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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누 Sep 07. 2021

정여울 "끝까지 쓰는 용기"

글쓰기가 힘겨운 모든 사람들이 읽기를...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기가 두려웠다.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을 때마다 근엄한 표정의 선생님을 만나는 기분이 들었다. 블로그가 유행을 타면서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글쓰기를 시작할 때 나도 어색한 제목을 붙인 나만의 글 공간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무런 형식도 없이, 나의 글을 읽게 될 어떤 사람도 의식하지 않고 썼다. 정말로 아무렇게나 그냥 썼다. 그런 글쓰기의 순기능은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것이고, 부작용은 글이 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다 글을 더 잘 쓰고 싶은 마음에 글쓰기에 관한 책을 한 두권 읽기 시작했다. 이원석의 '서평 쓰는 법'을 읽고 자신이 부끄러워 졌다. 독후감과 서평이 어떻게 다른지 기본도 모르면서 읽은 책의 리뷰랍시고 썼던 글들을 다시보면 얼굴이 화끈 거렸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읽고 그동안 내 글을 봤던 한 줌의 사람들에게 조차 미안해 졌다. 이오덕의 '우리글 바로쓰기'을 들춰보다 포기하고 말았다. 퇴고의 과정도 없이 블로그에 올렸던 글들의 실체를 엿보고는 이내 글쓰기를 멈추고 말았다. 




 더 좋은 글을 써보고자 하는 욕심으로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글쓰기는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내 앞에 서 있었다. "글의 서론, 본론, 결론을 생각하고 각 부분을 구성하는 문단을 생각하고, 각 문단의 주제문을 떠올리고, 살을 붙이고....이런 과정을 거쳐 초고를 완성하고 계속되는 퇴고를 거쳐 좋은 글을 완성한다." 이런 과정들이 몸을 꽉 조이는 밧줄처럼 느껴졌다. 컴퓨터를 켜고 글을 쓰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그 사이 내 블로그에는 '임시 저장글'만 쌓여갔다. 한동안 거의 완성된 글을 쓰지 못했다. 어설프게 알아버린 글쓰기 방법이 나를 가로 막고 있었다. 




 글쓰기에서 오랫동안 멀어져 있었다. 언제나 내 안에 글쓰기에 대한 욕망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글쓰기를 생각하면 답답함이 먼저 몰려왔다. 글쓰기를 멈추고 '읽기'에 좀 더 집중하면서 자주 서점에 들렀다. 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책들 위로 눈길이 스치듯 지나가다 정여울의 '끝까지 쓰는 용기'를 발견했다. 앙증맞고 정겨운 삽화가 눈에 들어왔고 제목이 내 마음을 붙잡았다. '끝까지 쓰는 용기'라니...누군가 내게 꼭 해주었으면 했던 그 말이 거기에 있었다. 그 자리에 서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다리가 아파 오는 줄도 모르고 한참이나 책을 읽었다. 




 정여울의 글쓰기 책은 달랐다. 그동안 내가 읽어왔던 어떤 글쓰기 책에서도 보지 못한 위로가 있었고, 공감이 있었다. 나는 왜 그동안 그렇게 많은 '임시 저장글'을 남기게 되었을까? 책을 읽어 나가며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정여울은 형식에 얽메인 글쓰기를 경계한다. 글을 구상하고 개요를 쓰고 서론 본론 결론을 구분하는 글쓰기가 모두에게 맞는 방법은 아니라고 말한다. 생각이 가는대로 글을 써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좋은 글이 되지 못할까봐 끝까지 쓰지 못했던 나를 너무나도 잘 아는 친구가 해주는 말 같았다. '그래, 꼭 좋은 글을 써야하는 건 아니잖아. 내 마음 속에 갇혀있는 생각들을 글로 표현해 보면 되는 거잖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마음이 편해졌다. 글쓰기를 떠올리고 미소가 지어졌고 설레임이 느껴졌다. 




 '끝까지 쓰는 용기'를 읽으며, 글쓰기 책인가? 그냥 에세이인가? 헷갈렸다. 그만큼 정여울 자신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글을 쓰는 구체적인 방법이나 기술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작가는 가장 중요한 화두를 나에게 던져주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써야합니다.' 그동안 미숙하게 썼던 글들에는 내가 없었다. 극도로 나에 관한 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했다. 블로그에 주로 글을 쓰면서 그렇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혹시라도 문제가 될만한 작은 부분이라도 있는지 자가 검열을 거쳤다. 나의 이야기를 배제하고 보니, 겉도는 이야기만 남았다. 가슴 뜨거운 글은 사라지고 건조하고 형식적인 글만 남았다. 보여주기 위한 글만 남았다. 보여주기 위한 글들은 점점 더 깊은 수렁이 되어 글쓰기를 가로막았다. 내 생각을, 내 감정을 글로 쓰면서 내 이야기를 철저히 배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부끄러워 말고, 두려워 말고 나를 열어 글을 쓰고 싶어졌다. 




 잠들기 전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보는 습관이 있었다. 거실 소파에 누워 유튜브를 보다가 졸음이 몰려올 때쯤 잠자리에 들곤 했다. '끝까지 쓰는 용기'를 읽는 이틀동안 밤에 유튜브를 보지 않았다. 잠들기 전 책을 붙들고 있었다. 그만큼 정여울의 책은 내 마음에 와 닿았고, 글쓰는 설레임을 다시금 알게해 주었다. 다시 글을 쓰고 싶어졌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나는 즐겁다.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어서, 마음편히 그냥 쓸 수 있어서 좋다. 작가가 아니어도, 글쓰기는 모두에게 필요하다. 자신의 생각을, 감정을 말이 아닌 글로 쏟아내는 일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렇게 쓰여진 글을 통해 다른 누군가와 소통할 수있다면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해 질거라 생각한다. 책을 읽는 동안 즐거웠고, 글을 쓰는 지금 이순간이 참 좋다. 


#끝까지쓰는용기#정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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