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만나다.

문재인 대통령 면담과 대통령의 공식적인 사과

by 걷는파랑새

2017년 8월 8일, 피해자와 가족들은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피해자와 가족들을 청와대로 초대하여 가습기살균제참사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대통령의 첫 공식사과였다.



대통령 면담 일정은 갑작스럽게 잡혔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 가족모임(가피모)과 가습기살균제 유가족연대 대표단을 중심으로 참가자 범위를 정했다. 면담 당일 참석자들은 경복궁 옆 주차장에서 청와대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면담에 참여하지 못하는 몇몇 피해자들과 환경보건센터 활동가들이 피케팅을 하면서 버스에 승차하는 우리 일행들을 배웅하고 응원했다.


청와대 경내로 들어 선 우리 일행들은 준비된 행사장으로 이동해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문재인 대통령이 행사장으로 들어왔고, 참석한 피해자들 한 명 한 명을 찾아가서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청와대 경제수석, 시민사회 수석, 환경 비서관 등 청와대 주요 인사들이 모두 배석했다.


나는 면담을 위해 A4 2장 분량의 가피모 요구안을 작성해 가서 청와대 관계자에게 전달했다. 유가족연대 등 다른 피해자들도 자료를 작성해서 오거나, 편지를 써온 경우도 있었다. 자기소개를 하면서 자신들의 피해상황과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피해자들의 여러 요구사항들을 성의껏 경청했다. 면담시간은 당초 예정했던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더 늘려서 진행되었다. (정확한 시간은 가물가물하다.) 면담이 종료된 후 문재인 대통령과 참석한 피해자 가족들이 함께 단체사진을 촬영하는 것으로 이날 일정이 마무리됐다.




이날 대통령 면담은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특별법이 본격 시행(2017. 8. 9.)되기 하루 전날에 맞춰 진행되었다. 가장 큰 쟁점은 대통령이 사과를 할 것인지와 사과를 할 경우, 그 방식이나 수위였다. 대통령은 사과를 하였지만 정부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행정 수반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의적 사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사과는 정부의 적극적인 구제책임을 담고 있는 정치적 사과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검찰 수사나 국정조사를 통해 공식적으로 정부의 법적 책임이 밝혀진 상황은 아니었기에 법적 책임을 지는 사과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날 면담은 청와대 차원에서 사전에 피해자 요구를 파악하고,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한 후에 잡혔을 가능성이 높다. 피해구제 특별법 시행을 앞둔 상황이었으므로 대통령이 사과를 하고, 정부의 해결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어느 정도 피해자들의 요구에 응답할 수 있게 되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피해자들은 피해대책 활동을 시작하면서 가해기업의 사과와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해 왔다. 이는 당연한 요구였다. 국가와 국가의 수반인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보호할 책임이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가해기업들은 2016년 검찰수사가 시작되면서부터 마지못해 사과했다.




그동안 대통령의 사과는 없었다. 가습기살균제참사가 드러난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세 번째 대통령이었다. 2011년 8월 당시는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정권 후반부였고,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후 들어선 박근혜 대통령도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역시 모르쇠였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농단과 촛불집회로 탄핵되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2017년 8월 문재인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사과하기까지 꼬박 6년이 걸렸다. 뒤늦은 대통령의 사과였지만, 이렇게라도 사과가 이뤄졌으니 다행이었다. 국회의 정치 변화가 국정조사와 특별법을 만들어냈고, 정권 교체라는 정치 변화가 대통령의 사과로 이어졌다. 정권의 성격(?)에 따라 사회적 참사를 대하거나 피해자들을 대하는 것이 달라지는 것은 슬픈 일이다.


대통령의 사과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위로'이다.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며, 국가의 '책임'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피해자와 가족들이 갖고 있었던 마음의 깊은 상처와 응어리를 덜어내 주는 일이다. 국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피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메시지'이며 '의지'의 표현이다. 피해자들이 밖에서 싸우지 않고 법과 제도를 통해 해결해 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대통령의 사과와 특별법 시행에 따라, 향후 피해자들의 활동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