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 대백과사전
라라랜드의 첫 장면이 펼쳐졌을 때의 숨 막히는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다. 영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로맨틱한 내용이라는 것만 알고 지인과 영화관을 찾았다. 평소에는 혼자 영화를 보는데, 정말 오랜만에 보고 싶은 영화가 같은 사람과 함께 하니 색다른 기분이었다.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노래를 부르는 운전자들과 승객들이 갑자기 고속도로로 뛰쳐나와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아, 이 영화는 뮤지컬이구나! 음악이 유쾌하고 세련되어서 뮤지컬 장르를 자주 듣지 않는 나에게도 흥겹게 느껴진다. 고속도로에서의 군중신이 끝나고 영화는 꿈을 좇아 사느라 고생 중인 두 남녀 주인공에게 초점을 맞춘다. 당시로서는 비교적 최근에 꿈을 향해 노력하는 희열과 쓰라린 좌절을 경험했던 후였던지라, 주인공들의 선택에 특히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 같다. 영화가 다 끝나고, 밝은 복도로 걸어 나오면서 나란히 걸어가던 지인에게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말을 쏟아냈다. '영화 진짜 좋지 않았어? 와, 곡들이 진짜 세련되더라. 라이언 고슬링이 피아노를 너무 잘 쳐서 깜짝 놀랐어. 대역인 줄 알고 자세히 봤는데 아니더라고.' 누군가와 영화를 같이 본다는 것은 따끈따끈한 감상을 바로 나눌 상대가 옆에 있다는 것이다. 혼자 영화를 보고 나서는 집에 돌아가서 블로그나 컴퓨터 메모장에 온갖 상념을 글로 쏟아놓긴 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옆에 있다면 영화를 본 후 바로 감격하고 (혹은 욕을 하거나)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나 새로운 시각을 접할 수 있다. 그러면서 영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또 다른 재미가 이어진다. 나의 격양된 목소리와는 달리 지인의 대답은 뜻밖에도 시큰둥했다. '영화가 좀 길더라.' 사실 정확하게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 감정이 섞이지 않은, 굳이 따지자면 부정적인 반응이었는데, 그 단답형 대답의 건조함에 큰 충격을 받아서 그때의 기억을 잠시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떻게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아무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가 있지? 하다못해 남자 주인공이 잘생겼다거나 (혹은 별로라거나), 영화가 너무 신파라서 지루했다거나, 하는 식의 본인의 판단이 포함된 대답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니야? 순간 너무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가서 한동안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이 영화가 좋다고 생각하는 내가 이상한 건가? 아니, 지인도 이 영화를 좋아할 것이라고 짐작하면 안 되었는데, 내가 실수한 건가? 혼란에 빠진 나는 말없이 지인과 나란히 걸어갔고, 우리는 아마, 식사를 했거나, 차를 마셨던 것 같은데, 그 이후의 기억도 또렷하지 않다. 확실한 기억은, 우리는 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나누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려고 누군가와 약속을 하고 영화를 같이 보려던 것이 아니었는데, 뭐가 잘못돼도 대단히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그 지인과의 관계는 그녀의 연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외국에 나와 살면서, 나이가 같은 지인이 생긴다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공유할 수 있고, 겪어온 삶의 발자취가 얼추 비슷하기에 금방 친해졌다. 취미도 같고, 하던 공부도 같았다. 매사에 적극적인 그녀를 보면서,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자극을 받곤 했다. 당시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나에게, 그녀는 꾸준히 연락을 해주었고, 난 그런 그녀의 관심이 부담스러우면서도, 동갑 친구의 호의를 거절할 수 없어서 간간히 만남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내 생일에 아직 만난 지 오래되지 않았던 우리의 친밀감에 비례하지 않는 고가의 선물을 챙겨주었고, 난 그런 고마움을 표시하려고 무리해서 고가의 선물로 답을 했다. 