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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앞에 다가왔다

by 박정옥

코앞에 다가왔다


요즘 바닥에 앉으려면 무릎에서 헝겊 찢어지는 소리가 난다. 의사는 아껴 쓰고 운동을 줄이고 천천히 걷기를 하란다. 건강 걷기의 척도처럼 여겼던 만 보보다 적게 걸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소소한 잔병이 생기면 몸을 아끼고 소심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나이가 되었다.

소중한 이들의 죽음과 병고를 곁에서 지켜본 나는 죽음은 정해진 명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저 사는 동안 통증 없이 홀로 삶을 엮어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살아서도 남의 손 빌리지 않고 죽어서도 남은 이에게 걱정거리가 되고 싶지 않다. 죽으면 끝일 것 같아도 그 순간부터 새로운 걱정이 남은 자들에게 생긴다. 장례 절차와 장지 선정, 묘지관리와 성묘, 차례와 제사가 반드시 해야 하는 숙제처럼 주어진다. 이런 것이 생명을 잃은 자의 절통함에 비할 수는 없지만 현실이다. 슬픔과 그리움은 마음을 아리게 하는 감정이지만 몸이 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일들은 남은 자에게 부담이 되기도 한다. 애도와는 달리 시대와 상황에 맞서 부딪히기 때문이다.

남편이 떠난 지 십 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남편을 다 놓지 못하고 있다. 함께 살 때 남들은 우리를 잉꼬부부라고 했지만, 남편과 나도 여느 부부처럼 소리 지르며 싸우기도 했고 말없이 각자의 동굴 속에 들어앉기도 했다. 하지만 서로 존중하는 마음은 바탕에 깔려있었다. 그 존중심과 내 딸들의 아버지라는 이유로 나는 기꺼이 풍습으로 내려오는 제사 지내는 의리를 지키겠다고 마음먹었다.

7년 정도 명절 차례와 기제사를 지냈다. 그런 중에 팬데믹이 오고 직장과 결혼 생활의 병행으로 역할이 많아진 딸의 고됨을 보며 마음이 쓰였다. 고심 끝에 명절 차례는 형식을 버리고 연휴 중 편한 날 소풍처럼 성묘만 다녀오기로 했다.

“여보, 이제 명절 차례는 지내지 않을 거야. 내가 살아있는 동안 기제사는 잊지 않고 챙길게. 너무 야속하다 생각지 마. 딸들의 짐을 내려주고 싶어.”

마지막 차례를 지내는 날 차례상 앞에서 내 마음을 중얼중얼했다. 기제사도 살아있는 동안 지내겠다고 했지만 지킬 수 없는 약속임을 안다. 내가 큰 병이라도 얻게 된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정리해야 한다는 것을….

성묘 가는 날 비가 장대처럼 퍼부었다. 빗속을 이리저리 헤매며 예상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늦게 도착했다. 고생한 사위에게 미안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게 퍼붓던 비가 묘원에 도착했을 때 좀 잦아졌다. 추석이 며칠 남았지만, 빗속에서도 성묘객들이 제법 많이 왔다.

작년에 꽂아 두었던 조화는 색 바래고 꽃송이가 떨어져 나가서 초라했다. 긴 세월 찾아오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낡은 조화를 딸아이가 준비한 새 꽃으로 바꾸었다. 비는 는개로 변했지만, 돗자리를 깔 엄두는 내지 못하고 선 채로 향 피우며 술 한잔 올리고 묵념했다. 예를 올린 후 조금 떨어져 있는 쉼터로 갔다.

앞뒤 양옆 어디를 보아도 죽은 자의 집만 빼곡하다. 오랜 역사를 보면 명당을 찾았던 망자의 무덤도 참 부질없는 것이었고 앞으로는 더더욱 의미 없는 일이 될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망자에 대한 예우와 산자에 대한 안위로 좋은 터를 찾고 장례법을 고민한다. 터는 유한 한데.

이 공원묘원만 해도 남편이 올 때와는 너무 달라졌다. 빈 돌 위에는 새로운 이름이 새겨져 있고 새뜻한 조화가 놓여있다. 청정 숲이던 마주 보이는 산자락에도 잘 정리된 신도시의 주택 자리처럼 망자를 위한 터가 마련되어 있다. 곧 입주자가 가득 찰 것이다. 아마 세월이 더 흐르면 망자의 마지막 공간인 네모난 작은 돌집은 재건축해서 주인이 바뀔 것이다. 기억해 줄 이 없는 영혼은 허공에 흩어질 것이고 새로운 죽음이 찾아와서 차지할 것이다.

준비해 간 간단한 음식을 먹으면서 사위와 딸과 나는 자연스레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죽어서 너의 아버지 옆에 있기 싫다.”

남편의 유골을 넣을 석곽을 마련할 때 훗날 내 유골이 있을 공간까지 마련했다던 자식들의 말을 들었다. 앞으로 이런 공원묘지에도 죽은 자가 머물 수 있는 곳이 부족할 거란 염려와 성묘의 편리함을 생각했을 것이다. 난 함께 있고 싶지 않았지만, 십 년이 지나서야 마음의 소리를 꺼내봤다. 놀란 듯한 사위와 딸은 이유가 무엇이며 어떤 것을 원하느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해양장을 비롯해 장례의 여러 방식을 열거하면서 진지하게 묻는 아이들을 보니 죽기도 전에 성급하게 걱정거리를 안겼다는 생각도 들었다.

“난 어떤 형태라도 물에 들어가는 건 싫어. 그리고 죽어서까지 누구 옆에 나를 묶고 싶지 않아. 얽매이지 않고 훨훨 자유로워지고 싶어.”

지금의 내 진심이다. 이승의 인연을 저승까지 이어가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훗날 죽음이 코앞에 다가왔을 때 “그냥 내 유골은 너의 아버지 옆에 두어라. 제사 같은 건 지내지 말고.”라고 말할 것 같다. 자식들에게 가벼운 짐이 되길 바라기에.

결국은 살아있는 자의 마음 가는 대로 할 거란 것도 안다. 자식들과 장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면 나에게도 죽음이 멀지 않은 것이다.

‘그래, 한 지붕 아래 있어도 얽매이지 않으면 되지.’라며 스스로 응원해 본다. 집으로 오는 길에 비는 다시 줄기차게 내리고 묘원은 뿌연 비안개 속에 갇혀 가뭇없이 멀어졌다.

명절날 시댁 식구들이 전화해서 하나같이 안부 삼아 물어본다.

“차례는 잘 지냈나. 성묘는 다녀왔나?”

연휴가 끝나면 내과에 가서 위장약을 처방받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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