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어떤 환자가 자신의 두통으로 내원했다.
이 두통이 다른 병이 생기는 신호인지 인터넷을 보니 별별 얘기들이 다 있던데
너무 혼란스럽다고 했다.
정확히는 뇌혈류 검사나 MRA 를 찍어봐야 아는 것이지만
이 불안하고 긴장된 상태에서는 멀쩡하던 혈관조차도 좁아지고 박동쳐서 두통을 일으킬 지경이었다.
나는 내과 의사지만
긴장과 스트레스가 일으키는 혈류 및 자율 신경계의 변화로
소화 기관에 대환 위염, 식도염, 소화불량, 위장 경련,
내분비, 심혈관계에 대한 고혈압, 당뇨, 부정맥
면역 체계에 대한 축농증(부비동염), 천식, 기관지염, 편도선염
그 밖의 불면증 등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을 하루에도 최소 100명 이상씩 만나고 있다.
하지만 이 짧은 진료시간 동안 나는 진짜 원인까지 돌봐드릴 수가 없다.
단지 그 결과인 염증 상태를 치료할 뿐이다.
이 환자도 일단 신경성 두통을 완하시킬 수 있는 약을 처방해 드리려다
'선생님, 밖에 환자들이 많지만 제가 좀 말할 시간이 될까요?'
'뭐 약간, 너무 길게는 안 될 거 같은데.' (워낙 몇 년 째 본 환자라.. 편하게 얘기했다)
' 아 그럼 안할래요'
'아 얘기해 얘기해. 괜찮아 괜찮아요. 그냥 얘기해봐' (농담 반 진담반이었는데 순간적으로 서운해하는 것 같아서 수습하느라 진땀 뺐다)
'지금 더 열심히 해야할 것 같은데, 그래야 일이 더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은데, 너무 답답해요. 살도 7킬로나 찌고..'
환자는 울기 시작했다. 차라리 실컷 울길. 얼마나 속에서 많은 말을 했었을까.
좀 더 열심히 하라고.
'저는 차라리 바빠야해요. 바쁘게 일하고, 운동도 더 하고 그러면 이런 생각 안할텐데 말이에요'
마음이 아팠다. 어디서부터 가르쳐줘야할지 막막했다.
예전에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자신을 채찍질만 해나가는 막막한 마음이 어떨지.
1인 내과의사로서 검진 하지 않고 오로지 치료만을 하면서도 하루 최소한 100명 이상의 환자가 매일 오고 있다. 혼자서 바쁠 때는 180명 이상까지도 진료한다.
나는 비급여를 비싸게 해서 돈을 벌고 있는 의사가 아니다.
그저 치료만을 하고 있는 의사다.
이렇게 되기까지 나 자신을 채찍질 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다.
하루에 차트 100개 이상을 매일 리뷰하고 정리하고 다음 계획까지 적어놔야 그 환자를 다시 볼 때 제대로 진료 할 수 있다. 나를 채찍질 한다면 이런 일을 매일 할 수가 없다.
너는 부족한 인간이니까 너는 더 해야되. 너는 산만하고 덜렁되니까 이렇게 안하면 안되.
그렇게 채찍질한다는 것은 부족한 인간임을 스스로가 전제한 것이다.
부족한 점에 집중할수록 부족함을 느끼게 되고 내가 집중하고 느낀 것들이 세상에 펼쳐질 뿐이다.
즉, 부족함을 확인할 수 있는 일들만 펼쳐질 뿐이다.
물론 아직도 내가 부족한 인간임이 느껴질 때가 너무나도 많다. 매일매일 순간순간 그렇다.
'대기환자가 20명이 넘는데 더 빨리 환자 못봐? 더 환자말에 집중 안해? 제대로 안해?'
할 때도 많다. 하지만 그 목소리를 붙잡지 않는다. 즉 그냥 흘러가고 내 앞을 지나가도록 할 뿐이다.
거기에 집중하고 맞대응 하는 순간 나는 그 말들을 붙잡고 지나가지 못 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눈 앞에 있는 환자의 목소리보다 내 안에서 올라오는 목소리와 논쟁하는 꼴이 된다.
환자의 말에 집중하지 않는 지금, 그 분의 어려움에 맞는 해결책을 제대로 찾을 수가 있겠는가.
진료시간이 길어져버리는 것이다.
환자를 찝찝하게 보내는 꼴이 된다.
<나를 비난하고 탓하고 몰아 세우는 말은 그냥 가던 길 지나가도록 해줘야 한다>
그 누구도 비난해서는 안된다.
비난에 빠져 논쟁하는 사이 나는 비난의 에너지 속에서 비난 받을 일을 만들어내는 것이니까.
그 비난이 지나가도록 길을 터주고, 잽싸게 해결책과 해야할 행동으로 넘어 타는 것이다.
내가 해야할 일, 중요한 일은 진료 시간에는 환자의 말을 듣는 것이다.
내 생각보다 환자의 말을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
결국 내 성공의 비결은 (나는 의사로서 내 꿈을 이뤘다)
가치에 둔 집중 덕분이다.
내 가치의 목적은 환자의 건강, 환자가 안 아픈 것이다.
내가 ADHD라 얼마나 산만하고 내가 얼마나 할 줄 아는 것이 없고, 내가 경험이 부족하고, 나는 내과 전문의를 따고 분과 전문의 자격증을 왜 안 땄는지에 집중한 것이 아니었다.
그 저 환자 한명, 한명 이제 제발 그만 아프도록, 그 대책을 세워주기 위해
다방면으로 알아보고 조사하고 적용해보고 맞춰보고 하다보니 실력이 쌓인 것이다. 오히려 분과 전문의를 안 한 것이 더 나를 한계짓지 않고 모든 환자를 아우를 수 있게 할 정도였으니까.
좋은 에너지가 좋은 일을 만든다. 좋은 결과는 좋은 에너지에서만 기인한다.
나는 그저 좋은 에너지를 만들 뿐이다.
내가 가진 것,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에 집중. 동시에 없는 것, 못하는 것에 대한 집중을 흘려보내는 것.
그리고 그 있는 것에 대한 기쁨과 즐거움, 다행스러움을 계속 해서 상기시키는 것.
그 상태에서는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심지어 뒤로 자빠지더라도
되는 일만 하게 된다.
그리고 당연히 되어진 결과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