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청의 역행자, 김영하의 작별인사를 읽고.
IT업계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을 하다 보면,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전혀 새로운 것을 '창조' 하거나, 기존의 프로그램을 '개선' 하거나, 기존의 것을 버리고 맨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일종의 '차세대(Next Generation)' 이다. 기존 프로그램을 개선하는 경우 대부분의 개발자들은 오래된 예전 코드들을 지워버리기 보다는 그 코드를 바탕으로 새로운 기능을 덕지덕지 추가한다. 이렇게 코드가 점점 누더기가 되어 더이상 감당하기 어려울 때, 차세대 시스템에 대한 필요를 느끼게 된다.
요즘 베스트 셀러인 자청의 역행자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 바로 인간의 뇌의 진화와 관련된 부분이다. 인간의 뇌는 3개로 나누어져 있는데, 호흡과 같은 생존에 필요한 기초적인 것들만을 담당하는 파충류의 뇌와 감정, 기억과 같은 부분을 담당하는 포유류의 뇌. 그리고 마지막으로 언어, 추상적 사고, 상상력 등을 담당하는 인간의 뇌이다. 파충류의 뇌에서 포유류의 뇌, 인간의 뇌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뇌가 새롭게(차세대) 구성되는 것이 아닌 누더기처럼 쌓여 있다(개선).
심지어 약 15만년에 걸쳐 개선된 인간의 뇌조차 최근 100년 사이 급격하게 발전한 현대 사회 구조에 알맞지 못하다. 이 변화의 속도는 매 순간 복리로 증가하고 있고, 지금도 우리는 원시적인 뇌의 본성 때문에 진화한 사회에 매번 패한다. 인간의 뇌는 어느 순간 이 변화를 감당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자기계발서인 역행자를 읽다 문득, 얼마 전 제주에서 읽은 김영하의 작별인사의 결말이 떠올랐다. 작별인사는 가까운 미래에 휴머노이드 로봇과 인간의 공생을 다루는 어쩌면 흔한 소재의 소설이다. 이 소설은 끝은 대부분의 인간이 자연 소멸하고 인공지능이 지구의 주류가 되며 마무리된다. 일반적인 로봇과 인간의 대립을 다루는 이야기와는 다르게, 서로 살육전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자연적으로 도태되어 '멸종' 한다.
아주 먼 과거로부터 진화해온 '생명' 이라는 프로그램은 환경에 맞춰 스스로를 개선하며 '인간' 이라는 지금에 이르렀다. 하지만 개선에 개선을 거듭해 누더기가 되어버린 생명은 자신들이 변화시키는 세상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고, 언젠가는 개선이 아닌 차세대가 필요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