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를 펼치는 시간, 이탈리아라는 설계도
여행은 비행기 이착륙 소리가 아니라, 책상 위에 지도를 펼치는 그 정적 속에서 시작된다.
이탈리아를 여행한다는 것은 단순히 국경을 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가 쌓아 올린 거대한 시간의 층위를 하나씩 들춰보겠다는 자기만의 선언에 가깝다. 로마의 고대 유적부터 피렌체의 르네상스, 베네치아의 물결까지. 이 거대한 서사를 며칠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 구겨 넣는 일은 고통스러우면서도 즐거운 설계의 과정이다.
나는 이번 여정을 준비하며 효율이라는 자로 감동의 크기를 재지 않기로 했다. 대신, 도시와 도시 사이의 간격을 나만의 호흡으로 메우는 법을 고민했다. 촘촘하게 짜인 동선은 때로 자유를 구속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낯선 땅에서 길을 잃지 않고 온전히 풍경에만 집중할 수 있게 돕는 든든한 가이드라인이 된다.
로마에서는 시간을 세밀하게 쪼개어 썼다. 오전의 낮은 해가 콜로세움의 아치 사이로 스며들 때 그곳에 서 있었고, 오후의 나른함이 광장을 덮을 때쯤 트레비 분수의 물소리를 들었다. 동선을 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욕심의 절제'였다. 모든 것을 보겠다는 마음을 비워내자, 비로소 로마의 골목들이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피렌체로 넘어가는 기차 안에서는 창밖으로 흐르는 토스카나의 구릉을 바라보며 다음 설계를 점검했다. 여행 코스를 짜는 일은 단순히 A에서 B로 이동하는 경로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머물고 싶은 지점을 선별하는 작업임을 깨달았다. 베네치아의 수로를 따라 걷는 동선 끝에 노을이 걸리도록 배치한 것은, 이번 여행에서 내가 나에게 준 가장 근사한 선물이었다.
효율적인 동선은 체력을 아껴주지만, 여유로운 마음은 기억을 깊게 만든다. 이탈리아의 각 도시는 저마다의 속도가 있다. 로마가 웅장한 오케스트라라면, 베네치아는 잔잔한 실내악 같다. 그 속도에 맞춰 나의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은 마치 악보를 그리는 일과도 같았다.
오전에는 유명한 랜드마크를 찾아가 활기를 느끼고, 오후에는 현지인들의 삶이 묻어나는 뒷골목에서 속도를 늦췄다. 시간대별로 동선을 나누는 행위는 강박이 아니라, 이탈리아라는 찬란한 유산에 대한 나만의 예의였다. 철저히 준비된 코스 위에서 역설적이게도 나는 가장 자유로웠다. 길을 헤매는 시간 대신 풍경을 눈에 담는 시간을 택한 결과였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다시 지도를 접는다. 지도 위에는 내가 고민하며 그어놓았던 선들이 희미한 흔적으로 남아 있다. 처음 코스를 짤 때의 막막함은 이제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미소와 젤라또의 달콤함, 그리고 오래된 성당의 서늘한 공기로 치환되었다.
완벽한 계획이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만의 동선을 고민했던 그 시간만큼은 여행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닿아 있었다고 확신한다. 계획은 여행의 끝이 아니라, 낯선 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가장 단단한 첫걸음이다. 이제 나는 다음 지도를 펼칠 준비를 한다. 그곳이 어디든, 내가 세운 설계도 위에서 여행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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