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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플래쉬 Jul 15. 2024

영화에 대한 영화, 삶에 대한 회고록

: 영화를 보다 문득, 삶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있음을 깨닫다. 





영화에 대한 영화는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소재는 아니다. '영화 속 영화'라는 틀이 서사적 상상력에 가하는 제약이 상당해서 특별한 이야기를 이끌어내기 쉽지 않아서일까. 게다가 영화 산업과 촬영 과정을 다루는 이야기에는 시대적인 제약까지 존재한다. 현시대의 영화 산업을 풀어내고자 한다면 필연적으로 현재 존재하는 영화업계의 부당함을 그려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관람객으로부터 핍진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테니. 결국, 내부고발자를 자처하지 않는 이상 시대적 배경은 예전, 그러니까 현재보다도 더 영화산업이  열악했던 시기로 국한될 수밖에 없다.


물론 '영화를 다룬 영화'만의 강점 역시 명확하다. '배우가 연기하는 배우'가 주는 독특한 괴리감은 물론이고, 시대적 검열과 카메라 기법, 촬영 현장 등 그 시대상을 가장 명확히 반영하는 소재라는 점에서 '옛 시절에 대한 회고록'이라는 또 다른 특성이 두드러진다. 물론 이전 세대의 영화 현장에서는 불편함, 불합리함과 부정의가 난무하지만, 감독들은 그것을 낱낱이 파헤친다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이것조차도 영화의 역사였다'며 끌어안는 애증 어린 손길을 드러낸다. 물론 나이가 지긋한 관객 역시 감독과 비슷한 시선으로 향수에 젖어 영화를 감상하게 된다. 


<바빌론>은 1920년대 할리우드, <시네마천국>은 1945년 즈음의 이탈리아, <거미집>은 1970년대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거미집>은 1970년대 국가에 의한 사상 검열이 거세던 시기의 영화 촬영 현장을 그려내고 있으며, <바빌론>은 그보다 조금 더 폭넓은 의미에서 1920년대 할리우드의 영화 산업과 인물의 삶 전반을 다루고 있다. <시네마천국>은 영화 제작과 산업 자체에 주안점을 두지는 않았으며, 소재가 영화일 뿐 인생에 대한 얘기를 풀어내는 영화이다. 










<거미집>은 앞서 소개한 세 작품 가운데 가장 '영화를 만드는 감독', 그 개인의 이야기에 충실하다. 국가의 검열을 피해 충격적인 걸작을 만들고자 하는 감독의 욕망이 드러나는 <거미집>은, 결국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예술에의 열정'을 극 중 내내 풀어내고 있다. 배우들의 상황이 여의치 않아도, 제작 환경이 열악해도, 국가의 검열이 난무해도 '더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감독(송강호)의 의지는 꺾을 수 없었다. 물론 이러한 극의 흐름은 결말부에서 완전히 반전된다. 


영화 영화의 제목이기도 <거미집>. 불륜, 각자의 욕망으로 파멸을 맞이하는 <거미집> 주인공들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탐욕으로 인한 주인공들의 불행한 결말은 감독(송강호)의 욕망과도 상통한다. 불길이 치솟는 중에도 촬영을 멈추지 않는 그의 열정과, 영화의 대성공을 예감하는 관객들의 기립박수에도 불구하고 감독(송강호)은 어쩐지 후련하지 않은 표정을 짓는다. 


감독(송강호)은 사실 동료이자 선배였던 신 감독(정우성)의 작품 시나리오를 훔쳐 썼다. 결말부에는 불에 타 죽은 신 감독과 <거미집> 촬영 현장의 마지막 화재가 오버랩되며 결국에는 탐욕에 휩싸인 감독(송강호)도 <거미집>의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거미줄에 속박된 존재일 뿐임을 암시한다. 물론 감독(송강호)의 표절과 관련한 진실을 아는 자는 없지만, 죄책감이 결여된 채 본인의 목표만을 향해 나아가는 자에게는 언젠가 거미줄의 저주가 있을 것이라고. 감독(송강호)은 관객들의 찬사를 자아내 거장이 되겠다는 목표는 이루었을지 몰라도, 감독 개인의 예술가로서의 자아상과 자존심은 철저히 구겨진 것이다. 그러니 결말부 감독(송강호)의 의미심장한 표정이 이해가 된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집에 실린 <거미줄>이라는 소설이 생각나는 영화다. 악행을 저지른 자에게는 언젠가 거미줄(동아줄)이 끊어지는 신의 심판이 다가온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바빌론>은 앞선 <거미집>보다, 조금 더 폭넓은 의미에서의 영화 산업에 대해 다룬다. 주인공을 감독과 배우, 작가가 아니라 영화에 문외한이었던 스태프로 설정하며 할리우드 산업에 대한 관찰자 시점을 선택한 것이다. 


