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알바를 들어갔을 때였다.
부당한 일에 당했을 때도,
손님들에게 멸시를 당했을 때도,
순간,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참아라.”
“지금 감정 내면 손해야.”
그건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단단함’을 배웠다.
그건 세상을 견디는 법이었다.
불합리한 일에도 감정을 섞지 않고,
상처받았더라도 속으로 삼키는 법이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사회에 나와보니,
그 단단함은 때로 나를 지켜주기도 했지만
때로는 나를 고립시키기도 했다.
일을 하며 부딪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종종 ‘냉정한 사람’으로 보였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고,
화가 나도 차분히 말했고,
상처를 받아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성숙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건 성숙이 아니라, 방어였다.
아버지가 세상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쓴 갑옷을
나도 모르게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다.
이야기 중 누군가가 내 의견을 가로막을 때,
나는 즉각 반박하지 않는다.
대신 마음속으로 수없이 계산한다.
“지금 반박하면 감정적으로 보이겠지.”
“참자. 이건 감정이 아니라 일이다.”
이제 그 말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그런 나 자신이 답답했다.
아버지처럼 단단해진다는 건 좋지만,
그 단단함이 나를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들 때도 있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밖에서 아는 동생이 조용히 말했다.
“형은 좀 무서워요. 사람이 하나도 모르겠어요.”
나는 놀랐다.
나는 단 한 번도 그 아이에게 소리를 지른 적이 없었다.
늘 차분했고, 논리적으로 말하려 노력했다.
그런데 무섭다고 했다.
그 말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아버지도 아마 내게 그런 사람이었겠지.
화를 내지 않아도 무서운 사람.
말없이 있어도 긴장되는 사람.
그게 단단함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나는 그날 밤, 처음으로
아버지의 방식에 질문을 던졌다.
“단단함은 언제부터 무서움이 되었을까.”
“아버지는 그걸 알면서도,
계속 그렇게 살아야 했던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분은 세상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단단함만이 유일한 무기였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상처받는 대신,
먼저 거리를 두는 사람.
누군가에게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스스로 버티는 사람.
그게 아버지의 방식이었고,
그게 나의 기본값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고 싶었다.
단단함을 잃지 않되,
그 속에 온기를 품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요즘은 의식적으로 말을 더 건넨다.
동생이 실수를 해도,
예전처럼 차갑게 지적하지 않고
먼저 물어본다.
“괜찮아?”
“다음엔 같이 해보자.”
그 한마디를 꺼내는 게 처음엔 어색했다.
감정을 드러내는 건 약해지는 일 같았으니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누군가에게 따뜻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강한 사람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아버지는 아직도 내게 말했다.
“세상은 믿을 게 없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미소 짓는다.
예전처럼 반박하지 않는다.
이제는 그분이 왜 그렇게 말하는지 아니까.
그건 냉소가 아니라,
세상을 향한 경계와 자기 보호의 언어였다.
그래서 나는 그냥 웃는다.
그 웃음은 예전보다 조금 부드럽다.
가끔은 내게 이런 생각이 든다.
아버지가 살아온 방식이 틀린 건 아니다.
그분의 세상에서는 그게 정답이었다.
다만, 나는 같은 답을
조금 다른 문장으로 쓰고 싶을 뿐이다.
아버지는 단단함으로 사랑했고,
나는 따뜻함으로 사랑한다.
결국 사랑의 본질은 같지만,
표현의 방식이 다른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그분의 영향을 받는다.
결정을 내릴 때,
어려운 상황에 부딪혔을 때,
머릿속엔 늘 아버지의 말이 먼저 떠오른다.
“냉정하게 봐.”
“감정 섞지 마.”
“끝까지 버텨라.”
나는 그 말들을 완전히 버릴 수 없다.
그건 내 뼛속에 새겨진 문장이다.
하지만 이제는 거기에
나의 문장을 덧붙인다.
“그리고, 네 마음도 지켜라.”
“사람을 너무 두려워하지 마라.”
“상처받아도 괜찮다.”
그건 아버지에게서 배운 단단함을
내 방식으로 사용하는 법이다.
언젠가 퇴근길,
버스 창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며
나는 잠시 웃었다.
그 얼굴이 어딘가 아버지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제야 알았다.
단단함이란,
누군가를 밀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의 다른 이름이었다는 걸.
“아버지, 당신의 방식은 여전히 제 안에 있습니다.
다만 저는, 그 단단함으로 사람을 밀어내지 않고
사람에게 다가가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