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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버yeong May 31. 2024

천 원 유감

          에세이

  또 수요일이다. 아침마다 스크린골프를 치러 나가는 남편의 뒷그림자를 따라 나도 외출준비를 했다. 오후 1시 문화원 수강에 참여하려면 서둘러야 많이 놀 수 있다. 설거지를 하고, 머리를 감고 나서 자외선 차단 크림을 바르고 문단속까지 하려면 아줌마 시간은 빨리 간다. 언니네 집에 들른 지 며칠, 꽤 되었다. 3,4일만 지나면 언니는 염려를 한다. 나는 바쁘게 다니지만 전화 없이 그저 기다리기만 하는 성격이라 나도 조바심이 났다. ‘가 볼 때가 벌써 되었지.’ 하면서 한쪽 마음이 사암리를 향해 있던 날이었다.     


   언니는 내가 갈 때마다 늘, 집에서 혼자 점심 먹게 되거들랑 여기 와서 먹으라고 노래를 한다. 동생을 배려하는 이 말이 가슴 안에서 맴돌다가 불쑥 나오는 날이 오늘이다. 지난번 얻어먹고 나서 닦아 놓은 열무김치 통을 찾아다 놨다. 그리고 오후에 글씨 쓸 용구들을 챙긴 가방도 발치에 꺼내 놓았다. 아차! 냉동실. 형부가 좋아하는 작은 생선 한 두름을 꺼내 김치 통에 넣으니 대충 들어앉았다. 손잡이 없는 통이라 무게 때문에 두 손이 모자라 큼지막한 시장 가방에 모두 넣으니 간단했다. 


   짐 가방을 들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온후 잠깐 생각했다. 이걸 들고 굳이 지하 주차장까지 갈 필요가 없을 같아서 바닥에 내려놓았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서 자동차 열쇠를 눌렀다. 나 여기 있다며 불빛으로 ‘까꿍!’ 해야 할 텐데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몇 번을 눌러봐도 되돌아오는 신호는 없었다. 그다지 넓지 않은 주차장이라 직접 걸어가며 둘러보았지만 차는 보이지 않았다. 지상에 있는 걸 모르고 여기까지 왔나 싶어서 왔던 계단을 따라 다시 올라갔다. 달랑 두 줄 주차장이다. 두 눈으로 차근차근 짚어 봐도 없었다.       


  천천히 기억을 되살려보기로 한다. 명절에 차 2대로 음식점을 갔다가 거기에...... 미안하지만 재미있게 놀고  있을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다행히 금방 통화가 됐다. 음식점에서는 명절 다음 날 바로 찾아다 놓았다고 했다. 그리고 최근 들어 자기는 그 차를 운행한 적이 없다고 했다. 덧붙여서 공부하러 다니는 문화원 주차장도 잘 찾아보라는 말과 함께 자기 순서가 왔다고 얼른 끊었다. 할 수 없이 다시 짐 가방을 들고 집으로 들어가 현관 첫머리에 던져 넣고 나왔다. 이쯤 되니 언니네 집에서 점심을 못 얻어먹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마지막 희망으로, 걸어서 5~6분이면 닿는 문화원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쩌다 한 두 번 그곳에 주차해 놓고 수강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혹시나 했다. 아마도 그날 나는 주차한 사실을 잊은 채 습관처럼 걸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다 여행을 다녀오고, 추석 명절을 맞았을까? 나의 행적을 되살려 내며 얼마나 빨리 걸었는지 그 새 온몸에 땀이 났다. 상가 3층 주차공간을 익숙하지 않은 눈으로 둘러보니 내 차는 없었다. 다시 총총걸음으로 내려와 2층까지 살펴봐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찾아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우선 경찰서에 전화를 해서 뭐라고 말문을 열어야 할까? 타지에서 온 관광객도 아니고, 술에 취한 사람도 아니다. 맑은 날 멀쩡한 아줌마가 주차한 곳을 모르다니 내가 왜 이러지? 자괴감과 함께 차려입고 나선 내 모습이 더욱 부끄러웠다. 이때 번뜩 스쳐오는 문장 하나. ‘자동차 열쇠 배터리를 교환하십시오.’ 계기판에 뜨던 안내글이었다.  ‘주인님, 배터리가 닳고 닳으면 힘이 없어서 대답을 못 하지요!’ 자동차가 나를 두고 하는 말인 듯 내 안에서 들려왔다.


  다시 아파트 지하 계단을 따라 입구부터 차 번호와 색깔까지 하나하나 확인하며 지나갔다. 드디어 저 쪽 익숙하지 않은 위치에 조용히 서 있었다. 길 잃은 자식을 찾은 것 같은 반가움에 그제야 평정심을 찾았다. 그동안은 열쇠를 지닌 채, 차에 가까이 다가가기만 하면 으레 열리니까 별생각 없이 운행하다 이런 낭패를 봤다. 순간적으로 뜨는 경고 문구를 보면서도 기억하지 못한 나의 무관심이 한몫했다. 나중에 남편은, 집 앞 잡화점에서 천 원짜리 배터리 하나면 그 고생 안 해도 됐다며 빙긋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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