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을 먹는 생명들에 대하여
어떤 생명은 극한의 상황에서 스스로를 먹는다.
먹이가 사라졌을 때,
몸 바깥이 아닌 몸 안에서 생존의 자원을 찾는다.
암컷 문어는 단 한 번의 번식을 위해 살아간다.
수백 개의 알을 낳은 후, 그녀는 굴 속에 틀어박힌다.
먹이를 사냥하지도 않고, 수영조차 멈춘 채,
남은 모든 에너지를 ‘지키는 일’에 쏟아붓는다.
이 시기, 그녀는 자신의 근육과 장기조직을 분해해 에너지를 만든다.
팔 끝을 갉아먹는 행동이 관찰되기도 한다.
학자들은 이 행위를 단순한 이상 행동이 아닌, 자가 프로그램된 소멸 과정의 일부로 본다.
미국 시카고 대학의 연구진은
문어의 시신경샘(Optic Gland)이 분비하는 호르몬이
이러한 일련의 행동을 유도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시신경샘을 제거하면, 문어는 알을 버리고 다시 사냥을 하며 생존 기간이 늘어난다.
즉, 문어는 죽음을 택한 것이 아니라,
새 생명을 위해 스스로를 분해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알이 부화할 즈음, 이미 다 써버린 몸으로 남는다.
그 죽음은 멈춤이 아니라, 자리를 내주는 방식의 연속이다.
일부 육상 민달팽이는 이동하며 분비한 점액을
다시 핥아 먹는 행동을 보인다.
그 점액은 단순한 흔적이 아니다.
몸에서 나온 단백질, 다당류, 염류들이 담긴
재활용 가능한 연료의 조각이다.
점액은 미끄러짐을 돕고, 습기를 유지하며,
외부 미생물로부터 몸을 보호한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입을 통해 체내로 들어가
소모된 에너지를 되돌리는 루프를 완성한다.
그들에게 생존은,
끝없이 내어주고 되돌려 받는 일이다.
움직임과 소비, 순환과 회수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다.
세포의 세계에서도,
스스로를 먹는 생존 전략은 존재한다.
이를 '자가포식(Autophagy)'이라 부른다.
세포는 낡은 소기관을 분해하고,
그 조각을 다시 재활용해
더 필요한 부위에 공급한다.
덜 중요한 자신을 줄여,
더 중요한 자신을 유지하는 방식.
이 과정은 파괴가 아니라 정비이고,
유지를 위한 작고 정밀한 해체다.
살아간다는 건,
언제나 무언가를 써버리는 일이다.
우리는 매일 수십억 개의 세포를 갈아입고,
그 안의 일부는 스스로를 분해해
또 다른 나의 연료가 된다.
내가 남긴 나를 다시 삼키고,
내가 잃은 나로 또 다른 나를 만든다.
나는 내 안에서 매일 조금씩 죽고,
매일 조금씩 살아난다.
변화하는 ‘나’를 이루는 것은
세상에서 가져온 무언가가 아니라,
이미 한 번 나였던 조각들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면, 생존이란 끝없는 재창조다.
무엇을 더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다시 써내느냐에 가까운 일.
스스로를 소모하며 유지되는 삶,
그 안엔 묘한 역설이 깃들어 있다.
남기는 것과 사라지는 것은,
어쩌면 같은 말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