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에서 열이 전달되는 방법은 전도, 대류, 복사 이렇게 세 가지가 있다고 배웠습니다. 원칙적으로는 그렇지만, 이 정도 지식으로는 요리가 왜 잘되고 못 되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주방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조금 더 복잡합니다.
전도는 직관적이어서 이해하기 쉽습니다. 뜨거운 것이 닿으면 같이 뜨거워지는 것이니까요. 고체에서는 이런 전도만이 가능하지만, 액체나 기체는 분자들이 열을 가지고 직접 이동하는 방식인 대류가 함께 일어납니다. 냄비에 고기와 물을 넣고 끓이면 물이 대류하며 열을 골고루 퍼뜨립니다. 하지만 물이 가진 열이 닿아있는 고기에 전달되는 것은 전도이고, 고기가 천천히 안쪽까지 더 익는 것도 전도 때문입니다.
전도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쪽은 의외로 조리 도구입니다. 금속으로 만든 도구는 목재로 만든 손잡이나 음식 자체보다 훨씬 전도가 빠르게 일어납니다. 이를 두고 열전도율이 높다고 합니다. 주먹만한 고기를 속까지 데우는 데는 수십분에서 수시간이 걸리지만, 팬과 냄비를 데우는 것은 금방입니다. 전도가 너무 빨라서 태우는 것을 조심해야 할 정도입니다.
조리 도구의 열 전도율은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우선은 외부의 열을 음식에 전달하는 속도를 결정합니다. 외부의 열원은 500도에서 1000도 이상까지 높고 다양합니다. 음식이 조리되는 온도는 아무리 높아야 200도 부근입니다. 도구의 열전도율과, 어떤 두께와 형태로 만들어졌는지에 따라 이 열을 관리하는 능력이 달라집니다. 금속팬으로는 1분 만에 조리를 시작할 수 있지만, 돌판을 쓰려면 더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내부의 열을 외부로 빼앗기지 않게 응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나무 찜기가 대표적입니다.
두 번째 중요한 것은 도구에 열이 얼마나 빠르게 골고루 퍼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전도율이 높은 금속은, 뜨거운 곳과 덜 뜨거운 곳의 차이가 금방 메워집니다. 음식이 닿을 수 있는 표면의 온도가 골고루 일정한 것도 중요하지만, 음식이 닿자마자 내려가는 특정 부위의 온도가 얼마나 빠르게 전도를 통해 복구되는지도 중요합니다. 결과적으로 덜 태우고 골고루 익힌 음식을 만드는 데 영향을 줍니다.
전도와 대류만 이해해서는 삶는 것과 찌는 것이 왜 결과가 그렇게 다른지, 음식을 식히거나 데울 때의 속도 차이는 어디서 나는지, 왜 요리할 때 수분과 불조절이 그렇게 중요한지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을 이해하는 핵심에는 수증기가 있습니다.
물은 대기압 조건에서는 100도에서 더 이상 온도가 오르지 않고 그 에너지를 수증기를 만드는데 사용합니다. 수증기는 대류하다가 조건이 맞으면 다시 물로 변하는데, 그 과정에서 받았던 에너지를 다시 내놓습니다. 그런데 이 에너지의 양이 같은 무게의 물을 1도 올리는 데 필요한 에너지의 540배 정도가 됩니다. 찜을 할 때 수증기가 음식에 닿는 그 찰나에 엄청난 열에너지가 전달되는 것입니다. 불이나 도구를 직접 대면 태울 수 있지만, 수증기로 바꾸어 열을 전달하면 쉽게 타지도 않습니다. 100도가 넘어가면 다시 수증기가 되니까요.
