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일. 카톡으로 장미 이모티콘이 왔다. 부부의 날을 축하한다는 의미이다. 서로 남이었던 두 명이 만나 하나의 가정을 이룬다는 의미를 잘 부여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의미가 참 싫다. 결혼 후 19년을 함께 살면서 부부가 무엇인지 몸소 경험한 만큼 둘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많은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또한 부부는 일심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명언은 엉터리다. 여성의 지위가 낮던 시절에 아내의 희생이 하나의 마음으로 포장된 것일지 모른다.
서로가 타인인데 그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고 하나로 합체하려 하니 다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서로를 인정하는 것부터가 좋은 부부 관계의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 부부란 하나가 되기보다 서로가 적정 거리를 두고 있고 필요할 경우 가끔 만나는 기찻길 같기를 바란다.
두 사람은 달콤한 사랑을 실컷 즐기고 나서 각자가 겪었던 일을 들려줌으로써 이야기로 서로 상대방을 즐겁게 해 주었다. 페넬로페는 구혼자들의 무리들을 보면서 자기가 견뎌야 했던 일들을 빠짐없이 이야기했다. 오뒷세우스는 온갖 고통과 자신이 겪어야 했던 고난을 빠짐없이 이야기했다.
오뒷세이아 제23권 300행
페넬로페와 오뒷세우스는 20년 만에 재회하였다. 페넬로페는 긴 세월 떨어져 있었던 만큼 그들만이 아는 특이한 침대에 관한 이야기로 그를 시험해보았다. 그렇게 오뒷세우스를 확인한 후에 마음을 열게 되었다. 20년간 쌓인 이야기가 서로 얼마나 많았을까? 힘들었을 이야기로 가득했겠지만, 상대의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하고 들어주는 그 시간은 즐거울 수밖에 없다.
EBS 부부 상담 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내고 연락을 받았다. 내 상황이 평범하지 않았기에 당연히 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바였다. 하지만 남편은 왜 집안 이야기를 텔레비전에 나가서 떠드냐며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그렇게라도 관계 개선의 도움을 받고 싶다고 하소연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출연을 못 하게 되었다고 말을 전하며 나도 놓아버렸다. 부부라는 이름을 이제 지우기로 마음먹었고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힘들어지니 아이들도 날 붙들어 줄 힘을 잃었다. 살고 싶다는 욕망이 가슴속 응어리로 치고 올라와 숨 막히게 하고 억울함이 끊임없이 눈물로 흘렀다. ‘그래,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은 하는 게 아니라더니. 역시 그렇구나.’
그때는 빚을 거의 갚았던 시기다. 시댁의 6천이라는 빚을 5년 만에 갚고 작은 평수의 빌라를 내 집으로 막 마련했던 시기다. 결혼 후 처음으로 직장을 다니지 않고 어린 아들들을 챙기며 전업주부로 지내기 시작한 시기다. 겉으로 봐서는 행복해야 마땅한 때였다. 하지만 우울증에 빠져버린 나는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부부 관계는 최악의 상황이었고 여전히 나를 옥죄는 그 가정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가 나를 도닥여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이렇게까지는 힘들지는 않았겠지만, 그는 표현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내 사랑은 지치고 점점 옅어졌고 오랫동안 조금씩 꺼내 써야 하는 사랑을 난 짧은 시간에 너무 빨리 너무 많이 써버렸다. 남은 사랑이 없으니 사소한 것도 견디기 싫어졌다.
법륜스님의 <행복>이라는 책을 샀다. 오로지 제목 때문이었다. 나도 행복해지고 싶었다. 그리고 나의 잘못을 깨달았다. 난 엄청난 짓을 하고 있었다. 나와 너무 다른 그를 보며 그가 항상 틀렸고 내가 기준이고 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를 항상 바꾸려고 했고 바뀌지 않는 그를 탓했다. 왜 내가 옳다고 여겼을까? 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허무맹랑한 생각인가? 이 책을 통해 그를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행동에 옮겼다. 그러니 원망스럽고 미운 그가 사라지고 안타깝고 애잔한 그가 나타났다. 나에 대한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게 보여줄지 몰랐던 것뿐이다. 나름 나를 위로하지만, 표가 나지 않을 뿐이었다.
