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브스쿨인가? 한참 친구 찾기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우연히 연락된 여고동창 친구가 어느날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그 친구가, 나는 까마득히 잊고 살던,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아예 생각나지도 않는 이야기를 했다.
자기가 내 친한 친구의 남자친구와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는 건 정말 잘못된 소문이었다고, 무슨무슨 일 때문에 두어 번 만난 게 전부였다고, 내 오해를 풀어주고 싶었는데 그 당시는 내가 너무 무서웠다고 ...
엥??? 이게 무슨 말인고???
약 20여년 전, 내게는 둘도 없는 절친이 남자친구 문제로 학교를 그만 둔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친구는 내 절친을 배신하고 이 친구와 눈에 맞았었단다. 소문에 의하면 말이다. 나는 정말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어쨌든 그래서 내가 어마어마하게 화가 나서 이 친구를 죽여버리겠다고 했단다.
그후로 이 친구는 나를 피해 그때껏 숨어 산 거였단다. 듣고보니 아련히 기억은 났지만 내가 이 친구를 죽여버리겠다고 했던 기억은... 글쎄. 어떻게 생각해보면 당시로서는 가능했을 감정이다. 게다가 나는 그때 그만큼 무서운 아이였을 수 있다. (^^;;)
나는 웃으며, 생각도 나지 않는 옛날 일인데, 미안하네, 내가. 했다.
줄리언 반스의『예감은 틀리지 않는다』(2011)가 바로 그런 이야기다. 자신의 절친이 자신의 헤어진 여자친구와 사랑에 빠졌다는 통보를 받고, 열받은 맘을 온갖 저주로 퍼붓는다는 건데. 정작 본인은 다 잊어버리고 살지만 절친과 여친은 온갖 불행을 겪게 된다.
원래 가해자는 치기어린 말 몇 마디 던져놓고는 다 잊어버리고 발뻗고 잤는데, 피해자는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나 역시 그런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러나 세밀한 내면을 잘 그려내며 고백하는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가 영화로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 자칫 막장으로 갈 수도 있는 스토리인데다가 내면을 이렇게 잘 그린 문체를 어떻게 영상으로 만들 수 있을 건가?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고로 영화는 패스하는 걸로. 그러나!
그러나 영화《예감은 틀리지 않는다》(2017)는 불안한 예감을 순식간에 없애버렸다. 불필요한 이야기는 확 압축시키고 과거와 현재의 기억을 오가며 하나씩 선명해지는 진실 앞에서 죄책감에 어쩔 줄 몰라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참 잘도 그려냈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