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우리 엄마 아들 덕에 어릴 때부터 집에 책이 문집 단위로 많았던 터라, 여태 내가 읽어왔던 책의 99%는 열세 살 이전에 읽은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그렇다. 책을 읽긴 읽었다.
그 이후에 읽은 책이라고는 교과서와 전공 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데다, 나조차도 내가? 라며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책 좋아하는 엄마마저도, 내가 글을 쓴다 하니 묵묵부답으로 답하셨는데,
도리어 그 안에 참 많은 말들이 들어 있었던 것 같다.
이러던 내게, 안 좋은 일이 연이어 일어났고, 술이 아닌 다른 것으로 풀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렇게 펜을 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휴대폰의 메모장을 켰다.
주제에 따라 맞추어 의무로 쓰는 글이 아니라, 생각나는 대로 써 나갔고, 생각에 꼬리가 물 듯이 글에서도 꼬리에 꼬리가 이어졌다.
누가 볼 글도 아니어서 무작정 써 내려갔다.
그러다가 마주친 '회피'.
나는 회피해도 될 것들을 책임감이라는 이름 아래 끝까지 버텨냈고, 결과로 얻은 것은 마음의 병뿐이었다.
글로 인해 내 안에 숨어 있던, 숨기고 싶었던 무언가를 마주한 기분에는 허탈함도 있었고, 나만의 합리화도 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염세주의를 지나 흘러가는대로 두려는 마음, 곧 무위자연을 추구하게 되었다.
이렇게 내 글의 시작은, 보여주기 위해 쓴 글도 아니고, 일기도 아닌, 힘든 시기를 버텨내고자 한 글이었다.
그러다 문득, '회피'를 주제로 글을 쓰고 싶어졌다.
나 같은 사람들에게 가끔은, 회피해도 된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임계점을 넘어서는 일에는 회피가 나 자신을 위한 것임을 말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몰랐고, 안다고 해도, 과연 내 글을 읽어 줄까 가 문제였다.
이 방법을 찾던 차에, 브런치를 알게 됐고, 재수 끝에 글을 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호기롭게 인사 글을 올렸고, 다른 작가분들의 환영 댓글을 보았다.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호칭. 작가.
감히 내가 이런 호칭을 들어도 되는지 고민할 새도 없이 '회피' 시리즈의 첫 글을 올리게 됐다.
첫 시리즈를 모두 올린 후,
회피는 회피일 뿐이고,
주어지는 환경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휴대폰 메모장을 켰다.
결과적으로 3부작을 쓰게 되었고, 감사하게도 내 예상보다 많은 분들께서 읽어 주셨다.
그리고 '쓰고 싶은 글쓰기'라는 브런치북을 새로 만들고,
서툴지만 공모전에도 도전하며,
글쓰기는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브런치에 입문한 지, 불과 2개월 반만의 일이었다.
브런치에서 글을 쓰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소통’이었다.
나 혼자만의 메모장에서 끝났을 글들이, 누군가의 공감을 받고 댓글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힘이 되었다.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글쓰기를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삶의 방식으로 바꾸어 놓았다.
무엇보다 글을 쓰기 전에는 술의 힘을 빌려 버텨왔던 내가,
지금은 글을 쓰면서
어느새 몰입하는 나를 보면서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도 나는 완벽한 글을 쓰려 애쓰기보다는, 지금처럼 내 안의 목소리를 솔직하게 옮겨 적고자 한다.
브런치는 그 시작을 가능하게 해준 공간이자, 나를 작가라고 불러준 첫 무대였다.
비록 서툴더라도, 나는 계속해서 쓰고 싶다. 그저 살아 있음을 확인하듯, 글을 통해 오늘의 나를 남기고 싶다.
글을 잘 쓰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함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는 나도,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이제는 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런 글조차 쓸 수 있음에 감사하고, 글로 인해 바뀐 내 삶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렇게 흘러가는 내 글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