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 전차를 타고 닿은, 바다를 닮은 한 그릇의 위로
바다가 보이는 식당에 앉아 창밖의 윤슬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허기는 이미 절반쯤 채워진다.
도쿄의 화려한 소음을 뒤로하고 에노덴에 몸을 실으면, 기차는 주택가의 낮은 담장을 스치듯 지나 푸른 바다 앞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가마쿠라는 내게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는 간이역 같은 곳이다.
이곳의 식탁 위에는 세련된 기교보다는 정직한 바다의 시간이 놓여 있다. 현지인들의 일상이 녹아든 좁은 골목길 사이에서 우연히 발견한 식당의 문을 열 때, 그 안에서 풍겨 나오는 고소한 밥 짓는 냄새는 이방인의 긴장을 단숨에 녹여버린다. 여행이란 결국 낯선 곳에서 나에게 가장 익숙한 온기를 찾아내는 과정이 아닐까.
에노시마의 바람을 맞으며 마주한 시라스(멸치 치어) 덮밥은 그야말로 바다의 결정체다. 투명하고 작은 생명들이 하얀 밥 위에 수놓아진 모습은 가마쿠라의 소박한 풍경을 꼭 닮았다. 입안 가득 퍼지는 은은한 바다 향과 톡톡 터지는 식감은 인위적인 조미료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계절의 맛이다.
유명한 맛집의 긴 줄을 견디고 마침내 마주한 한 끼는, 기다림조차 여행의 일부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창밖으로 전차 지나가는 소리가 멀어질 때쯤, 따뜻한 미소로 음식을 내어주는 주인장의 손길에서 나는 '잘 살고 있다'는 무언의 격려를 읽는다.
맛이라는 것은 단순히 혀끝에 머무는 감각이 아니라, 그날의 공기와 습도, 그리고 함께한 사람의 눈빛이 버무려진 입체적인 기억이다. 가마쿠라의 어느 노포에서 맛본 카레 한 그릇, 혹은 에노시마 골목길의 갓 구운 해산물 구이는 서울로 돌아온 뒤에도 문득문득 마음을 흔든다.
배를 채우기 위한 식사가 아니라 마음을 채우기 위한 미식의 시간들. 그 소중한 한 끼를 위해 길을 나서는 과정은 나를 사랑하는 가장 정중한 방식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행지에서 먹은 음식의 이름을 잊을지언정, 그 음식을 먹으며 느꼈던 평온한 기분만큼은 영혼의 한 구석에 깊게 저장해둔다.
가마쿠라를 떠나오는 열차 안에서 나는 다시금 깨닫는다. 진짜 맛있는 여행은 화려한 성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가장 편안해지는 장소에서 마주한 소박한 식탁에 있다는 것을. 바다를 배경 삼아 보냈던 정오의 만찬은 내일의 나를 살게 하는 부드러운 힘이 될 것이다.
혀끝에 남은 짭조름한 바다의 여운을 삼키며, 나는 벌써 다음 계절의 가마쿠라를 꿈꾼다. 그때의 식탁 위에는 또 어떤 계절의 맛이 차려져 있을까. 짧았던 오후의 만찬은 그렇게 내 삶의 가장 맛있는 페이지로 기록된다.
가마쿠라의 맛있는 온도 ,현지인들이 아끼고 아껴둔 에노시마의 진짜 숨은 식당들, 그 따뜻한 맛의 지도를 공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