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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신익 Mar 09. 2020

[영화 리뷰] - <찬실이는 복도 많지>

잘나가지는 못해도 행복할 수는 있기에

  영화를 보다 보면 다분히 자전적으로 보이는, 혹은 실제 사건에 기반을 둔 것으로 보이는 영화들이 있다. 이러한 영화들을 보는 재미는 분명 영화 자체에도 있겠지만 실제와 비교하며 보는 재미도 있다. 이러한 경우 '아는 사람들만 아는' 그들만의 영화가 될 수도 있고 아는 만큼 보이는 영화가 될 수도 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역시 마찬가지다. 배우 김민희와 스캔들이 터지기 직전까지 홍상수 감독 영화의 PD로 쭉 활동해오던 김초희 감독의 모습과 그 당시 심경이 짙게 베여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그 정보를 배제하고 봐도 충분히 영화가 하고자 하는, 행복해지는 방법을 전달하는 데 성공한 영화이고 사전 정보 없이도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필자가 그러했으니까.

  영화의 연출적인 특징을 먼저 언급하자면 홍상수 감독의 연출법을 보다 쉽고 직관적으로 풀이했다는 느낌을 준다. 롱 테이크로 담아내는 두 인물의 대화와 추상적인 대사의 활용, 상황을 담담하게 지켜보는 카메라 등. 영화 초반 찬실의 꿈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급작스러운 컷 편집도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방식이다.(특히 꿈이나 다른 시간대의 장면을 이어갈 때) 건조한 나레이션을 활용하고 찌질한(!) 상황을 유도해내며 반복되는 상황에 조금씩 변주를 주는 것도 홍상수 감독 영화를 자주 봐온 사람이라면 쉽게 파악할 수 있는 특징이다. 주된 기조는 아니지만 뜬금없이 눈에 확 들어오는 인물(영화 초반 등장하는 외국인)이 나오는 것도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다.

  하지만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이러한 특징을 반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러한 특징들을 훨씬 직관적으로 바꿔버린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이러한 영화적 표현으로 추상적인 것을 이야기하려 했다면 이 영화는 확고한 방향으로 유도해내는 느낌이다. 예를 들면 꿈과 현실을 확실하게 구분하고 환영을 통해 '행복해지는 방법'을 직접 묻는 등 영화가 하고자 하는 얘기를 확실히 한다. 또한 앞서 언급한, 일반적이지 않은 표현법으로만 영화를 이끌어가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는 다르게 이 영화는 저러한 연출을 마치 시그니처 앵글처럼 티 나게 사용하기는 하되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앵글을 적절하게 혼용하기도 하고 패닝을 하는 데 있어서는 보다 광각으로, 카메라의 움직임 자체를 동반하기도 하는 등 차별점을 두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일상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독특한 분위기는 가져가되 전달하려 하는 바는 분명히 하는 이 영화만의 리듬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생각한다.

  영화의 이야기 자체로 들어가 보면 더더욱 차이를 보인다. 자신이 전담해 프로듀서를 맡던 감독이 갑작스럽게 사망하게 되자 실직자 신세가 된 찬실[강말금 분]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짠한 찬실의 상황과 처지로 웃음을 유도하긴 하지만 행복하기 위한 방법을 향해 올곧게 나아가는 영화다. 연애를 시도해보다 실패하고 영화에 관한 모든 것을 정리해보려 하는 등 일종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이야기를 전달하고 웃음을 유도해내긴 하지만 최종적인 목표는 스스로 행복해지는 것이다. 영화는 특정 사건을 중심으로 하는 굵직한 서사가 아닌 찬실의 일상을 겹겹이 쌓아나가면서 영화가 내세운 주제를 천천히 고민해나간다. 그러한 고민 끝에 영화의 끝에서, 마침내 장국영[김영민 분]을 놓아줄 수 있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찬실의 모습을 보면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그 행복해지는 나름대로의 답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찰진 사투리로 찬실을 소화해내는 강말금 배우와 더불어 여러 조연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연극 같은 앵글이 다수 즐비한 영화를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것은 덤이다. 여러모로 장점이 참 많은 <찬실이는 복이 많지>에서 가장 큰 발견은, 모방은 쉽지만 너무 그 색깔이 강해 모방 시 그 기조에 매몰되기 쉬운 홍상수 감독의 작법을 활용하면서도 이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만의 색과 행복한 기운이 베도록 해낸 김초희 감독의 연출력이 아닐까 싶다.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차이점을 찾아내는 재미가 있겠지만 영화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가진 행복한 에너지를 보는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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