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수 없는 아이

by 주엉쓰

나는 대물림하지 않으려 한다.

그건 단순히 아버지의 방식을 부정해서가 아니다.
그 방식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지만,
그 단단함 속에서 너무 많은 밤을

혼자 견뎌야 했기 때문이다.


어릴 적, 우리 집은 늘 어두웠다.
형광등 불빛이 희미하게 깜박였다.


그 시절엔, 어른이 되면 모든 게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그때의 공기를 기억한다.
아버지가 없는 집의 적막,
식은 밥 냄새와 차가운 그릇의 감촉,
그리고 “괜찮다”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수없이 되뇌던
그 어린아이의 숨소리까지.


그건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나의 체질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누군가가 내게 다가오면
먼저 경계를 세운다.
누군가 다정하게 말을 걸면
“저 사람은 왜 나에게 이렇게까지 친절하지?”
하고 의심부터 한다.


어릴 적부터 배운 건
세상은 쉽게 믿어선 안 된다는 것이었으니까.
그건 아버지에게서 배운 생존의 철칙이었고,
동시에 내가 평생 짊어질 외로움의 모양이었다.


시간이 흘러 사회에 나왔을 때,
나는 일찍 단단해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회식 자리에서도 웃기보다 듣는 쪽이었고,
문제가 생겨도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스스로 감정을 정리하고,
스스로 위로하고,
스스로 버텼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성숙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성숙이 아니라 방어였다.
감정이 닿을까 봐,
누군가 내 마음을 읽을까 봐,
늘 한 발자국 물러서 있었다.


나는 가까워지는 관계가 불편했다.
그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언젠가는 떠날 거야.”
“이해받지 못할 거야.”라는

불안이 몸에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늘 ‘혼자 잘 버티는 사람’으로 남았다.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아야
상처받지 않는다는 걸
너무 어릴 때부터 배워버린 탓이다.


‘끼리끼리’라는 말이 있다.
돌이켜보면, 나의 곁에는
나와 비슷한 결핍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웃을 땐 크게 웃지만,
문득 조용해질 때면 눈빛이 멀어지는 친구들.
칭찬보다 책임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
사랑을 표현받으면 어색해하고,
감사를 말할 땐 마치 사과하듯 머리를 숙이는 사람들.


우리는 금세 서로를 알아봤다.
비슷한 결핍은, 말보다 빠르게 통한다.
상처는 상처를 알아본다.


그들은 내게 위로였지만,
동시에 거울이기도 했다.
서로를 통해 나는 내 모습을 봤다.
“아, 나도 저렇구나.”
“나도 여전히 누군가의 온기를 두려워하는구나.”


하지만 세상은 공평하지 않았다.
그중 어떤 친구는,
그 결핍을 원동력으로 바꾸어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었다.


어떤 친구는 좋은 부모가 되었고,
그들은 아픈 기억을 도려내지 않고,
그 위에 따뜻함을 덧입혔다.


하지만 또 어떤 친구는
그 결핍을 견디지 못했다.
술에 의지하고,
사람을 믿지 못하고,
끝내 세상에 화를 내며
자신에게 상처를 남겼다.


나는 그 모습을 수없이 보았다.
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결국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그 공백이 고스란히 다음 사람에게 옮겨간다.


그걸 보며 생각했다.
“결핍은 병이 아니라 유전이구나.”
“누군가 멈추지 않으면 계속 흐른다.”


그래서 나는 그 고리를 끊고 싶었다.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결심은,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었다.


이제 나는 안다.
사람은 결핍을 없애며 사는 게 아니라,
그 결핍과 공존하며 산다.
결핍은 채워야 할 결함이 아니라,
자신의 온도를 확인하게 만드는 감각이다.


그래서 나는 내 안의 아이를 지우지 않는다.
그 아이는 여전히 내 안에서 살아 있다.
그때처럼 겁이 많고,
사랑을 받고 싶어 하면서도
먼저 손 내밀지 못하는 아이.


사람들은 나를 어른이라 부르지만,
나는 안다.
그 아이가 여전히 내 안에 있다.
그리고 그 아이야말로
내가 대물림하지 않으려는 이유다.


나는 그 아이를 외면하지 않는다.
그 아이가 울면,
이제는 울게 둔다.
그 아이가 외로워하면,
이제는 그 외로움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 아이에게 말한다.
“괜찮아.
그때의 너는 최선을 다했어.
아무도 안아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잘 견뎠잖아.”


그 말을 하는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조금씩 녹아내린다.
그건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단단함이
비로소 따뜻함과 섞이는 순간이었다.


나는 여전히 단단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단단함이
누군가를 밀어내지 않기를 바란다.
나의 단단함이
누군가를 지키는 벽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기대어 쉴 수 있는 벽이 되길 바란다.


언젠가 내게 아이가 생긴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아, 울어도 된다.”
“괜찮아, 도망쳐도 된다.”
“하지만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말하지는 말아라.”


그게 내가 살아온 세대와
다른 세대로 이어지는 유일한 다리일 것이다.


나는 이제 안다.
사람은 누구나 아버지의 그림자를 안고 산다.
그림자를 부정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림자를 껴안아야
비로소 자신만의 빛이 생긴다.


아버지의 단단함은 내 뿌리가 되었고,
내가 찾은 따뜻함은 가지가 되었다.
그 뿌리와 가지가 함께 있을 때
비로소 한 그루의 나무가 완성된다.


나는 그 나무처럼 살고 싶다.
땅속의 단단함으로 버티고,
햇살 같은 따뜻함으로 사람을 품는 사람으로.


나는 아버지에게서 단단함을 배웠다.
그리고, 그 단단함을 사랑으로 바꾸는 법을 배웠다.

돌아갈 수 없는 아이는
여전히 내 안에 있지만,
이제 그 아이를 안아주는 건
아버지도, 세상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이 책은,
어쩌면 제 유년 시절의 조각들을
하나씩 꺼내어 붙인 기록입니다.


‘아버지’라는 이름 아래에서
단단함을 배우고,
그 단단함 속에서 외로움을 견디며,
조금씩 사람으로 자라온 이야기입니다.


나는 이 글을
앞으로 아버지가 될 사람들에게,
그리고 누군가의 사랑이 필요했던 모든 이들에게
건네고 싶었습니다.


아버지를 이해하는 일은,
결국 나를 이해하는 일이었고,
그 여정 속에서 나는
“사랑을 표현하는 용기”를 배웠습니다.


이 글이 당신의 마음속에서
조용한 울림이 되기를 바랍니다.


누군가에게 따뜻함을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되거나,
당신이 다시 스스로를

사랑할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단단함은 나를 살렸지만,
따뜻함이 나를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 문장을 남기며,
모든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아직도
사랑을 배우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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