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비울수록, 완벽하다.

결핍은 때로, 진화의 지름길이 된다

by 공구리

가지지 않음으로써 더 오래 살아남는다.

날 수 없는 날개,
먹지 못하는 입,
퇴화한 장기와 텅 빈 기관.

우리는 그들이 결핍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자연은 선택이라 부른다.


⁘ 하루살이

하루를 위해, 입을 버렸다.

하루살이는 알에서 깨어나 성충이 된 후, 단 몇 시간에서 하루 사이에 짝짓기를 마치고 죽는다.
더 놀라운 건, 일부 종의 하루살이 성충은 입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유충 시기의 입 기관이 퇴화되어 성충이 되면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된다.

소화기관도 마찬가지다.
살기 위한 ‘먹기’가 아니라,
죽기 직전 ‘번식’만을 위해 존재하는 삶.

먹는 시간조차 불필요한 사치다.
죽음에 닿기 전, 오직 ‘남기는 일’에 집중한다.
입이 없다는 결핍은, 생존 시간의 낭비를 줄인 전략이 된다.


⁘ 부전나비

가짜가 된 날개, 그리고 속임수의 생존

부전나비(Lycaenidae)의 애벌레는

혼자 자라지 않는다.
그들은 개미에게 “나는 너희 새끼야”라는 화학적 거짓말을 해, 개미집 안으로 들어간다.

몸에서는 개미를 속이기 위한

특수 분비물이 나온다.
개미는 이 분비물에 반응하여 그들을 집 안으로 데려가고,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준다.

일부 애벌레는 개미의 보호를 받는 동시에, 몰래 개미 유충을 먹기도 한다.
보호받는 척하며 내부 자원을 흡수하는 기생과 약탈의 복합 전략이다.

화려한 날개는 성체가 되어서야 펼쳐지지만,
실제로 그들이 가장 ‘영리하게’ 사는 시기는 날기 전, 가짜 가족으로 살던 때다.

자립하지 않는 삶,
의존과 기생 속에서 오히려 생존율은 높아진다.
무력함이 생존의 무기가 된다.


⁘ 기관이 사라진 벌레들

없는 것이 살아남는다.

기생벌이나 일부 기생선충류의 성체를 보면,
몸이 놀랄 만큼 단순하다.

소화기관이 없다.
감각기관도 없다.
근육조차 거의 없다.

한 번 숙주 안에 들어가면
더는 움직일 필요도, 방향을 찾을 필요도,

스스로 먹이를 찾을 필요도 없다.

기능은 사라졌지만, 목적은 정확하다.

하나의 존재라기보다는

목적을 위한 껍데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 단순함 덕분에,
더 빠르게 성장하고, 더 많은 자손을 남긴다.

살기 위해 버리는 것.
그 끝에 남는 것은 기능이 아닌 방향이다.


⁘ 결핍은 퇴보가 아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잃는다’는 말을
늘 슬픔이나 약점으로 받아들인다.

자연은 다르게 말한다.
생존의 필수 조건은 언제나 가짐의 총량이 아니라,
필요한 것만 남기는 정제의 과정이었다고.

그 어떤 생명도,
무작정 ‘더 갖기’만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많은 생명들은 덜어냄으로써 더 강해졌다.

입이 없는 하루살이, 속이는 애벌레, 감각 없는 기생충.

그들의 삶은 결핍이 아니라,
불필요함을 꿰뚫어본 직관의 결과다.

없음은 그저 부족함이 아니다.
쓸모없는 것을 버릴 줄 아는 생명의 용기다.

keyword
월, 수, 금 연재
이전 07화#7 문어는 왜 자기 팔을 먹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