수증기는 꼭 물이 펄펄 끓는 환경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습도에 따라 우리 주변에는 이런 잠열을 가진 수증기가 적거나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같은 온도라도 건식 사우나보다 습식 사우나에 들어가면 금방 더워지는 것처럼, 습도에 따라 음식에 열이 전달되는 속도는 달라집니다. 샤워를 하고 난 뒤 바람을 맞으면 체온이 금방 떨어지는 것은 꼭 끓고 있는 상황이 아니어도 표면의 물이 수증기로 기화하면서 열을 빼앗아가는 경우입니다. 방금 조리한 음식을 넓게 펴서 바람을 쐬면 금방 식으면서 표면이 금세 마르기 시작합니다. 수분이 적은 음식이나 기름을 발라 증발을 저해하는 경우에는 이 효과가 약해집니다. 반대로 마른 음식에도 물을 살짝 뿌려 바람을 쐬면 훨씬 빠르게 식습니다. 이런 경우, 내부의 열이 식고 있는 표면의 물까지 전달되는 과정은 전도이고, 물이 수증기로 바뀌는 것은 열의 전달이 아니라 상태의 변화인 기화이며, 그 수증기가 섞인 공기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동시에 수증기가 없던 주변의 공기로 대체되는 것은 대류입니다.
수증기가 갑자기 발생할 때 순간적으로 많은 열을 필요로 한다는 점은, 수분이 포함된 모든 음식을 가열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입니다. 튀김할 때 나오는 거품은 수증기입니다. 기름의 온도가 몇도이건, 거품이 나오는 그 순간의 수증기 온도는 100도이며, 그 주변의 식재료와 기름은 튀김옷의 물과 수증기를 경계로 열을 주고받는 과정에 있을 뿐입니다. 바깥쪽의 기름은 잃어버린 열을 대류로 다시 보급하고, 안쪽의 식재료는 찜을 할 때 처럼 수증기의 액화와 전도를 통해 속까지 열을 전달합니다.
표면의 수분이 마르면 이 경계선이 얇아집니다. 기름은 식재료에 직접 전도를 하기 시작하고, 온도는 100도를 넘어 색이 변하는 구간으로 진입합니다. 큰 에너지를 흡수하던 수분이 사라졌으니 온도는 갑자기 빠른 속도로 오르기 때문에 태우기도 쉽습니다. 팬에 음식을 올릴 때 나는 치이익 소리는 갑자기 발생한 수증기가 틈새로 빠져나가며 내는 피리 소리입니다. 물기를 잘 제거하지 못한 채 고기를 구우면 팬이 가진 에너지가 온도를 올리는 데 쓰이지 못하고, 그보다 540배 비싼 수증기를 필요 이상으로 만들어 내는 데 쓰여야 합니다. 조리하면 수분을 더 빨리 배출하는 얇은 고기나 야채를 물기 없이 조리하려면 훨씬 많은 열을 순간적으로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복사는 고체, 액체, 기체로 설명되는 분자들이 아닌, 전자기파라는 것을 통해 열이 전달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공 상태에서도 복사열이 전달되는데, 태양열이 지구에 닿는 방식이 바로 이 복사입니다. 복사열은 열이 있는 모든 물체에서 발생합니다. 다만 그 양이 절대온도의 4제곱에 비례하기 때문에 실감되는 복사열은 물체에 따라 큰 차이가 납니다. 예를 들어, 200도인 팬과 600도인 숯의 절대온도는 각각 473K, 873K 입니다. 이것을 4제곱씩 한 값을 간단한 비율로 바꾸면 9 : 105 정도가 됩니다. 마찬가지의 비교를 250도 정도가 최대인 일반 오븐과 500도인 피자 화덕으로 해 보면 1 : 5 정도가 됩니다. 온도가 오른 것에 비해 복사열의 양은 훨씬 많이 오릅니다.
물론 우리의 환경은 우주가 아니며 요리할 때에는 늘 전도체와 대류환경이 있어 복사열이 유일한 열원인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숯불 위에서는 석쇠가 전도체 역할을 하고 있고, 오븐이나 화덕 안에서도 공기가 대류합니다. 하지만 온도가 높아질수록 네제곱에 비례하는 원리에 따라 상대적으로 복사열이 전체 열 전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커지기 때문에 복사열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룰 것인지가 중요해지게 됩니다.
