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일찍 동네 뒷산에 올랐다. 비 온 뒤라 그런지 불어난 계곡물은 탁했고 녹음이 짙었다. 산책로를 한 바퀴 돌고 한바탕 땀을 쏟고 나니 심신이 개운했다. 채소와 달걀로 늦은 아침을 먹고, 어젯밤 파일함에 올려 두었던 밀린 업무를 처리했다. 보고서 초안을 넘기고 나자 시곗바늘이 이미 오후 네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큰 그릇에 토마토와 오이를 넣고 발사믹과 올리브오일을 양껏 둘렀다.
지금부터 밤새도록 와인을 마실 생각이다. 책장 한 켠에 쌓아둔 '다시 읽을 책' 중에서 한 권을 펼쳤다. 긍정 심리학 오랜만이네. 이 책은 과거에도 나 같은 비관주의자의 사고방식을 바꾸지 못했고, 한번 더 읽는다고 낙관주의자가 될 것 같지도 않지만 다음 세 문장에서는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뜨끔했다.
"나쁜 일들을 개인적이며(내 탓이야) 불변하고(늘 이럴걸) 보편적인(어디서나 마찬가지일거야) 형태로 설명하는 비관적 언어습관을 가진 사람들은 실패에 직면하면 오랫동안 여러 장면과 활동에 걸쳐 학습된 무기력의 증상들을 보이고 자부심에도 상처를 입는다" _학습된 낙관주의(마틴 셀리그만)
비록 낙관주의자는 못 돼도 책에서 제시하는 긍정적인 언어습관은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한번쯤 다른 사람이 되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절반 정도 더 읽었다. 조직에서 실제로 낙관주의를 학습하고 관리하는 세미나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이어지고, 이쯤에서 어차피 낙관주의 클래스의 낙오자가 될 텐데 이걸 계속 읽어야 하나 자괴감이 들어서 책을 덮었다.
책모서리에 찍힌 날짜를 보니 2008.11. 이다. 그때는 원하면 뭐든지 될 수 있다고 여기는 미국인들처럼 낙관주의도 학습하면 되는 줄 알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