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벤다허브 Jul 21. 2022

아이스퀼로스 비극을 읽고 수다를 나누다

1. 오히려 열정 페이가 더 비싸야 합니다

                                      

 “엄마, 관장님은 참 나쁘신 거 같아요. 사범님이 고등학생이라고 월급을 적게 준대요.”

 “그래도 최저 임금은 맞춰주시지 않을까? 아니면 대학 가려고 아직 배우는 중이니까 그런 비용을 포함해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만약 그 금액이 부당하다고 생각된다면 관장님과 의논을 해보라고 해.”

 6살 때부터 16살까지 다닌 태권도이다. 함께 태권도를 다니며 친해진 형이 태권도를 목표로 하면서 사범이 되어 관장님을 대신해 아이들을 지도하고 챙기는 일을 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형한테 적은 월급에 대해 들었나 보다. 나도 어떤 상황인지 대충 짐작은 갔다. 열정 페이인 셈이다. 아마 그 형은 관장님과 의논도 하지 못할 것이고 노동부에 신고는 더더욱 못할 것이며 그냥 묵묵히 참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그다음 세대에까지 전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분께서는 인간들을 지혜로 이끄시되 고뇌를 통하여 지혜를 얻게 하셨으니,
그분께서 세우신 이 법칙 언제나 유효하다네.
아가멤논 177행    

 

 아르고스시의 노인들로 구성된 코러스가 트로이 전쟁과 이피게네이아의 죽음에 대해 노래하는 장면이다. 최고의 신인 제우스는 우리 인간을 위해 고뇌를 주셨고 우리는 고통을 통해서만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정말 고통 없이는 그저 얻는 것이 없을까? 그저 얻는 것이 나쁜 것인가? 왜 이리 다들 운이 좋아 얻는 것보다 역경을 통해 뭔가를 얻기 바라는지 모르겠다. 난 공돈이 더 좋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인기 많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청춘은 왜 아파야 하냐며 청춘들이 폭발했다. 그들을 위로하는 책이라는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들의 고통이 당연하고 감해 내야 하는 것처럼 그려지는 이 세상에 대한 불만을 그 책의 제목을 빌어 내비친 셈이다. 이 사회가 대학 간판을 원하지 않는다면, 이 사회가 수많은 스펙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이 사회가 토익 점수 따위를 필수항목으로 넣지 않는다면, 이 사회가 내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쳐준다면, 이 사회가 내 노동을 우습게 여기지 않는다면, 이 사회가 나를 아껴준다면, 이 사회가 청춘들에게 미안해한다면...  그렇다면 그들도 저 책을 서럽게 하지는 않았으리라.

 더불어 열정 페이를 당연하게 요구하는 기성세대에게 고통을 통해 얻는 것이 정답이 아님을 알리고 싶어 한다. 열정 페이란 ‘좋아서 일하는 거나 일을 하는 것 자체가 경험을 쌓는 것이기 때문에 적은 월급 또는 무급을 주어도 된다는 생각과 행동’이다. 한마디로 누군가의 노동을 착취하면서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한 이기심일 뿐이다. 갑의 갑질일 뿐이다. 굳이 그런 것을 강요하지 않아도 을은 약자인데 말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을 갖기는 쉽지 않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월급, 복지, 비전 등의 조건을 살펴보고 직장을 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점을 생각해보면 일이 좋아서 회사를 선택한 직원들은 애사심이 더 생길 수 있고 근무 태도도 더 열정적일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회사가 조금 힘들어도 참을 용기도 낼 수 있고 적극적인 활동으로 회사를 키우는데 일조할 가능성도 크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그들에게 열정 페이를 강요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임이 틀림없다. 오히려 그들의 그 열정이 회사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것이 분명하니 더 많은 보답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신문 활용 수업의 강사로 다니면서 나의 열정을 불살랐던 시절이 있었다. 도서관에서 과정을 수료하고 1급 지도자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신문에 있는 많은 이야기와 신문지라는 종이로 아이들과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인 일이었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그 시간을 위해 며칠 동안 수업 준비를 해야 했지만 행복했다. 도서관 소속으로 ‘학부모 가르치미’라는 명패를 걸고 초등학교에 수업을 다녔다. 봉사라는 이름으로 일주일에 3~4개 학교에 다니며 여러 반에서 수업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팀원들과 모여 수업 준비도 하고 수업 내용 피드백도 하며 최선을 다했었다. 하지만 7년 정도 하자 열정은 식다 못해 사라지고 오히려 나의 정성이 무시되는 현장을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학교에서 바라보는 나의 위치는 그저 선생님들이 업무를 수행할 시간을 벌어주는 자였다. 학반 수업이든 돌봄 수업이든 매한가지다. 떠돌이처럼 이 학년 이 반에서 1회 수업, 저학년, 저 반에서 1회 수업인 경우가 허다했다. 심지어는 수업 인지도 몰라서 내가 가면 그제야 자리를 비켜주는 경우도 많았다. 미안해하기보다 계획이 틀어져 싫다는 표정도 자주 마주쳤다. 수업에 20~30분씩 일찍 가던 것도 점점 제시간에 맞춰 가게 되었다. 일찍 가도 복도에 서서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에도 복도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신세였다. 봉사 수업이라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가 쉽게 수업에 온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과 활동 하나를 위해 신문에 글자 수백 개를 가위로 잘라대는 짓을 그만하기로 했다. 내 열정은 모독당했고 더는 견디기 버거웠다. 그렇게 7년의 가르치미를 하고 남은 것은 아무 쓸모도 없는 표창장 하나와 경력으로 인정도 못 받는 이력서 칸 채우기용 한 줄이었다.


 이 이후로 누가 봉사 수업을 부탁하면 정중히 거절한다. 수업 하나를 위해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을 쉽게 가지려 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들은 너무도 당연히 봉사라는 이름으로 나에게 열정 페이를 강요한다.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건 착취하려는 그네들의 사상일 뿐이다. 난 내 수업에 그리 자신 없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가끔 수업용 자료를 쉽게 달라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난다. 그들 역시 나의 열정을 공으로 먹으려는 심산이 아닌가. 수업 계획서며 PPT 자료를 만드는 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자료 찾아 삼만리에 영상을 편집하고 재미있는 활동도 생각해야 한다. 그래, 그들은 안 해봤으니 모를 테고 그러니 쉽게 달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열정을 불살라보지 않아서 열정 페이가 얼마나 화나는 것인지 모르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이나 배우고 싶은 일을 위해 눈빛을 반짝이는 이들이 있다면 감사히 생각하자. 그들에게 더 많은 것을 주지 못할 형편이라면 정당한 대가만은 주자. 그들이 그 일을 더 사랑할 수 있도록 하자. 청춘들에게 꼭 가시밭길을 통과해서 오도록 강요하지 말자. 향긋한 꽃길을 두고 젊다는 이상한 논리로 그들을 떠밀지 말자.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고생은 안 할 수 있다면 안 하는 게 정답이다.  

 제우스가 주는 지혜도 꼭 고뇌를 통해 얻을 필요는 없다. 그 법칙은 이제 그만~   

이전 12화 6. 부부는 하나가 아니고 둘이 맞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