복사열은 사방으로 퍼지기 때문에 마치 조명처럼 거리가 2배 멀어지면 전달되는 양은 1/4로 줄어듭니다. 이런 열의 퍼짐에 의한 손실을 줄이기 위해 화덕을 돔 형태로 만들어 중앙에 복사열이 집중되도록 하거나, 샐러맨더의 윗판에 거울같은 반사판을 달아 한쪽으로 열을 모아주어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쓸 수 있습니다. 돋보기나 거울로 태양 복사열을 모을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요리에 쓰이는 열원에서 나오는 전자기파는 대부분 적외선입니다. 적외선은 태양에서 발생하는 가시광선 또는 자외선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에너지가 낮은 전자기파로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열원의 온도가 525도는 넘어야 가까스로 가시광선이 나오면서 색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온도가 좀 더 올라 밝은 빨간색(800도)에서 노란색(1000도), 청백색(1400도)으로 변하여도, 대부분의 열은 보이지 않는 적외선의 형태로 나옵니다.
전자기파는 뜨겁지 않습니다. 태양빛이 지나온 우주는 차갑습니다. 어딘가에서 차단당해 파동성을 잃어버리고 에너지를 내놓을 때에만 그 차단한 물체의 온도가 오를 뿐입니다. 손을 대면 뜨거워지는 것은 손이 차단에 쓰였기 때문입니다. 요리에 쓰이는 모든 식재료와 용기, 도구는 적외선을 차단하는 동시에 그 에너지를 흡수합니다. 조리 환경에서 적외선은 공기 외에 거의 아무것도 투과하지 않습니다. 숯 정도의 온도에서 나오는 근적외선(적색 가시광선에 가까운 적외선)은 식재료 투과성이 약간 있지만 mm 단위에 불과합니다. 원적외선은 투과성이 거의 없습니다. ‘원적외선이 속까지 골고루 익혀줍니다’라는 표현은 틀린 것입니다. 근적외선인 경우에도 아주 얇은 재료에 대해서만 적용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일단 열을 전해 표면을 데우면, 그 다음부터는 다시 전도나 대류를 중심으로 열이 전달됩니다.
전자레인지에 쓰이는 마이크로파는 적외선과 파장이 달라 음식 표면에서 조금 더 침투한 뒤 물, 기름, 설탕, 소금 등에 선택적으로 열을 전달합니다. 보통은 표면에서 2-3cm 까지만 침투해서 데우지만, 빵처럼 공기가 많은 경우에는 투과성이 높아져 속까지 잘 전달됩니다. 얼음을 상대로도 투과성이 높아 보통 해동은 더 오래 걸리는데, 기름이나 설탕 성분은 언 상태라도 마이크로파에 반응합니다. 그래서 전자레인지에서 아이스크림은 금방 녹고 냉동피자는 페퍼로니만 먼저 타버립니다. 마이크로파가 유리, 도자기, PP 재질은 투과하기 때문에 용기의 온도를 직접 올리지 않습니다.
인덕션으로 에너지를 전달하는 과정은 전도, 대류, 복사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인덕션 히팅을 번역하면 ‘유도 가열’ 입니다. 열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고, 차가운 상태에서 자기장을 만들어 냄비에 전류를 유도합니다. 냄비 금속 내부의 저항과 자성 성질에 의해 열이 발생하며, 그때부터 다시 냄비 안의 재료로 전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금속에 따라서 유도 가열의 효율은 다릅니다. 그래서 같은 양의 물을 끓이더라도 걸리는 시간이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인덕션을 중심으로 주방을 운영한다면 꼭 신경써야 하는 문제입니다.
토치는 불꽃 때문에 복사열에 의존한 조리법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거의 전적으로 타고 있는 기체의 대류에 의존하는 열 전달방법 입니다. 그래서 주변으로 열이 퍼지지 않고 불꽃 부위에 직접 닿아야지만 열이 전달됩니다. 가스레인지의 불꽃과 재료는 같지만, 한곳으로 모아 강하게 쏜다는 점이 다릅니다. 열과 바람이 집중되며,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수증기와 수분막도 바로 밀어내 버리는 물리력이 있어 즉각적으로 표면의 온도를 올리는 데 특화되어 있습니다. 토치의 불꽃이 파란 것은 충분한 산소가 공급되어 완전 연소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만일 노란 불꽃이 보인다면 불완전연소가 발생하는 중이며, 일산화탄소와 그을음이 발생하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이것은 가스레인지를 쓸 때도 마찬가지인데, 냄비를 올린 상태로 센 불을 쓰는 등 상대적으로 산소의 공급이 부족해진 상황에서 일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