우리가 만나면 공통분모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할 말이 많긴 했지만, 만나는 횟수에 비해서는 친밀감이 쌓이고 있지 않았다. 그녀가 연락해 올 때마다, 어떻게 거절해야 하나 핑계를 찾고 미룬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내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으면 연락이 잦아들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꾸준했다. 그러던 중에 영화를 같이 보았고, 그제야 우리가 정서적으로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단지 같은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같은 경험을 공유한 후에, 서로의 감상을 소통하지 못하는 답답함은 충격이라는 단어 외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이때 난 결단을 했어야 했다. 그녀와의 만남을 더 이상 이어가지 않았어야 했다. 나에게 베푸는 호의와 관심을 고마워하는 것과는 별개로, 더는 발전하지 않을 관계에 소중한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는 낭비를 멈췄어야 했다. 영화를 본 후에 느낀 석연치 않은 감정은 강렬했지만, 그 뒤로도 난 그녀를 몇 번 더 만났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와의 관계가 갑작스럽게 끝나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서술하고 싶지 않지만, 그동안 그녀가 계속 연락을 계속했던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됨과 동시에, 그녀는 본인이 중요시한다던 가치관과 상반된 행동을 함으로써 나에게 피해를 끼쳤다. 부끄럽게도, 내가 그녀와의 관계를 끝낸 방법은 전혀 깔끔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서, 내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왜 본인이 강조하는 가치관과 다른 행동을 하는지 비난하는 감정의 속사포를 꽤 오랫동안 퍼부었다. 그녀는 통화 중에도 사과를 했고, 나중에 이메일도 보내왔지만, 우리의 관계는 회복되지 않았다. 난 오히려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그녀의 대답이 떠오를 때마다 한동안 화가 치밀었다. '라라랜드'가 개봉하고 8년이 지났지만, 영화제목을 접할 때면 그녀와의 일이 자동적으로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오른다. 정말 좋아하는 영화이지만 다시 보지는 못하고 있다. 그녀와 영화를 보고 나서 더 이상 만나지 않았다면, 그 나쁜 기억이 생기지 않았을 텐데. 어쩌면 그녀가 나에게 입힌 피해는 가치관에 따라서는 별 것 아닌 걸 수도 있고, 비록 나의 가치관에 반하는 행동이었어도 그녀를 너그럽게 용서했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변하지 않는 사실은 그녀와 내가 서로 마음이 통하는 사이가 아니었고, 우리의 관계는 그 사건의 유무와 상관없이 더는 깊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이 모든 일은, 단호하지 못한 나의 실수였음을 인정한다.
실수의 원인:
- 인연이 아닌 사람과 생각 없이 만남을 이어갔다. 의사소통의 방식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에도 그저 호의가 고마워서 관계를 이어갔다. 시간과 비례해서 깊어지지 않는 관계에 매달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 과한 호의를 그저 고맙게만 생각했다. 누가 나에게 이유 없이 친절하고 잘해줄 리가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모를 때야말로 시간을 두고 상대의 진정성을 숙고해 봐야 하는데, 난 그저 고마워서, 그 은혜를 갚기에 급급했다.
- 관계를 감정적으로 끝냈다. 내가 화를 냄으로서 얻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잘못을 이해하지 못했고, 피해는 복구되지 않았으며, 관계는 회복될 수 없었다. 차라리 내가 그녀에게 화를 내지 않고 연락을 끊었다면 나쁜 기억이 더 빨리 희석될 수 있었을까?
다짐:
- 만날 수록 좋은 감정이 쌓여가는 관계만 유지하자. 무리해서 노력해서 이어지는 관계는 언젠가 한쪽의 에너지가 소진되면 무너지게 된다.
- 이유 없는 과한 친절은 의심해 보자. 나같이 눈치가 없는 사람은 특히 더 조심해야 한다.
- 관계는 깔끔하게 끝내자.
- 좋은 영화는 혼자 보자. 영화를 같이 본 사람을 더 이상 추억하지 않고 싶어질 수도 있다. 영화를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소도구로 이용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