아마도 현실과 최대한 비슷한 고증을 한 작품일 것임을 감안하면, 당시 할리우드 산업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마약, 술, 집단 난교가 무성한 파티에 지하 불법경매장까지. 촬영 현장은 또 어떤가. 부족한 기술력으로 인해 사람이 몇 명씩이나 죽어나가고, 배우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부당한 이유로 교체되며, 그 자리는 또 수많은 지원자들로 인해 대체된다. 화려할지는 몰라도 행복한 삶과는 거리가 멀다. 영화 현장은 타락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세계였다. 한때는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 여배우 '넬리' 역시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빌론>은 할리우드가 쌓아 올린 그 모든 과정을 보여줄지언정, 부정하지는 않는다. 부당할지라도, 정의롭지 못했더라도, '영화를 완성시킨다'는 일념 하나로 모인 사람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중요치 않았다. 욕망으로 점철된 열정과 광기는 어쩌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영화에 대한 낭만의 시대 그 자체를 뜻하기에. 


그래서일까. 영화업계에서 손을 뗀 주인공은 훗날 영화관에서 홀로 영화를 감상하며 탄복한다. 무성영화부터 아바타와 인터스텔라까지, 할리우드가 쌓아 올린 모든 역사를 보여준 감독의 의도는 할리우드에, 또는 영화라는 업계에 종사한 모든 사람에게 베푸는 찬사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영화를 만든다는 데 있어서 주목받는 것은 감독과, 배우, 작가 등 소수의 인재뿐이지만, 그 과정을 묵묵히 함께한 모든 사람들에게 전한다. 그대들 역시 그 역사에 함께했노라, 고.









마지막으로 <시네마천국>은 영화를 소재로 삶을 다루고 있다. 한 아이의 꿈이 탄생하는 순간, 청년이 꿈을 이루기 위해 가족과 고향을 떠나는 순간, 중년에 접어들어 꿈을 이룬 뒤 그 모든 삶의 순간을 회상하는 결말부. 


너무나도 유명한 <시네마천국>의 마지막 장면이 그토록 울림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알프레도가 토토에게 남긴 것은 단순히 '당시 검열당했던 키스신을 이어 붙인 필름'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옛 기억에 대한 그리움 그 자체이다. 알프레도는 토토의 성공을 위해 낡아빠진 이탈리아의 변두리 마을에서는 그 무엇도 기대할 것이 없으니, 큰 곳으로 떠나가야만 성공을 할 수 있다며 몰아붙였다. 과거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이 젊은이가 가져야 할 태도라고 말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토토와 함께하며 필름을 이어 붙인 알프레도에게 과거의 기억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었다. 외려 그 소중함을 알았기에, 토토가 무한한 가능성을 저버리고 과거에만 얽매이는 것을 경계한 것. 토토는 이미 늙어버린 저와는 달랐으니까.


영화감독으로 성공을 거둔 토토는 몇십 년 만에 고향과 가족에게 돌아온다. 그 사이에 알프레도와 매일 함께했던 영화관은 문을 닫고, 어머니와 동생은 늙고, 알프레도는 죽었다. 모든 것이 변해버린 상황에서 토토는 씁쓸한 마음을 삼켜야만 했을 것이다. 고향을 버리고 성공을 좇아간 것은 제 선택이었으므로. 


하지만 알프레도가 남긴 필름을 보며 토토는 끝내 눈물을 흘린다. 현재의 성공은 과거의 인연에 대한 희생으로 가능했던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간 기억은 너무나도 소중하기에. 이제는 얼굴도 가물가물한 첫사랑도, 알프레도와 영사기를 돌렸던 기억도, 고향을 떠나온 기억도.. 어쩌면 죄책감을 덜기 위해 마음 편히 떠올릴 수조차 없었을 수많은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잡을 수도 없고, 되돌아갈 수도 없는 젊은 날의 기억들이. 이제는 늙어버린 자신이. 그 옛날의 알프레도와 엇비슷한 나이가 된 지금에서야 알프레도의 진정한 마음을 알게 되는 토토다. 자신을 정말 소중하게 여겼다는 것을. 






세 편의 영화 모두 영화를 소재로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지나간 시절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비록 그 시절을 몸소 겪지는 않았더라도, 투박하고 거칠기에 더욱 찬란할 수밖에 없었던 영화의 황금기와 어른들의 젊음. 언젠가는 이 영화들을 다시 보며 나의 지나간 젊음이 생각날 것이다. 알프레도가 이어 붙인 필름을 보던 토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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