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후인
엄마, 그곳은 어때요?
이곳은 올해 여름이 유난히 덥네요. 칠월 초순부터 시작한 불볕더위가 가만히 있어도 숨이 막힙니다. 까짓 거 별일 있으려고 생각하면서 평소 하던 대로 아파트 계단 오르기를 했더니 땀이 비 오듯이 흐르고 이마에 땀띠가 났어요. 그래도 계속했더니 더위를 먹었어요. 열이 나고 목이 너무 아파요. 열흘 정도를 꼼짝 못 하고 집안에 혼자 있었어요.
지금 아프다고 엄마한테 어리광 부려 보는 겁니다.
우리 몸은 참 희한해요.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고 마음이 아프면 몸도 같이 아프더라고요. 젊을 때는 몰랐어요. 외로움도 아픔이란 걸.
엄마, 제 나이 기억나세요? 지금의 내 나이 때 엄마는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어요. 엄마는 하루도 쉬지 않고 농사일을 하셨죠. 자식들이 엄마 힘들다고 “이제 그만하시라.” 하면 “땅을 어떻게 놀려두니.”라는 말로 답하셨어요. 생각해 보면 푸성귀를 가꾸는 밭일은 엄마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친구고 삶의 활력이었는데, 도와주지 못하는 우리 마음 편해지려고 쉽게 말했어요.
아프니 엄마가 더 보고 싶어서 핸드폰의 사진첩을 뒤져봤어요. 온통 놀러 다닌 사진이고 맛있는 음식 먹을 때 사진인데, 그 속에 엄마와 함께한 사진이 없어요. 친구들, 자식과 손주와 찍은 사진만 보여요. 한참을 뒤지다가 한 장을 찾았어요. 엄마가 치매로 인해 요양원에 계실 때, 내가 딸인지도 잘 못 알아볼 때 찍은 사진입니다. 건강한 엄마와 내가 함께 찍은 사진이 없네요. 제가 참 무심한 딸이란 걸 한 번 더 느껴봅니다. 엄마 혼자 찍은 젊은 날 사진 한 장이 더 들어 있네요. 이 사진은 엄마가 돌아가시면 영정 사진으로 쓰려고 엄마 병원에 계실 때 낡은 옛날 앨범 속에서 겨우 찾아서 보관해 두었던 그 사진이네요.
엄마 그곳도 볕살이 뜨겁게 달아있나요? 엄마가 콩밭을 매던 그때, 뜨거운 흙먼지가 숨을 막을 때처럼, 매실나무에서 매실을 따낼 때 땀방울이 눈물이 되어 흐르던 그때처럼, 온몸이 열감으로 어지럽진 않아요? 오뉴월 염천 더위를 등으로 받아내며 농사일하던 엄마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제가 투덜투덜하면 “너는 맏이 아이가.” 하시던 말, 그때는 싫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막내이고 싶다고 말한 평생 철없는 딸이었습니다.
멍하니 눈만 떴다 감았다 하면서 미음조차 스스로 넘기지 못해 콧줄을 달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가 빨리 저세상으로 가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그리울 줄 미처 모르고 정체성을 잃은 엄마를 보면서 삶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죠. 나를 향해 가끔 희미하게 웃을 때는 말은 못 해도 나를 알고 있다는 뜻이었죠?
침대에 묶인 두 손, 얼굴과 배에 주렁주렁 달린 줄들을 보는 것보다 당신의 그 알 듯 말 듯한 미소가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내 기도는 ‘엄마를 살려주세요.’가 아니고 ‘아프지 않게 고통을 못 느끼게 해 주세요.’였습니다. 멀리 있다는 못된 핑계를 대면서, 병원에 갈 때마다 마지막인 듯 인사를 하고 오면서 임종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을 줄이는 것도 나를 위한 변명임을 압니다.
엄마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지 여섯 달이 지났습니다.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야속한 맏딸이 엄마한테 용서를 빕니다.
엄마,
그곳은 봄처럼 희망으로 아름답고 가을처럼 온갖 단 열매로 풍요로운 곳이겠죠. 엄마한테 달렸던 괴롭고 아픈 줄들, 온갖 고뇌와 집착마저 다 사라지고 환한 낯꽃으로 행복한 엄마 세상이길 바랍니다.
2025년 여름
엄마가 너무 보고 싶은 맏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