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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명소를 찾아라

by 하이브라운

방학 기간이라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작년 한 해 과정부장을 맡아서 다른 교사들보다 방학 중 출근이 잦고, 학교에서 연락 또한 많이 온다.

그래도 학기 중보다는 여유가 많다.

그런데 문제는 아들 또한 방학이라는 것. 더 문제는 얘가 외동이라는 것. 더더욱 문제는 얘가 초등학생이라는 것. 그렇다. 집에서는 뭘 할 수가 없다. 놀아줘야 한다. 출근이 더 편하다는 게 절대 엄살은 아니다.


작년 12월부터 독서에 불이 붙었다. 살면서 이렇게 책을 읽어본 경험이 별로 없다. 아니 전혀 없다. 소설과 에세이 가리지 않고 읽고 있다. 모든 책이 그냥 좋다. 재밌으면 재밌는 대로, 재미없으면 재미없는 대로, 유용하면 유용한 대로, 길면 긴 대로. 참 신기하고도 신기하다.

책을 읽다 보니 내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다. 에세이를 통해 삶과 생각을 나누는 작가를 보니 더욱 욕심이 생겼다. 뭐든 하면서 배우는 성격이라 일단 글을 쓰고 있다. 여러 작법서 읽기나 강의는 나중에 생각할 문제고 지금은 그냥 써보기로 한다.

하지만 위와 같은 '방학'이라는 환경은 집에서 절대 글을 쓰지 못하게 한다. 아들의 눈빛은 '내가 있는데 감히 노트북과 계속 시간을 보내는 거야?'라고 말한다.

그래서 글을 쓸 수 있는 장소를 찾기로 했다. 가장 만만하고 먼저 생각났던 곳이 커피숍. 다른 대안은 지금도 떠오르지 않는다. 일단 짐을 챙겨서 커피숍으로 향한다. 짐이라곤 책 두권, 노트북, 블루투스 이어폰. 카페에 도착하여 2시간 이상은 작업이 필요하니 일정 금액 이상을 주문하고자 마음먹는다. 성격이 좀 그렇다. 커피를 두 잔 주문할 수 없으니 샌드위치와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를 찾는다.

명절이라 도서관이 휴관임을 자리를 찾으면서 알았다. 가운데 나무 의자에 앉아서 빠르게 샌드위치를 먹고 보조 의자에 접시를 놓은 뒤 노트북을 꺼내어 지금 글을 쓴다.

'아~ 여기는 안 되겠다.' 방학이라 미취학 아이들이 돌아다니며 내 보조의자를 쳐서 접시가 쏟아질 것 같은 상황에서 무엇을 하겠는가?(그래도 아이들을 너무 사랑합니다. 대한민국의 희망이여.)


오늘은 마침 눈이 많이 내린다. 며칠 전에 읽은 김연수 작가님의 산문집에서 눈 내리는 좋은 날에는 눈이나 실컷 맞으며 행복해라고 나와있다. 그래 창 밖으로 오랜만에 눈을 보며 샌드위치와 커피의 여유를 혼자 즐기니 이것도 행복하다. 비록 창작의 명소를 찾지 못하였어도.


*오늘 이 하찮은 글도 무거운 짐을 가지고 눈길을 뚫으며 11,200원을 지불하고 쓴 값진 글임을 우연히 들어오셔서 읽어주신 당신께 감사드리며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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