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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신익 Mar 09. 2020

[영화 리뷰] - <인비저블맨>

영리하게 보여줄 줄 아는 관음의 공포

  투명인간을 소재로 삼는 창작물은 정말 많지만 가장 상징적인 작품은 허버트 조지 웰즈의 소설 [투명인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보이지 않음으로 발생하는 관계의 단절, 책임으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욕망의 분출로 위험한 존재가 된다는 설정은 1933년 제임스 웨일 감독의 <투명인간>부터 2000년 폴 버호벤 감독의 <할로우 맨>까지, 공포, 스릴러 장르에 꾸준하게 각색되어 왔다. 지금 소개하는 리 워넬 감독의 영화 <인비저블맨>도 마찬가지이다. 제목부터 아주 똑같으며 공포스러운 존재로서 투명인간을 가져오고 그의 악행에 저항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작은 오마주까지 있는 것을 보면 원류를 같이 하긴 하지만 <인비저블맨>은 이를 적절하게 재해석해 이 영화만의 색깔을 영리하게 구현해냈다.

  투명인간이 공포, 스릴러 장르에서 긴장감을 부여할 수 있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점 때문이다. 물리적인 공격을 가하더라도 언제 어디서 들어올지 모르는 공격에 당하는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마련이다. <인비저블맨>은 이 부분이 주는 공포감을 영리한 정보 제공을 통해 극대화하는 영화다. 투명인간이 악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다룬 기존의 작품들과는 다르게 <인비저블맨>은 투명인간의 이야기를 최대한 배제하고 철저하게 피해자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마치 고전적인 공포 영화의 귀신과 주인공의 관계처럼, 직관적으로 주인공과 악역의 관계를 설정함으로써 장르적인 재미를 보다 효과적으로 끌어내고 있다.

  직관적인 이야기에 영화는 연출적인 요소를 통해 긴장감을 아주 잘 이끌어낸다. 인물이나 특정 행동 및 사건을 따라가는 일반적인 영화의 카메라워크와는 다르게 이 영화는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공간으로 카메라를 들이밀곤 한다. 특히 주인공의 긴 템포의 행동(물건을 찾는 등)을 보여주는 하나의 긴 컷에서 패닝 혹은 틸트를 통해 비어있는 공간을 보여준 뒤 다시 주인공으로 돌아오곤 한다. 투명인간의 존재가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는 컷에서도 끊임없이 투명인간이 있을 수 있음을 드러내면서 주인공이 관음 당하는 데서 오는 긴장감을 영리하게 조성하고 있다. 덕분에 악역을 직접적으로 전시하지 않아도 영화 전반에서 공포스러운 느낌을 느낄 수 있는, 성공적으로 분위기를 장악한 영화가 아닌가 싶다.

  이야기와 연출적인 완급 조절 역시 뛰어나다. 사실상 투명인간의 미스테리가 풀린 이후로는 주인공과 악역의 물리적인 충돌이 직접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고 구도가 이렇게 형성된 이후로는 관음이 주는 공포는 확실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러한 후반부를 스타일리시하고 역동적인 연출로 뛰어난 액션 시퀀스로서의 긴장감으로 돌파한다. 본격적으로 대결 구도가 시작된 후 병원 복도에서 벌어지는 씬은 보이지 않는다는 설정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데, 보이지 않는 액션에 리액션을 연속적으로 배치하고 이를 긴 흐름의 테이크와 역동적인 카메라 워크로 담아내면서 보는 재미와 긴장감을 선사한다. 이후 집에서 벌어지는 씬에서도 노골적으로 폭력을 전시하면서 불편함과 긴장감을 극대화하여 관음에서 벗어나 물리적 충돌이 주는 신선함과 긴장감을 아주 잘 살린다.

  연출적인 부분에서 정말 영리한 영화지만 주인공 세실리아를 연기한 엘리자베스 모스의 연기 역시 이 영화의 장점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지 않나 생각한다. 투명인간이 아닌, 철저하게 주인공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사실상의 원 우먼 쇼인데, 엘리자베스 모스의 연기는 확실하게 캐릭터를 각인시키고 이야기를 능숙하게 이끌어간다. 특히 이러한 부분에서는 사실 여부보다 인물의 특징을 보다 더 확고히 하고 끝낸 영화의 결말과도 어우러져 영화의 색을 한층 더 확실하게 만들지 않나 생각한다. 독특한 설정을 가지고 가는 장르 영화의 경우 종종 인물이나 이야기보다 영화의 설정이 주는 장르적인 긴장감만이 기억에 남곤 하는데, <인비저블맨>은 그 조건에 모두 부합함에도 확실한 인물을 보여줄 수 있었다. 당연히 리 워넬 감독의 각본과 연출도 한몫을 했겠지만 이러한 영화의 특징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 배우의 공이 매우 컸다고 생각한다.

  항상 영화는 '무엇을 보여주느냐'보다는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러한 점에서 <인비저블맨>은 아주 영리하게 소재를 보여주면서 분위기를 장악해나가는 영화였다. 특히 원작이 있고 원작이 갖는 아우라가 상당하다는 점에서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그 부담이 굉장히 크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하지만 <인비저블맨>은 그 부담을 잘 뚫어내고 완성된 영화가 아닌가 생각하고 자신만의 성공적으로 구축해낸, 뛰어난 리메이크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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