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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지 Jul 21. 2022

나도 선생님이 있으면 좋겠다

칭찬 스티커 주세요!



 세상에. 무려 세 달 동안이나 글을 쓰지 않았다. 책을 쓰겠다고 편집자님과 계약서를 쓴 게 재작년 8월이니, 거의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내 책 쓰기는 여전히 제자리걸음 중이다. 처음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지금 책을 쓰고 있고 곧 나올 거라고 말하고 다니곤 했다. 나 스스로도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지금 꼴을 한 번 보라구. 부끄러워 기절!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내가 원래 이렇게까지 게으른 사람이 아닌데. 이렇게까지 흐지부지하는 사람은 아닌데. 완벽하지 않더라도 무언가 해야 한다면 미루고 미루더라도 결국은 그럴싸하게 해내는 사람이었는데.


 그래, 내가 아는 나는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책을 쓰는 일도 분명 어찌어찌해낼 거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책을 쓸 시간이 없을 만큼 엄청 바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놀랍게도 나는 2년간 노래도 몇 곡이나 만들었고, 그렇게 안 하던 운동도 꾸준히 했고, 심지어는 영어공부도 꼬박꼬박 했다. 분명 나는 글 쓰는 게 노래 만드는 것만큼 재미있다고 느꼈는데, 그래서 분명 꾸준히 몰두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운동과 영어 공부보다 우선순위 뒤로 밀려나다니!! 이 믿을 수 없는 결과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놓치고 있는 내가 보인다.





 나는 타고난 벼락치기 꾼이다. 누군가 정해준 마지노선을 아주 아슬아슬하게 지키는 편. 아니 솔직히 주로 아슬아슬하게 허용치를 넘겨버리는 식으로 모든 일을 처리한다. 이건 나의 최애 취미인 음악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나 혼자 시작하면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 절대 끝을 볼 수 없는 걸 알기 때문에, 꼭 멋진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으로 내 취미 생활에 책임감을 부여한다. 작곡을 하는 친구가 언제까지 가사 써서 가이드 녹음 보내줘!라고 미션을 주면 그날이 코앞에 다가와서야 가슴도 머리도 팽팽 돌아가며 좋은 가사가 나온다.


 그런데 책을 쓰는 일은 마지노선이 너무 멀다. 너그러운 편집자님은 내 안의 이야기가 모두 소화되고 난 다음, 꺼내고 싶은 마음이 들 때 편하게 꺼내보라고 하시며 2년이라는 시간을 보챔 없이 기다려 주셨다. 그런데 나는 이 너그러운 마음을 좋은 글로 보답해드리지는 못할 망정, 나까지 나 자신에게 한없이 너그러워져 버렸다. 뭔가 문제가 생기기 직전까지 미루는 이 나쁜 습성에, 숙제 검사를 해주는 친구가 없으니 한숨을 쉬면서도 끝까지 미루기만 하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충격. 나도 내가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구.


 그리고 나는 칭찬과 인정으로 움직이는 사람인데, 혼자서는 아무리 글을 열심히 써도 그때마다 돌아오는 반응이 없다. 내 폴더 안에 차곡차곡 쌓이는 글들이 가끔 나를 뿌듯하게 하기는 하지만, 그건 나에게 성취감과 도파민을 선물하기에는 너무너무 소소하다.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할 수 있었던 이유를 떠올려보면 딱 비교가 된다. 사실 영어 공부는 늘 욕심은 나지만 당장 급한 게 아니라서 아무리 마음을 먹어도 잘 되지 않았었는데, 최근에 꾸준히 할 수 있게 된 건 남자 친구랑 같이 설치한 스마트폰 어플 덕분이었다. 우습게도 어플에서는 내가 공부를 한 날마다 달력에다가 도장을 콩콩 찍어주었다. 그리고 남자 친구는 빼곡하게 도장이 박힌 내 달력을 보며 박수를 쳐주었고, 가끔 한두 시간씩 영어로 대화하며 현지 씨는 영어를 잘해!!라고 칭찬을 해주었다.





  써 놓고 보니까 진짜 우습잖아??? 그래 나는 달력에 칭찬 도장이 콩콩 찍히는 것만으로도 움직이는 사람. 결국 나는 선생님이 필요했던 거였는지도 모른다. 솔직히 영어 공부가 어떻게 재미있겠어. 그런데 콩콩 쌓여가는 도장은 진짜 너무 즐겁잖아.


 역시 나도 선생님이 있으면 좋겠다. 내가 우리 반 애들한테 해주는 것처럼 숙제도 내주고, 검사도 해주고, 칭찬 스티커도 주면 나 진짜 너무너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멋진 어른이 되려면 혼자서도 잘해요를 외칠 수 있어야 할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아직 한참 멀었다. 


 그래서 결론은요 여러분, 브런치에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한 분이라도 읽어주신다면 제가 정신 차리고 꼬박꼬박 글을 쓰지 않을까요? 그러니 부디 제 숙제를 검사해 주시고 칭찬스티커도 주세요. 이 인간이 얼마나 잘하고 있나 종종 읽으러 와 주세요. 소중한 편집자님께 제가 책 한 권만큼의 글을 보여드릴 수 있을 그날 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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