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프랑스 여행: 파리의 낭만과 남부 축제의 공존

겨울의 외투를 벗지 못한 채 봄의 첫 문장을 읽다

by 하루담음


우리는 대개 완벽한 계절에 여행하기를 꿈꾸지만, 가장 깊은 문장은 늘 행간의 모호함 속에 숨어 있기 마련이다.


2월의 파리는 낮은 채도의 수채화 같다. 하늘은 덜 마른 물감처럼 눅눅하고, 센 강의 물결은 차가운 금속의 질감을 닮아 있다. 사람들은 코트 깃을 바짝 세운 채 서둘러 카페의 문을 밀고 들어가지만, 그 서두름조차 이 도시의 풍경 속에선 하나의 정교한 안무처럼 보인다. 여행자들은 흔히 2월의 프랑스를 '춥고 쓸쓸한 계절'이라 말하며 고개를 젓곤 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앙상한 가로수들이 가지 끝에 품고 있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곧 터져 나올 연둣빛 문장들을 위한 치열한 준비라는 것을. 루브르의 회색 광장에 떨어지는 가느다란 빗줄기는 먼지 쌓인 역사를 씻어내고, 텅 빈 튈르리 정원의 철제 의자들은 누군가 남기고 간 온기를 기억하며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이 계절의 파리는 화려한 화장을 지운 노배우의 얼굴처럼 진실하다.


그 차가운 파리를 등지고 남쪽으로 향하면, 마침내 계절의 반전이 시작된다. 니스와 망통의 공기는 파리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결을 지니고 있다. 이곳의 2월은 노란 미모사가 팝콘처럼 터져 나오는 소리로 가득하다. 지중해의 파도는 햇살을 잘게 부수어 해변으로 실어 나르고, 도시 전체는 축제의 열기로 들썩인다. 망통의 레몬 축제는 겨울의 우울을 노란 비타민으로 치유하려는 인간의 의지 같다.


거대한 레몬 조형물들이 뿜어내는 상큼한 향기는 코끝을 스치며 속삭인다. "추위는 결코 영원할 수 없다"고. 코트 주머니 속에 찔러 넣었던 손을 빼내어 따스한 남부의 햇살을 만져본다. 북쪽의 고독과 남쪽의 환희가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속에 공존하는 곳, 프랑스의 2월은 그렇게 양극단의 온도를 오가며 여행자의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무늬를 새겨 넣는다.


삶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 인생에도 볕이 들지 않는 북쪽의 겨울 같은 날들이 있고, 예고 없이 찾아오는 남쪽의 축제 같은 순간들이 있다. 2월의 프랑스를 횡단하며 깨닫는 것은, 추위가 없었다면 따스함의 가치를 몰랐을 것이며, 정적이 없었다면 축제의 소란함이 그토록 달콤하지 않았으리라는 사실이다.


여행은 장소를 이동하는 행위가 아니라, 내 안에 잠들어 있던 감각의 눈을 뜨게 하는 일이다. 파리의 회색빛 아래서 고독을 견디고, 니스의 푸른 바다 앞에서 기쁨을 만끽하는 동안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진 자신을 발견한다. 계절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다. 이 겨울의 끝자락에서 만난 프랑스의 두 얼굴은 내 기억의 앨범 속에 '가장 아름다운 불균형'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될 것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가방 안에는 남부에서 산 레몬 향수 한 병과 파리의 고서점에서 고른 낡은 엽서 한 장이 담겨 있다. 창밖에는 여전히 겨울의 냉기가 감돌지만, 마음 안쪽에는 이미 노란 미모사 꽃잎이 내려앉았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꽃은 피어나고, 무채색의 도시 위로도 태양은 매일 공평하게 고개를 내민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겨울이 깊을수록 봄은 그만큼 가까운 곳에서 숨을 고르고 있을 테니까. 오늘 내가 걸어온 이 길들이 훗날 꺼내 볼 수 있는 따뜻한 문장이 되기를 바라며, 2월의 마지막 밤을 가만히 덮어본다.




코트 깃을 세우다 만난 뜻밖의 봄. 남프랑스 레몬 향기가 묻어나는 상세한 여행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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