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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남정 Apr 04. 2024

[훔쳐보는 일기] 아주 특별한 내 엄마

- 내 엄마에 대하여

아들이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동안의 테스트를 너무나 잘 넘어왔던 터라 합격을 철썩같이 믿고 있던 터였다. 아들은 그 허망한 마음을 애써 숨기며 내게 탈락 소식을 전해왔고, 나는 괜찮다며, 또 하면 된다며 씩씩하게 아들을 토닥였다. 밤새 기도했을 내 엄마에게 손주의 탈락 소식을 전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참았던 눈물이 툭 터지고 말았다. 엄마인 나도, 내 엄마에게는 아직 아기였던 듯.


엄마의 위로는 이상하게도 미쁜 힘이 있다.


내가 열두 살 되던 해, 엄마는 신을 받았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우리를 먹여살린 건, 내게는 엄마였고, 엄마에겐 귀신들이었다. 엄마는 굿을 하고 난 뒤 사자밥으로 던진 것들을 주워와서 우리를 먹여살렸다. 동생들은 너무 어렸지만 나는 알 만한 것들을 다 아는 나이였다. 동네 사람들은 우리를 미천하게 대했다. 나는 또래들에게 무당의 딸이라는 이유로 경계의 대상이 되어야 했고, 놀림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당연히 뭇매는 내가 맞아야 했고, 내가 악착같이 무언가를 잘해내면 귀신의 짓거리라 수군거렸다.  


나는 나 자신의 문제가 아닌 내 엄마의 문제로 사람들이 나를 꺼려한다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었고,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그 지긋지긋한 가난이 너무 힘들었다. 엄마는 밤마다 굿을 하러 나가고 없었다. 나는 엄마 없는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급기야 나는 내 엄마가 너무너무 미웠다. 엄마 때문에 상처 입은 내 마음을 고스란히 엄마에게 상처로 되돌려 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언제나 엄마 가슴에 고의의 상처를 새겼다. 그게  대못이라는 사실은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엄마는 여전히 엄마 일을 하신다. 이제 엄마를 이해하겠냐고 한다면, "완전히"라고 말할 수 있다. 칠순을 훌쩍 넘긴 엄마는 동네에서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까지 인기짱인 할매다. 몸이 아픈 사람도 내 엄마를 찾고, 집을 고쳐도 내 엄마도 찾고, 이사를 해도 내 엄마를 찾는다.  자식이 없다고 내 엄마를 찾고, 가족이 우울증에 걸렸다고 내 엄마를 찾고, 시댁식구와 싸웠다고 내 엄마를 찾는다. 장사를 시작해도 내 엄마를 찾고, 차를 사도 내 엄마를 찾고, 사업이 잘 안 된다고 내 엄마를 찾는다. 그들은 한결 같이 귀신이 붙어서 아프고, 귀신이 해코지를 해서 우환이 생기는 것이라고 믿는다. 귀신을 잘 달래야 돈도 벌고 건강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내 엄마에게서 위로를 받고, 답을 얻을 수 있다고 믿으며, 또 실제로 또는 대체로 그러하다. 행여 그렇지 않더라도 다음 기회에 희망을 걸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내 엄마는 뉴스에 등장하는 일부 무속인들과는 다르다. 우환이 있어 일이 잘 안 풀리는 사람들의 돈은 그들의 피같은 것이라고 여긴다. 그 피같은 돈을 많이 받을 수도 없거니와 함부로 써서도 안 된다고 믿는다. 내 엄마는 그들과 함께 울어주고, 진심으로 고민해주고, 조상들께 빌어준다. 내 엄마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귀신에게 빌어주는 사람이고, 이럴까 저럴까 고민하는 사람에게 귀신의 말로 방향을 알려주는 사람이다. 나는 가끔 다른 시각으로 보기도 한다. 말하자면, 인간은 누구나 고민이 있고, 우여곡절이 있다고, 오르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다고, 또한 인간은 그 모든 고민의 답을 스스로 알고 있다고, 그러나 진심으로 함께 공감하며 들어주는 사람이 없을 뿐, 내 엄마가 그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내 관점과는 달리, 아니 어쩌면 내 관점대로, 우리를 미천하게 대했던 그때 그 사람들 대부분이 내 엄마를 찾아와 고민을 나누고,  내 엄마는 그들에게 엄마가 되어준다. 종교의 역할과 카운셀러의 역할을 '전문적'으로 해내는 내 엄마는, 이제 모두의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내 엄마는 언제부턴가 큰딸인 내게 의지하는 아기가 되어가고 있다.


나는 그런 특별한 내 엄마를, 더 이상 미워하지 않는다. 결코 그럴 수 없다.


며칠 전 아들의 최종 합격 소식이 들려왔다. 삼재가 나가고 있다는 걸, 엄마의 기도빨이 먹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 엄마가 시키는 대로 성주님께 물 한 그릇 떠놓고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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