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아버지가 전화를 자주 하신다.
“잘 지내냐.”
“밥은 먹었나.”
“요즘 뭐 하냐, 그냥 전화해 봤다.”
그분의 전화는 언제나 짧다.
하지만 그 짧음 속에서
나는 이제 ‘보고 싶었다’는 말을 읽는다.
예전에는 그걸 몰랐다.
그냥 형식적인 안부 전화인 줄 알았다.
이제는 안다.
그분은 여전히 서툴지만,
그 서툰 말들 속에도 사랑이 있다는 걸.
나는 여전히 전화를 받을 때마다
약간의 긴장감을 느낀다.
아버지의 목소리 톤,
그 묘한 낮은 울림이
아직도 내 안의 무언가를 건드린다.
어릴 적 혼이 났던 기억 때문일까,
아니면 여전히 ‘아버지 앞의 아이’로 돌아가기 때문일까.
하지만 통화를 마치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이 잔잔해진다.
예전에는 그분의 말이 나를 긴장시켰지만,
이제는 그분의 목소리가 나를 안심시킨다.
세상 어딘가에서
여전히 나를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게 참 이상하게 따뜻하다.
한 번은 그분이 전화를 걸어
뜬금없이 물으셨다.
“너는 술 좀 줄여라. 요즘 피곤해 보인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피곤한지 안 봤잖아.”
그러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조용히 대답하셨다.
“그냥… 목소리가 그래.”
그 말이 유난히 오래 남았다.
그분은 여전히 감정 표현은 서툴지만,
그 속엔 여전한 사랑이 있었다.
사실, 나는 아버지께
먼저 전화를 건 적이 거의 없었다.
그분이 나를 부를 때까지 기다렸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늘 ‘먼저 다가오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나 역시 ‘먼저 다가가면 안 되는 사람’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 술에 잔뜩 취한 날,
그 오래된 습관이 깨졌다.
밤이 깊었고,
불빛 하나 없는 거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그날따라 이상하게 아버지 생각이 났다.
그분이 늘 말하던 단단함,
“참아라.” “버텨라.”
그 말들이 그날따라 마음을 짓눌렀다.
문득 휴대폰을 들었다.
번호를 누르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아빠.”
“응, 왜.”
나는 갑자기 눈물이 났다.
“아빠, 이제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요.”
말끝이 떨렸다.
그분은 잠시 침묵하셨다.
“뭘.”
“아빠가 왜 그렇게 사셨는지요.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조금 알 것 같아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분은 작게 웃으시며,
“뭘 알겠어, 나중에 얘기하자.”
그 말은 거절 같았지만,
어딘가 묘하게 부드러웠다.
그분의 음성에 담긴 미묘한 떨림이 느껴졌다.
나는 멍하니 전화를 들고 있었다.
술김에 꺼낸 말이었지만,
그건 아마 내 마음속에서 오래 묵은 결핍의 고백이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께 하고 싶었던 말,
하지만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던 말.
‘미안해요.’
‘이해해요.’
‘괜찮아요.’
그 세 가지 말이
내 안에서 뒤섞여 있었다.
아버지를 원망했던 시간보다,
사실은 미안한 시간이 더 길었다.
그분이 나에게 준 상처보다,
내가 그분께 쌓아온 거리의 두께가
더 무거웠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그날 이후,
나는 가끔 아버지께 먼저 전화를 건다.
별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냥, 전화해 봤어”
“별일 없지?”
그분은 여전히 짧게 대답하신다.
“어, 별일 없지.”
“너는 일하냐.”
통화는 몇 분이면 끝난다.
하지만 이제 그 몇 분이 좋다.
그 안의 공백이
예전처럼 불편하지 않다.
그건 말로 다 채울 필요가 없는 거리,
그분이 허락한 침묵의 온도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아버지에게 죄송하다.
그분이 내게 했던 방식들을
한참이나 미워했으면서도
결국 나는 그분처럼 살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그게 부끄럽지 않다.
그건 나를 만든 뿌리이자,
그분이 내게 남긴 유산이니까.
그리고 이제는 조금 알겠다.
내가 느꼈던 결핍이
사실은 그분의 외로움이었다는 걸.
그분은 평생을 버티며 살았고,
그 버팀의 사이사이에서
사랑이 새어나가 버렸을 뿐이었다.
나는 여전히 결핍 속에 산다.
하지만 그 결핍이 이제는 두렵지 않다.
그건 나와 아버지가 여전히 이어져 있다는 증거다.
언젠가 술에 취하지 않아도
나는 그분께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 이제는 정말 압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