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확실한 내향형 인간이다.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 아니 지극히 두려워하는.
이런 성향은 학창 시절 매 학기 새 친구와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교실을 마주할 때마다
나를 힘들게 했다.
나는 나의 이런 성향이 싫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그 시절에는 누구와 상담을 하는 분위기도 아니어서 내내 나의 못난 성격이지 뭐...
이러면서 그냥 그렇게 지내왔었다.
성인이 되어 좋은 사람들도 만났지만 어쨌든 나는 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의 좋은 면을 봐주고 지금까지도 인연이 이어진 친구들은 나를 이해해 주는 좋은 사람들이다.
남편도 그중의 한 명이다.
나를 그대로 인정해 주는 사람. 내 말에 귀 기울여주는 좋은 사람이다.
연애 때부터 결혼과 육아에 대해 시니컬한 나였지만 그 어느 것도 부정적이게 봐주지 않았다.
이렇게 내 인생에 첫 번째 변곡점을 만났다.
결혼을 한 후 아이를 한참 동안 일부러 갖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미룬 건 위에서 말했던 거처럼
내가 나를 못나게 생각하고 있어서였다.
그런 내가 아이를 키운다는 건 아이에게 몹쓸 짓이라며 지레 포기했던 것이다.
그런 시간이 5년 정도였다.
그 기간 동안 남편은 그 어느 것도 재촉하지 않았다.
나의 생각대로 나의 뜻대로 해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문득,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변화를 두려워하고 도전을 항상 신중하게 생각하는 편인데
지금 생각해도 사람에겐 참으로 알기 어려운 다양한 면이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그때가 37살이었다.
병원을 다니게 되었고 감사하게 바로 아이를 갖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나에게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신이 주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지금 7살이 되었다.
아이와 놀거나 훈계하다 보면 불쑥불쑥 나의 어린 시절을 만나게 된다.
'내 안의 얽힌 실타래가 풀리지 않은 채 아이를 낳고 길러도 될까...'
'나도 나의 이런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는데 아이가 이걸 닮으면 어쩌나..'
나의 어린 시절과 나의 부모님과의 관계를 떠올리는 건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이걸 아이한테 들키기 싫었다.
비가 내린 뒤 남겨진 빗물 자국이 아직 내 안에 남아있다.
혼자 부단히 그 자국을 지우려고 노력했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그런 내가 누군가를 양육한다고? 아이까지 부정적이고 우울한 인간으로 만들고 싶은 거야?
그런데, 아이를 키운다는 건 일방적인 양육 관계가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37살에 새로운 나 자신과의 만남과 여정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아이의 탄생과, 더불어 나의 탄생을.
나는 여전히 나의 과거와 마주한다.
하지만 조금 달라지고 있음을 스스로 느끼고 있다.
내 안의 빗물 자국을 지우려 하지 않는다. 그것 또한 나였던 것이다.
삶은 복잡하지만 단순했다.
받아들이기 시작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내 인생의 두 번째 변곡점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사진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