을 제대로 지원하지 못하는 제도의 한계와 공백을 생생하게 드러냅니다.
적금을 깨는 정도로 안 되겠구나, 빚을 지겠구나, 마음의 준비를 했다. 내가 배우고 싶은 일, 하고 싶은 일을 오랫동안 못할 듯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멀어진 내 미래에 언제 닿을 수 있을지 몰라서 초조해졌다. 나는 왜 앞 발을 이 사람을 살리려고 할까. 화가 났다. 화를 억누르지 못해 씩씩거리면서도 아빠에게 산소를 주려고 손을 오므렸다. 사이렌을 울리며 꽉 막힌 도로를 뚫고 나가는 엠블런스가 꼭 바다를 가르는 배를 떠올리게 했다. — 『아빠의 아빠가 됐다』, 78쪽
그런데 저자가 생각해 둔 책의 제목은 따로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나는 효자가 아닌 시민이다’라는 문장이었습니다. 그가 아버지를 간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주변인들은 그를 ‘효자’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 호명을 거부합니다. 자신의 일을 효심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책임으로 바라보죠. ‘나는 효자가 아닌 시민이다’라는 문장은 그런 뜻을 담은, 돌봄을 수행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하려는 선언입니다.
가족 구성원을 돌보는 누군가를 ‘효자’라고 부를 때, 돌봄의 책임은 가족 구성원 개인에게 도덕규범으로 부여됩니다. 이때 돌봄은 사회적·공적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할 권리가 아니라, 가정 내에서 사적으로 처리되어야 할 미덕으로 머무르게 되죠. 이처럼 돌봄의 책임이 (가족 구성원) 개인에게 부여될 때, 돌봄은 종종 제공자의 삶을 방해하는 부담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저자는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청년이었지만, 돌봄으로 인해 개인의 시간은 점점 사라지고 금전 부담은 커져만 갔습니다. 한 번은 아버지의 건강이 위급해지자 적금을 깨고 보증금까지 빼야 했는데요. 그렇게 한 번 더 영화감독이라는 자신의 꿈과 멀어지게 됐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아버지의 현재와 자신의 미래가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죠. 거기서 비롯된 억울함은 아버지의 죽음을 상상하면서 드는 죄책감, 더 잘 돌보지 못했다는 미안함, 끊임없는 자기 검열과 복합적으로 뒤섞이며 그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저자에게 돌봄은 삶을 방해하는 고통으로만 여겨지지 않습니다. 그는 돌봄을 통해 "인간의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고도 말하죠. 그는 당장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하며, "군대 안 간 놈"이라는 낙인 속에서 "노동자도 군인도 아닌 열외의 무엇"으로 생활합니다. 이때 그는 아버지를 간병하는 동안 보호자로서 존재하며 외로움과 무기력을 견디고 생존의 이유를 찾습니다. 또 돌봄 과정에서 마주한 부당함을 해결하고자 사회과학을 공부하거나 활동가로서 시민단체에서 일하기도 합니다. 이후 꿈이었던 영화감독이 되어 현장 기술직 노동자였던 아버지를 조명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도 하죠. 그는 돌봄이라는 경험을 기반 삼아 다양한 정체성을 키워나가고 성장합니다.
이 경험은 돌봄이 사회화되고 시민 모두의 일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보여줍니다. 돌봄이 사회화될 때 돌봄은 누군가의 삶을 무너뜨리는 버거운 짐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며 함께 살아가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 됩니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삶은 더욱 성숙해질 수도 있겠죠.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돌봄이 필요한 인구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입니다. 누구나 적절한 돌봄을 받는 동시에 돌봄 제공자의 삶과 미래가 무너지지 않도록, 돌봄의 사회화는 점점 더 절실해질 것입니다. 저자는 돌봄 문제가 사회적으로 더 가시화되고, 공론장에서 더 적극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애초에 내 어리석음을 탓해야 했다. 행정을 맡은 사람들에게 나는 얼마나 비가시적인 존재이던가. 취업난 속에서 청년도 이제 막 보이기 시작했고, 고령화 사회에 들어서면서 노인 돌봄도 이제 막 드러나기 시작한 마당에, 무슨 아픈 가족을 돌보는 청년이라는 말인가. 주민센터에서 바락바락 작두 타던 시절을 그새 잊고 있었다. 그래야만 행정의 눈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투명인간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 『아빠의 아빠가 됐다』, 176쪽
저자는 청년 간병의 실태가 잘 드러나지 않는 현실 속에서, 돌봄의 경험을 말해야겠다고 느낍니다. 자신이 정말 도덕적인 효자인지, 돌봄을 잘 해냈는지와는 무관하게 말이죠. 그렇게 집필된 『아빠의 아빠가 됐다』는 그의 의도대로 청년 간병인의 목소리를 가시화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닙니다.
사회적 의제를 제기하고 문제의식을 전하는 방식은 학술적인 분석이나 정치적인 활동처럼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저자는 그중에서 에세이라는 문학적 형식을 선택했죠. 에세이는 추상적인 구조나 제도적 맥락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감정과 경험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독자들은 이야기 속 개인의 삶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되고, 그로부터 더 깊이 있는 인식과 사유로 나아갈 수 있죠. 에세이는 특정한 문제의식을 정서적으로 더 호소력 있게 사회에 전달하는 강력한 방식이 됩니다.
책을 읽는 동안 필자가 가장 강하게 느꼈던 감정은 부끄럽게도 놀라움이었습니다. 처음 접해보는 현실에 대한 반응이었죠. 그런 삶이 분명 존재하는데도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이자, 스스로의 무지를 자각한 데서 온 일종의 지적 충격이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제도적 지원을 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행정 담당자에게 자신의 빈곤을 설득해야 했던 경험, 돌봄이 일상의 장애물이 아니라 생존의 이유이자 인간됨을 지탱하는 버팀목이기도 했다는 서술은, 그동안 상상해보지 못했던 누군가의 일상과 현실을 인식하게 만들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그 경험을 제 삶에도 비춰보게 됐습니다. 너무 짧았기에 ‘돌봄’이라는 말로 인식하지 못했던 기억이 하나 떠올랐죠. 가족 구성원이 잠시 아팠던 시기, 가족이니까 당연하다는 마음으로 기꺼이 시간을 내 간병하면서도, 그로 인해 일과 일상이 잠시 멈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죄책감과 미안함을 불러오기도 했고요. 그 깊이와 맥락은 다르겠지만, 저자가 복합적인 감정 속에서 느꼈던 혼란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먼 이야기처럼 느꼈던 돌봄이 사실은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게 실감되기도 했습니다. 우리 모두 알게 모르게 누군가의 돌봄 속에서 자라왔고, 언젠가는 또 누군가를 돌봐야 할 순간을 맞게 될 테니까요.
결국 『아빠의 아빠가 됐다』는 누군가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할 수밖에 없는 보편적인 문제를 담고 있습니다. 돌봄은 특정한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누구나 겪고 나눠야 할 사회적 과제입니다. 이 책은 그 시작점을 개인의 목소리로부터 찾습니다. 저자는 그 목소리를 통해 돌봄을 사적인 문제가 아닌, 공적인 언어로 말할 수 있는 권리로 확장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느꼈는지, 어떤 질문을 가지게 됐는지는 각자 다를 것입니다. 다만 분명한 건 돌봄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상상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것이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우리가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변화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