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무협지를 주구장창 읽었다.
무협의 공통적인 특징이라면 끊임없는 자기 수양을 통한 파워업,
혹은 정신적인 성장이 되겠다.
문득 궁금해졌다. 인간만이 자기수양을 통해 강해지는게 아니라,
자연에서도 비슷한 행위를 하는 생명체가 있을까?
생명은 시간이 지나면서 단순히 몸집이 커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반복과 인내, 혹은 몸의 재구성을 통해 다른 단계로 나아간다.
그것은 수행에 가까운 과정이며,
그 끝에는 전혀 다른 힘이 기다린다.
곤충의 비행은 태어날 때부터 완성된 능력이 아니다.
날개는 껍질을 벗은 직후 아직 연약하고, 근육 또한 미숙하다.
그러나 수천, 수만 번의 날갯짓이 반복되면서, 근육 섬유는 두꺼워지고
세포 속 미토콘드리아는 늘어나며, 산소를 더 효율적으로 에너지로 바꾸게 된다.
곤충은 움직이는 만큼 강해지는 존재다.
꿀벌은 어린 시절 벌집 안에서 여왕과 애벌레를 돌본다.
그러나 2~3주가 지나면 바깥으로 나가 채집을 맡게 된다.
이때 체중은 약 40% 줄어들어 몸은 가벼워지고,
날개 근육은 장거리 비행에 알맞게 변화한다.
연구에 따르면, 채집벌은 간병벌보다 훨씬 오래 날 수 있으며,
공중에서 버틸 수 있는 능력도 크게 향상된다.
이는 나이가 들어서 자연스럽게 얻은 변화가 아니라,
반복된 날갯짓과 훈련으로 만들어진 결과다.
메뚜기 또한 장거리 비행을 앞두면 몸속 연료 사용 방식을 전환한다.
평소에는 당을 에너지원으로 쓰지만,
장거리 이동 시에는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지방으로 바꾼다.
신경호르몬이 이 전환을 촉발하며,
근육은 장시간의 비행을 견딜 수 있도록 준비된다.
곤충에게 하늘은 본능이 아니라, 반복과 변화로 획득한 능력이다.
산갈치(Regalecus)는 최대 10미터까지 자라는 세계에서 가장 긴 뼈대어다.
성체는 은빛의 몸과 붉은 지느러미를 가진 거대한 휘어지는 검(연검)처럼 보이지만,
태초의 모습은 투명하고 가는 유생에 불과하다.
이 유생은 먹이 섭취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쉽게 죽지만,
살아남은 개체는 오랜 시간에 걸쳐 몸을 바꿔나간다.
짧고 작은 체형은 길게 늘어나며,
등지느러미는 머리부터 꼬리까지 이어져 【아미형 유영】이라 불리는 독특한 방식으로 움직이게 된다.
납작한 몸은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며 심해에서의 생존을 돕는다.
성체에 이르는 동안 피부는 은빛으로 단단히 덮이고,
신경계와 근육은 길어진 몸 전체로 뻗어나간다.
보잘것없던 유생은 마침내 심해의 압력과 어둠을 견디는 장대한 생명체가 된다.
이 과정은 순간의 변신이 아니라, 수천 번의 세포 분열과 조직 변형, 수년의 시간을 견뎌낸 환골탈태다.
곤충은 반복 속에서 기능을 갈고닦으며,
산갈치는 몸의 구조 자체를 다시 짜 맞추며 강해진다.
하나는 지루할 만큼의 날갯짓으로,
하나는 끝없는 성장의 변형으로.
생명은 단순히 자라지 않는다.
허물을 벗고, 근육을 갈아 넣고, 끝없는 시간을 견뎌내며 다른 몸을 얻는다.
그 길은 인간이 상상해 온 무협의 수행과도 닮아 있다.
내공을 쌓듯 날갯짓을 반복하고, 환골탈태하듯 몸을 새로 짠다.
자연이 걸어온 이 길은, 결국 진화라는 이름의 오래된 무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