그는 말주변이 없으니 서운함이 느껴지게 말하면 이렇게 말하면 좋겠다고 전했다. 자꾸 짜증을 내면 나도 덩달아 짜증이 난다고 알려줬다. 그가 잘하지 못하는 주변 정리로 잔소리를 일절 하지 않았고 낚시라는 취미를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그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니 편안함이 찾아왔다. 새로운 문제는 그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었다. 아침잠이 많은 나에게 아침을 원해서 그 전날 준비를 해놓고 데워먹으라고 했으나 거절했다. 사 먹도록 용돈을 줘도 거절했다. 그가 원하는 아침 밥상과 배웅을 못 함에 미안했지만 난 아침에 못 일어나니 이런 나를 인정해달라고 꾸준히 요구했다. 싸우는 날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아침 식사 문제는 결국 화가 되었다. 내 능력 밖의 것을 요구하면 난 들어줄 수 없으니 포기하거나 그것을 해줄 사람을 찾기를 권했다. 그 외에도 난 못하는 것이 많다. 음식도 못 하고 집안 살림도 깔끔하게 하지 못한다. 가족을 위한 투철한 희생정신도 없다. 이런 나를 인정해주길 계속 요구했지만, 그는 계속 나의 변화를 요구했다. 마찰이 다시 발생하고 점점 커졌다. 급기야 재산 분할까지 갔다. 그는 여전히 나를 모른다. 자식으로 경제력으로 나를 묶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그렇게 몇 년을 서로에게 감정을 소비하고 관계를 악화시키고 나서 그도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나에게 요구사항이 줄어들었다. 그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기로 했다.
최근 우리의 관계는 아주 좋지만, 함께 보내는 시간은 극히 적다. 어떤 날은 서로 얼굴을 마주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내 책상 앞에 있는 덕질하는 배우 얼굴보다 신랑 얼굴을 보는 시간이 더 적을 정도이다. 새벽에 나가고 일찍 잠을 자는 그와 낮에 나가서 늦은 밤에 들어오는 나의 패턴 때문이다. 주말이면 1박 2일로 낚시를 하는 그와 주말에 수업으로 학원에만 있기 때문이다.
나보다 음식 솜씨를 아이들에게 인정받은 그는 자주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무척 싫어하는 나는 식기세척기의 도움을 받는다. 재활용품과 일반 쓰레기를 담당하는 남자 세 명과 세탁과 청소를 담당하는 나는 서로의 영역에 간섭하지 않는다. 부탁은 할 수 있지만 이래라저래라 지시는 없다. 서로를 바꾸려 하지 않고 서로가 편하게 지내고 일할 수 있도록 하니 마찰은 지극히 드물다.
그에게 농담처럼 나에게 집착하지 말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면 그는 나에게 연금도 하나 없이 노후가 걱정되지 않느냐고 답한다. 그럼 난 매달리는 척을 한다. 정리를 못 해 자기 물건을 두는 장소에 영수증 쓰레기가 쌓여도 조용히 내가 치워줄 뿐이다. 낚시 도구들이 어질러져 있으면 그는 내게 언제까지 치울 예정이라고 알려준다. 친구들과 술 한잔하고 늦게 들어오는 나에게 몇 신데 이제 오느냐고 핀잔을 주면 재밌게 놀고 왔냐고 말해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제는 짜증이 나면 나에게 짜증 나니까 더는 말 시키지 말라며 경고도 주는 그이다. 이런 것들이 싸움을 막아주니 참 좋다. 이것이 적당한 거리이다.
이렇게 서로를 서로가 가진 장점과 단점을 오롯이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 누구의 것도 답은 아니다. 그저 오뒷세우스와 페넬로페처럼 서로의 어려움을 들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