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물림 하지 않기 위해

by 주엉쓰

나는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고,
그 이해 위에서 내 삶을 다시 세우고 있다.
이제 남은 건 하나다.
대물림 하지 않기.


아버지의 단단함을 버리지는 않되,
그 단단함이 누군가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들지 않도록.
그게 내가 선택한 길이다.


어릴 적 나는 늘 ‘말하지 않는 법’을 먼저 배웠다.
억울해도 참는 법,
상처받아도 내색하지 않는 법,
기분이 나빠도 웃으며 넘기는 법.


그건 생존의 기술이었다.
집 안에서는 아버지의 눈치를 봐야 했고,
학교에서는 친구들 속에서 스스로를 지켜야 했다.
감정을 드러내면 약해 보인다고 배웠다.
그래서 나는 늘 무표정했다.
내가 화났다는 걸, 누가 알아차리는 걸 원치 않았다.


그렇게 자라면서 나는 ‘참는 사람’이 되었다.
참는 게 멋있다고,
참으면 언젠가 인정받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보니,
그건 멋이 아니라 고립이었다.
참는 동안 아무도 내 마음을 몰랐다.
내가 무너질 때까지,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은 거꾸로 연습한다.
말하는 법.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다.
감정을 말하는 건, 나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어색하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사회에서 누군가 내 말을 끊을 때,
예전의 나는 침묵했다.
이제는 조심스레, 그러나 분명히 말한다.
“조금만 들어주세요.”
그 한마디가 세상을 바꾸진 않지만,
적어도 나는 더 이상 내 감정을 삼키지 않는다.


일이 끝나면,
같이 일한 동료에게 “수고했어요”라고 말한다.
그 말 한마디를 내뱉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모른다.
예전의 나는 이런 말을 ‘가벼운 말’이라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 ‘가벼운 말’이
사람을 견디게 하는 버팀목이 된다는 걸.


나는 아버지에게서 ‘책임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그분은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지만,
새벽마다 나를 위해 일하러 나가셨다.
그건 사랑이었다.
무뚝뚝했지만, 분명한 사랑이었다.


하지만 나는 깨달았다.
책임만으로는 관계가 유지되지 않는다는 걸.
사람은 사랑받는다는 실감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그 위에 ‘표현으로 사랑하는 법’을 더한다.


밥을 차려주는 것도 좋지만,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다.”
그 말을 곁들인다.


돈을 벌어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그 말을 덧붙인다.


표현은 사치가 아니다.
그건 마음이 닿는 통로다.
책임은 지탱하지만,
표현은 이어준다.
나는 이제야 그 차이를 배운다.


대물림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을 때,
가장 먼저 바꾼 건 사과의 방식이었다.
예전의 나는 잘못을 해도 묵묵히 넘어갔다.
왜냐면 그게 ‘단단한 사람’의 자세라 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강함이 아니라 침묵의 회피였다.


이제는 다르게 한다.
내가 실수했을 때,
조용히 멈춰서 말한다.


“그건 제 실수였어요.”
“미안해요. 제가 더 신경 썼어야 했어요.”


처음엔 그 말이 혀끝에서 잘 나오지 않았다.
마치 약점이라도 드러내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 뒤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사과는 체면을 깎지 않는다.
오히려 관계를 다시 세운다.
사과하지 못하는 강함은
결국 혼자의 강함일 뿐이다.


나는 여전히 단단함을 쓴다.
단단함이 없으면 흔들린다.
하지만 그 단단함이 칼날이 되지 않게
날마다 스스로를 다듬는다.
밖으로는 온기를,
안으로는 규율을 둔다.


예전에는 단단함이 나를 지키는 방패였다면,
지금은 단단함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감싸는 울타리가 되길 바란다.


가끔은 상상해 본다.
언젠가 내게 아이가 생긴다면
그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줄까.


나는 그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말하고 싶다.


“울어도 괜찮다.
그건 약함이 아니라 솔직함이야.”


“거짓말은 하지 마라.
하지만 실수는 숨기지 마라.
작을 때 말하면, 우리가 함께 고칠 수 있다.”


“혼자 버티는 건 멋있어 보이지만,
너무 오래 혼자 있으면 마음이 굳는다.
그러니까 힘들면 손을 내밀어라.”


이 말들은 사실,
내가 내 어린 시절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베란다에서 혼자 창밖을 보며 울던 그 아이에게,
“괜찮다, 이제는 말해도 된다”
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버지는 여전히 살아 계시다.
가끔 전화를 걸어
“밥 먹었냐, 일은 잘하냐.” 하신다.
나는 예전처럼 긴장하지 않는다.

“응, 아빠. 잘 지내.”
짧은 대화지만,
그 안에는 묘한 평화가 있다.


나는 그분의 단단함을 이해한다.
그게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는 걸 이제 안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사랑하고 싶다.
그분의 방식이 틀렸던 게 아니라,
그분의 시대가 너무 거칠었을 뿐이니까.


대물림 하지 않는다는 건
아버지를 지우는 일이 아니다.
아버지를 내 안에서
다른 모양으로 이어주는 일이다.


그분이 나를 세상 속에 세워준 단단함 위에
나는 따뜻함을 얹는다.
그게 나의 방식이다.
훈계를 지우지 않고,
그 옆에 대화를 세운다.


나는 아버지를 닮되, 같지 않게 살 것이다.
그분이 지킨 것을 존중하고,
내가 지킬 것을 선택하겠다.


이제 나는 안다.
세상은 여전히 냉혹하지만,
그 안에서 따뜻한 사람이 되는 게
가장 어려운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단단함으로만 버티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따뜻함으로 버티려 한다.
그게 내가 아버지에게서 배운 단단함을
나만의 방식으로 쓰는 법이다.


단단함은 나를 살렸다.
따뜻함은 나를 사람으로 만들었다.

나는 그 두 문장 사이에서,
대물림 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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