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방

by 김경태

과장하면 아버지는 86개,모든 쟝르의 음악을 좋아하는 매니아 였다.

또 여행을 좋아해서 ,주말마다 우리를 태우고 덜컹 거리는 비포장 도로를 질주하는 오지 여행가 이기도 했다.(주로 강원도,백두대간과 지리산)


음악은 연상 작용이 강하다.

그 음악이 들리면 당시의 영상이 자연스레 파노라마 된다.

아, 이 노래가 나올땐 가파른 그 고개를 넘고 있었지.

이건...등등

아버지는 분위기 따라 카셋을 갈아 끼우며 음악을 달리 하셨다.

높은 산을 넘을땐 Rocky Mountain High 나 그 산의 찬가를,가족 모두가 졸고 있는 밤길을 운전 할때면 녹턴을, 배를 타고 홍도로 갈 땐 갑판에서 떠나가는 배를 나직막히 부르셨다.

"저 푸른 물결 외치는 거센 바다로 떠나는 배 ~

나홀로 외로운 등대와 더불어 수심 뜬 바다를

지키련다"

아 ....어떤 풍경과도 협연되는 아버지는 빛났다.

https://youtu.be/w3x3MQnGwH4?si=QCPdv-fluIACp0Aw


월정사에서 오대산을 넘어 구룡령까지,안개

자욱한 새벽에 벼랑길을 넘던 4시간의 공포 이후, 탐험대의 수는 하나 둘 줄었고,리빙스턴을 기억하는 둘 만이 남아 구석구석 숨어 있는 오지를 찾아 길을 만들었다.

낧은 4륜 구동차의 뒷바퀴에 감기는 자욱한 먼지, 실낱같은 비포장 길들.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는 둘이어서 두려운 것이 없었고 지루할 틈도 없었다.

진부령 고갯 마루에서,정선 숙암골로 가는 비포장길 위에서, 연이어 나타나는 마지막 휴게소의 커피 향 속에서, 아버지의 취향을 닮아가고,오래된 음악에 깃든 사연을 눈치채게 되었으며, 슬그머니 차안에서의 선택권도 내게 넘어왔다.


입시 탓이 컸지만,

지리산 서재, 갈대 지붕 집에서의 만찬을 끝으로 장정은 끝이 났고 우리는 대륙을 부러워 했다. 열여덟의 가을이었다.

1/50,000 지도 위의 비포장 도로는 온통 빨간색 색연필로 뒤덥혀 있었고, 동행한 음표들도 길 만큼 긴 줄을 섰다.


아버지의 방에서는 알게 모르게 익숙해진

Maestro's Symphony, Sonata, Cantata가 흘러 나왔고 질세라 Rock, Pop, Canzone, Chanson과 신중현과 엽전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혹 이웃에 해가 될까, 근심많은 어머니는 유리창에 두툼한 커텐을 2겹씩 둘러 치기도 하셨다.


스무살이 열리고,넝굴 장미에 가슴이 찔려 비틀 거릴 무렵,

차곡차곡 기억에 쌓인 선율을 꺼내고,흰색 젠하이저 Sennheiser 헤드폰이 나의 아이콘이 되었던 시절을 거치며,먼지 자욱한 비포장 길의 기억은 대부분 나의 노래요 나의 음악이 되었다.

음악은 풍요로운 선물이요 위안이었다.


잠시 시류따라 흐르는 소리에 귀 기울이기도 하였지만 대부분 득점없는 단타.

간혹,귀먼 이가 있어 뒷방에 가두려 했지만, 내겐 한 줄 한 줄 LP의 동심원처럼 새겨진 그 음악들이 더없이 다감하고 익숙하다.


CD로,MP3로,음원 스트리밍으로 세대가 바뀌어도, 대가 끊긴 LP판들에게 입김을 불어 넣으며 닦으시던 그 모습이 선하다.

유난히 허접하던 그 빽판들을 더 소중히 여기시던.

그리고 언젠가는 풍성한 음질의 진공관과 LP 시대가 부활 할 거라며,숨이 차 지직거리는

마란츠 Marantz 를 위로 하셨다.


마침내,부분적이고 먼 나라 이야기지만 LP가 다시 부활하고 있다는 낭보를 접했다.

기쁘하실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미 내 블루트스 오디오도 진공관이 두개나 들어 있는 따스한 목소리였음을.


사고사, Lab 의 초 고압 Hydraulic 이 폭팔한, 남의 이야기로만 여겼던, 충격으로 병원에 실려 가신 어머니,

14시간의 비행 끝에 비로소 뵐 수 있었던 마지막 모습, 가슴이 터져 버렸던 나날들.

1년전, 춥디 추운 겨울날 아버지는 그렇게 돌아가셨다.

사랑이 많았던 분, 보헤미안을 꿈 꾸시던 분, 공학자, 삶에 한 점 흠결이 없었던 분이었다.


3 이닝, 복병을 만나 고전하길 일주일 째, R - 4 의 연동 오류 Synchro - Default를 찾지 못한

우리는 '쇼팽의 전주곡No. 2' 에 포위되었고,

우울한 연가곡 '겨울 나그네' 는 속절없는 이국의 겨울을 근심하는 우리들의 가난한 모습과

꼭 닮아 있다.

https://youtu.be/2qesjA38qRA?si=DaJA1sPH20H71JTI

그래서 오페라 하우스 보다 웅장했던 아버지의 방이 더 그립고, 겨울은 더 가깝게 다가 오나보다.


연일 차가운 비가 내리고 낙옆이 감긴다

겨울이 떠나기 전,먼지 싸인 레코드가 수북한 그 방에서 아버지가 부르시던 그 노래를 다시 불러 드릴 생각이다.

내게 기타를 가르쳐 주시던 그 모습 그대로를 흉내내며.


챠이콥스키,리스트,라흐마니노프,드뷔시,

요한 스트라우스,번스타인,파가니니,카라얀, 에디뜨 피아프,나나 무스쿠리,지미 도시,

폴 모리아,냇 킹 콜,처비 체커, 사라 본,마빈 게이 ,블랙사바스,도나섬머,멜러니사프카,공옥진,

김소희, 이난영,한대수,에드포,뚜아에무아, 트윈 폴리오,박인희,김민기,이연실,윤형주,양희은 .....

LP 속에 살아있는 우리 모두 다 함께.

https://youtu.be/Gq432OPNVrc?si=4SZQYiwKU24KTK-b

※ P.S.

이틀 후 문제는 해결되었고 맥주잔 속에 빠져 허우적 거리다 문득 전혜린이 생각났다.

평생 슈바빙과 레몬빛 가스등을 그리워하던

...그 어디에도 그런 낭만은 없었지만

작가의 이전글아방가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