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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fessor Sunny Apr 21. 2022

사이가 좋음

지쳐도 괜찮아- 부모됨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남편은 종종 ‘우리는 참 사이가 좋은 부부야’라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의 시작이 ‘친구’라는 틀로 맺어졌고, 친구이던 그 시절, 20대 특유의 밝음과, 허세끼도 남아서 스스로가 가진 인간으로서의 아름다움을 극대화로 표현해 내던 좋은 기억을 서로가  추억으로 가지고 있어서는 아닐까 생각해본다.  또 반대로 차마 눈뜨고 못 볼꼴까지 최선을 다해 보여주던, 본인의 삶과 이 ‘연인’이라는 관계에 대해 열성을 가졌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적 상황이 바뀌면 관계도 바뀌게 되는데, 연애를 넘어서 결혼을 하게 되거나, 이민을 왔거나, 아이를 낳거나 하면 관계가 재조정된다. 둘 다 유학생이던 시절의 연애와, 직장인으로서의 연애, 부부가 됐을 때의 관계에 대한 재조정은, 그 관계 속에서 당사자들이 빠르게 변해가는 상황을 얼마나 민첩하게 받아들이고 적응하려 노력했느냐가 한몫을 할 것이다. 나와 남편의 두 사람 관계에서도 못지않게 많은 사회적 상황의 변화를 겪었고, 그러면서 심한 갈등도 해보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잘 살아보기로, 친구처럼 사이좋게 살기로 결정했다.


이런 동등한 인지 레벨을 가진  사람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쌍방의 노력인 반면, 부모와 자식의 관계라는 것은,  시작이 오롯이 부모에게 달린 경우라고 봐도 되겠다. 특히 아이가 태어난 직후로부터  아이는 ‘발달이라는 과제를 헤쳐가느라 바쁘고, 부모는 의식주를 포함한 아이의 발달을 위한  없는 서포트를 해야 하는 관계가 된다.  


그렇게 지내다가, 아이와 부모도 사이가 안 좋아지기도 하는데, 아이가 커가면서 인지 능력이 발달하고, 부모를 바라보고 평가하기 시작한다. 아이가 가진 평가의 기준이라는 것이 아직 온전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래도 아이는 ‘우리 엄마는 화를 많이 내’ 라던지, ‘우리 엄마는 내 말을 잘 안 들어줘’라는 식의, 아이가 그 관계에서 겪었던 것을 평가해 낸다.


아이와 부모의 관계가 7-8년 차쯤 지나면, 내가 낳은 아이지만, 나와는 다른 인격체, 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 관계에 ‘권태’ 혹은 ‘지친다’라는 느낌이 당연히 끼어들 수 있다. ‘이 아이를 사랑해’, ‘이 아이는 소중하다’라는 기본 전제는 당연히 부모의 마음에 깔려있지만, 부모와 자식으로 지내는 동안에,  빠르게 커가며 변해가는 아이에 계속해서 적응하고, 관계를 재조정해가며, 제대로 된 서포트를 제공하고 싶은 부모로서의 노력에,  어느 순간 부모 스스로 관계 유지에 대한 허덕임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요새 이 나이대의 아동을 가진 부모님들과 연구를 하고 있다. 국적 불문하고 아이와의 관계에 버거움을 느끼는 순간을 ‘부모로서의 자질 부족’이나 ‘죄책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겪으며 지나갈 시간이라고 말해주었다. 또, 우스갯소리를 더해, 부모와 자식이 보통 50년 정도 이상의 관계를 유지한다고 했을 때, 공평하게 당신의 아이도 언젠가 당신의 어떤 모습인가에 권태와 지침을 느낄 수 있고 (특히 사춘기), 관심사가 부모-자식관계보다 다른 관계 발달에 치중하는 시기가 있을 것이며, 그것은 ‘한 인간’이 성장해가며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자연적인 관계 변화의 모습일 것이라고 본다.  


누군가와 사이가 좋다는 것은, 아무래도 변해가는 관계에 잘 적응하고,  ‘그러려니’ 할 수 있고, 하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노력할 수 있는 에너지가 그 사이에 남아 있다는 게 아닐까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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