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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신익 May 18. 2023

[영화 리뷰]<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

한계는 분명해도 과거 시리즈들의 재미가 어렴풋이 보이기에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21세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길거리 레이싱이라는 강한 컨셉을 바탕으로 한 중저예산 액션 영화가 4편을 기점으로 블록버스터 프랜차이즈로 선회해 성공적으로 안착했고, 제작비와 흥행 성적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시리즈가 처음 나온 지 20년이 더 지난 지금은 10번째 영화가 나올 정도로 튼튼한 시리즈가 됐습니다. 물론 마냥 꽃길만을 걸어온 것은 아닙니다. 초기 시리즈 중 공간과 인물을 모두 바꿔 진행한 3편은 처참하다시피 한 평가를 받았고 찬란했던 5~7편을 지나 진행된 8편부터의 시리즈 및 스핀 오프는 뛰어난 흥행과는 별개로 과도한 설정으로 비판을 받았습니다.(말 그대로 우주로 가버렸으니까요...) 이러한 우여곡절을 지나 마침내 시리즈의 최종장으로 들어선 10편,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이하 <분노의 질주 10>)은 최근 작품들에서 보인 시리즈의 한계를 내포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과거 시리즈들의 재미를 엿볼 수 있어 흥미로운 작품이었습니다.


  개연성이나 깊이에서 이래저래 아쉬움을 드러냈던 각본이야 시리즈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고질적인 문제였고, 이번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팀으로 뭉쳤을 때 각기 역할이 분명한 캐릭터들이 분열하면서 소모적으로 액션과 코미디에 활용되는 점, 스토리를 과거에서 끌어다 쓰거나 상황을 전개하는 데 있어 필요 이상으로 억지스러운 점, 가족주의를 내세우면서 말 몇 마디에 가족의 목숨을 위협했던 과거의 적을 동료로 맞이하는 점 등등. 이 영화의 단점을 적으라면 수도 없이 적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액션 영화에서 뭐 이런걸 따지냐 싶기도 하지만, 시리즈의 황금기를 이룩했던 5~7편이 적어도 시리즈가 내세운 테마는 지키며 '그 세계에서는 말이 되는' 이야기와 상황을 제시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단점이 분명하게 느껴집니다. 하물며 <분노의 질주 10>은 최종장의 파트 1 역할을 하기에 미완결된 이야기로서 갖는 태생적인 한계까지 있어 더더욱 아쉽게 다가오죠. 하지만 그럼에도 <분노의 질주 10>가 반가웠던 이유는 최근 작품들이 어겼던 시리즈의 법칙을 다시금 구현해냈고 덕분에 황금기 시절의 작품들이 주었던 재미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분노의 질주>의 세계관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탈 인간의 신체 조건과 운전 실력을 지닌 도미닉[빈 디젤 분]과 그 가족들이 불가능한 임무에 도전하는 것. 구체적으로 예시를 들자면 테즈[루다크리스 분]의 기술, 로만[타이레스 깁슨 분]의 입담, 한[성강 분]의 정보력, 도미닉, 브라이언[폴 워커 분], 홉스[드웨인 존슨 분]의 격투 능력은 운전대를 잡기 위한 것이며 결국 모든 사건의 해결은 말도 안 되는 드라이빙 능력을 바탕으로 한 카 체이싱에서 이뤄집니다. 마치 자동차로 쓴 무협지를 보는 듯, 기행에 가까운 액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이 시리즈의 세계관과 캐릭터들이었고, 덕분에 5편의 금고 추격전, 6편의 탱크와 비행기, 7편의 자유 낙하와 빌딩 사이를 주파하는 활동 등등, 비현실적이면서도 아날로그한 액션들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이었죠. 하지만 8편부터 SF적인 요소들이 과도하게 개입하며 이러한 시리즈의 매력이 많이 퇴색됐습니다. 8편의 자동차 해킹, 9편의 자기장, <홉스 앤 쇼>의 개조 인간과 차량 등 첨단 기술은 시리즈의 규모를 키우는 데에는 도움이 됐지만 정작 시리즈의 매력을 지워버리는 소재들이었습니다. 물론 <분노의 질주 10>에도 첨단 기술이 등장하긴 하지만, 적어도 영화는 이를 해결해 가는 과정을 시리즈의 기본 정체성으로 회귀해 탈 인간의 신체 조건과 운전 실력으로 그려냅니다.


  영화가 시작되고 처음으로 등장하는 대규모 카 체이싱은 로마 시퀀스는 케이퍼 무비스러운 이 시리즈의 매력을 잘 담아내고 있으면서도 다양한 차량 스턴트를 잘 구현해 내고 있으며, 브라질의 드래그 레이스는 시리즈 초기의 감성을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영화의 최후반부, 동굴에서 시작해 고속도로~댐으로 이어지는 기나긴 액션 시퀀스는 차량이 서로 부딪치며 파괴되고 전복되는 시리즈 특유의 타격감과 비현실적인 상황을 그에 걸맞은 운전 실력으로 타개해 나가는 이 시리즈의 매력을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 사이사이를 잇는 격투 씬들과 총격전(레티[미셸 로드리게즈 분]와 사이퍼[샤를리즈 테론 분]의 격투, 한과 쇼[제이슨 스타뎀 분]의 재회, 브라질 고속도로에서의 총격전 등등) 역시도 아날로그한 시리즈의 법칙 안에서 대규모의 액션 시퀀스 사이사이를 잇는 다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액션 시퀀스들은 보는 재미를 확실하게 보장하고 있으며 적어도 최근 몇 작품들보다 확실히 시리즈의 매력을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부분은 이 영화의 액션 시퀀스들이 모두 전작들의 액션 시퀀스를 재해석해 창조해낸 것이라는 점입니다. 1~2편의 길거리 레이싱은 브라질에서의 드래그 레이싱으로, 3편의 드리프트는 영화 초반부에 살짝 언급이 되며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댐에서의 액션과 제이콥[존 시나 분]이 동굴에서 갓 탈출해 모래밭에서 벌이는 카 체이싱은 4편의 유조차 절도와 사막에서의 액션을 연상시킵니다. 로마 액션은 악역 단테의 입을 빌려 직접 5편 금고 액션의 오마주라고 할 정도고, 브라질 고속도로 역시 공간에서부터 진행 양상(체포된 도미닉이 공권력을 도와 상황을 타개한다는 것)까지 5편의 후반부를 연상시킵니다. 영화 후반부 고속도로 장면은 공간적으로는 6편을, 도미닉의 등장이나 헬기를 격추시키는 스턴트에서는 7편의 스턴트들을 연상시킵니다. 시리즈의 최종장으로 접어드는 작품에서 시리즈 전체의 액션을 돌아보면서도 그 재해석이 꽤나 매력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그것을 보는 재미가 상당히 좋았습니다.


  <분노의 질주 10>은 (영화의 알파이자 오메가와도 같은) 액션에서 이 시리즈가 주었던 재미와 매력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덕분에 여러 가지 영화적인 단점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반가웠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특히나 시리즈 전체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느껴지는 작품이었기에, 파트 2에 해당할 11편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과 쿠키 영상에 나오는 정보들이 팬들에게는 더더욱 이 기대감을 키우지 않을까 생각하네요.(물론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지에 대해서는 조금의 우려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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