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널브러진 책들을 모았다)
어릴 적 소설에 빠졌다. 선배가 박계형의 책을 좋아했고 따라서 나도 시리즈처럼 작가의 책을 빌려 읽게 되었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짜릿한 연예 소설은 사탕 맛을 알게 된 아기처럼 책에 대한 호기심으로 나를 유혹했다. 부모님이 내용을 알까 봐 가슴팍에 숨겨서 빌려왔다. 내 방에 들어와서 책을 가슴에서 꺼내면 따뜻한 온기와 훅 들어오는 책 냄새가 좋아서 가만히 코에 대어보기도 했다. 그러다 상록수를 읽고 채영신의 사랑을 동경하고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외우며 삶의 의미를 유추해 보기도 했다. 닥치는 대로 읽었지만, 책을 소장하기는 어려웠다.
그때 채우지 못한 갈증 때문인지 서점 가는 걸 좋아한다. 인터넷서점보다 책방이 좋다. 책을 사기 위해 서점에 가는 내가 꽤 근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울리는 비유인지 모르지만, 만족할 소비를 위해 백화점에 가는 즐거움과 비슷한 허영일지도 모른다. 원하는 책을 사기 위해 서점에 가지만 가끔은 그냥 서점에 가보고 싶을 때도 있다.
서점에 들어서면 종이와 잉크가 만나서 내는 탑탑한 듯한 공기가 있다. 이 공기의 흐름에 기분이 좋다. 서점에서 바닥과 벽면을 가득 채운 낯선 책들을 탐색하면서 산책하듯이 돌아다닌다. 그러다 마음을 끄는 제목이나 작가가 눈에 띄면 다가가서 손을 내민다.
먼저 앞표지와 뒤표지, 책 등을 조심스레 쓰다듬어본다. 그러곤 앞표지의 제목과 작가를 보면서 내용을 추측해 본다. 대부분은 책의 뒤표지를 통해 작가의 속살을 조금 엿볼 수 있다. 책등의 글씨체를 보며 작가에게 다가선 다음 책을 펼쳐본다. 책 표지에 날개가 있으면 그곳을 통해 탄생 이력 같은 것도 살펴본다. 떨리는 손으로 목차를 더듬다가 후루룩 바람을 일으켜 어느 한 부분을 눈에 담아본다. 이쯤 되면 책의 성질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고 떨림이 느껴지면 품에 품고 온다.
내가 책을 읽는 방법은 불량하다. 애지중지하며 데려온 책이라도 한꺼번에 다 읽는 법은 거의 없다. 이건 변명을 하자면 노화한 몸뚱이 탓이다. 책 한 권을 한꺼번에 읽을 수 없을 만큼 내 몸은 기능이 떨어져 있다. 그래서 효율적으로 읽어야 한다.
차근차근 읽다가 지치거나 재미가 없으면 ‘탁’하고 덮어둔다. 그러다 시간이 좀 지나고 마음이 내킬 때 사르륵 책 바람을 일으켜 펼쳐지는 곳을 읽어본다. 그곳을 읽다가 궁금증이 유발되면 다시 앞으로 가서 그곳까지 돌아온다. 그러다 지겨우면 맨 뒤로 간다. 앞뒤를 읽고 내용을 유추해 보곤 다른 책을 읽기도 한다. 어떤 책은 첫날 몇 쪽을 읽다가 두었다면 다음에 읽을 땐 다시 처음부터 읽기도 한다.
이런 나의 불량스러운 책 읽기에 지쳐있는 몇 권의 책이 집 안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읽어도 각기 다른 책의 맛을 알 수 있다. 스테이크를 먹다가 샐러드를 먹고 음료를 마셔도 각각의 맛을 음미하고 만족감을 느끼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가끔은 정신 못 차릴 정도로 재미가 있거나, 마음먹고 목적을 가지고 읽을 땐 완독도 한다. 이 경우엔 뜻을 깊이 생각하기보다 한 번에 끝까지 읽는다는 의미가 크다.
우리 집엔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책들이 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일 때 계몽사 출판 <우리 시대의 한국문학>이란 74권 전집을 샀다. 외판원의 언변과 책을 좋아했던 내 허영심이 통했고 책 읽기를 좋아했던 두 딸이 이유가 되어주었다. 책을 산 지 오래되었지만, 어쩌다 잃어버린 서너 권 빼고 다 있다. 딸들은 이사할 때마다 옛날 책 좀 버리라고 한다. 수많은 전집을 다 버렸지만, 이 책들은 숨겨진 보물 지도 같아 버릴 수 없었다. 고전 시가에서 현대 소설이나 명수필까지 오래된 글을 찾아볼 수 있다. 내겐 인터넷 찾기나 도서관 가는 것보다 편해서 버리지 못한다.
오래된 책에서 나는 냄새, 약간 쾨쾨한 듯한 그 냄새가 얼마나 가슴을 달뜨게 하는지, 작가나 작품명을 기호나 쪽수로 찾아서 원하는 글을 만나면 기분이 좋다. 어릴 때 오후 햇살이 문살을 비집고 들어온 작은방에 엎드려 책을 읽을 때가 있었다. 약간 누르스름한 종이의 색과 햇빛 사이에서 까만 글씨가 꿈으로 설레고 가슴이 웅장해지던, 그 기분과 비슷하다고 할까?
우연히 책장에서 《세계대표수필집》을 발견했다. 낯설게 다가왔다. 수필을 쓴다고 덤벙대긴 했지만, 이 책이 수필집이고 책장에 있었는데 한 번도 본 기억이 없다.
아마도 딸이 입시 공부할 때 알아서 샀던 입시서였던 듯하다. 딸 책 속에 섞여 있다가 분가하면서 책을 정리할 때 두고 갔나 보다.
책은 전집보다 훨씬 꾀죄죄하고 너덜너덜하다. 책등과 앞뒤 표지를 연결하는 용도로 테이프도 덕지덕지 붙어있다. 조심스레 열어보니 의외로 속은 덧줄 하나 없다. 속표지를 한번 보고 뒤적거리다 <아버지의 뒷모습>이라는 글을 읽어봤다. 어디서 읽어 본 듯했다. 그제야 다시 작가를 살펴보니 명수필로 소개되는 주자청朱自淸의 글이다. 이 또한 건망증이 심한 탓과 불량한 책 읽기 습관 때문이다.
목차를 자세히 훑어봤다. 각 나라 별로 분류해서 몇 편씩 실려있다. 소로, 루이제 린저, 미우라 아야코 외에도 거의 대문호들의 작품이다. 읽어보면 “아!” 하는 글이 몇 편은 있을 듯하다.
새삼 두 손으로 책을 감싸 쥐고 코에 대어 본다. 책 냄새는 여전히 좋다. 나의 책 읽는 방법은 불량하지만, 다른 책처럼 이 책도 한동안은 아무 곳에나 두고 손가락이 가는 대로 펼쳐가며 친하게 지낼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완독 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