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구제 특별법의 제정과 피해자들의 갈등
국회 국정조사와 청문회를 통해 ‘왜 가습기살균제참사가 발생한 것인지?’에 대한 여러 문제점들이 지적되었다. 청문회에서는 당시 가해기업 대표들이 출석하여 사과했다. 가해기업들은 2016년 검찰 수사가 임박하자 ‘면피용’으로 사과한 바 있다. 국회는 국정조사를 통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드러냈다. 동시에 가해기업을 압박하여 피해구제 문제 해결의 계기를 마련해 갔다.
피해구제는 가해기업들과 정부가 분담금을 납부하여 피해자들에 대해 추가적으로 구제할 수 있는 근거와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폐 손상 피해의 경우 인과관계가 확실한 1,2단계 피해자는 가해기업과 개별적인 소송을 하거나 협상을 통해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3,4단계로 구분된 폐 손상 피해자들은 인과관계를 특정하는 것이 어려워 개별적 보상이 어려웠다. 가해기업이 파산한 경우에도 개별적 보상이 어려웠다.
건강피해의 경우도 폐 손상뿐만 아니라, 다른 장기의 손상도 가능한 상황이었므로 추가적인 질환 판정과 그에 따른 구제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후 도입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특별법은 기존 구제를 포함하여 새롭게 피해구제 범위를 확대하였고 피해구제에 필요한 재원을 기업과 정부 분담금으로 마련하도록 했다. 국회는 피해구제 특별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가습기살균제 시장 점유율과 판매량 등을 고려하여 기업 분담금을 산출했다. 기업을 통한 최초 기금 조성규모는 1,250억 원이었다. 여기에 정부 분담금이 더해졌다.
19대 국회에서 옥시가 50억 원을 기부금으로 내놓았던 것과 비교하면,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당시 옥시 기부금으로 상황이 종료되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아찔하다. 정치적 상황이 바뀌었다는 것 하나만으로 피해구제 등 피해 대책 마련의 환경이 이렇게 달라졌다. ‘정치가 무엇인지, 국회가 무엇인지’를 다시 묻게 되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특별법(안)은 여러 논의를 거쳐서 마련되었다. 기업과 정부의 분담금 부과 방식을 두고도 많은 논의를 거쳤다.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조율해서 마련한 법안이었지만, 피해구제법 제정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입장이 나눠지기도 했다. 국회에서 마련된 피해구제 특별법(안)을 원안대로 통과시키자는 입장과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포함하여 소급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 충돌했다.
피해대책 활동을 해오면서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럭저럭 견딜 수 있었다. 반면 피해구제 특별법 제정을 앞둔 상황에서 피해자들 내부 갈등은 가장 곤란하고 어려운 사안 중 하나였다. 어떤 판단과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에 따른 책임도 따르는 상황이라서 고민이 많이 되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폐 손상 피해 단계와 어느 제품을 사용했느냐 등에 따라 이해관계가 다 달랐다. 건강 피해 유형이나 인과관계에 따라 피해자의 조건이 달라졌다. 가습기살균제 노출과 그에 따른 피해 시기도 오랜 기간에 걸쳐 있었다. 건강피해 양상도 질환별로 피해자에 따라 다양할 수밖에 없었다.
노출과 건강피해 사이에 고려할 변수들이 너무 많은 것이 가습기살균제참사의 특징이다. 이러한 모든 변수들을 고려하여, 즉 피해자들의 모든 요구를 담아서 피해구제 특별법안을 마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20대 국회에서 조성된 유리한 입법의 기회도 놓쳐서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피해구제 특별법 제정을 위해서는 결단해야 했다.
2011년 8월 이후 피해자들의 대책활동은 거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가피모)’이 주도했다. 가피모의 대책활동은 2016년도까지 이어졌다. 소송 대응 등 산발적인 피해자 모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대외적인 대변 활동과 항의활동은 가피모가 맡았다.
2016년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주요 가해기업들이 기존 입장을 바꿔서 적극적인 피해자 보상에 나섰다. 검찰 수사와 재판을 앞두고서 ‘면피’를 하고 형량을 줄이기 위한 꼼수였지만, 해당 기업의 피해자들에게는 ‘가뭄 끝 단비’였다. 이때 등장한 것이 ‘가습기살균제피해 유가족연대’(이하 유가족연대)였다. 이들은 옥시 피해자들의 모임으로써 피해 협상을 위한 협상자로 나섰다.
유가족연대 대표단은 2016년 국회 국정조사 기간에 진행되었던 영국 현지조사에 동행하였다. 옥시 본사와 면담을 통해 옥시 피해자들의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국정조사단의 협조를 통해 레킷벤키저 대표로부터 사과도 받아냈다. 유가족연대는 피해구제 특별법 제정 과정에서도 강하게 입장을 개진했다. 핵심은 징벌적 손해배상 조항의 도입과 이를 소급 적용하는 것이었다.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징벌제와 소급적용은 당연한 요구일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가피모의 대표로서 전체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옥시 1·2단계 피해자들의 경우는 보상 논의가 진행 중이었고, 일부 피해자들은 피해 보상 협의를 마쳐가고 있었다. 반면 그 외 다른 피해자들의 경우는 피해 보상이 요원했다. 피해구제마저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특히 중증 피해자들의 경우는 수술비 마련 등 다급한 사정들도 있었다.
모두를 만족할 수 있는 최선의 법률 제정이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차선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국회 입법과정에서 징벌제 도입과 소급적용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전문위원의 검토의견이 있었다. 해당 조항 도입에 대해 의원들도 소극적이었다.
결국 나는 유가족연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피해구제법 제정에 동의했다. 해당 법안이 설령 ‘반쪽짜리' 법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해도, 그동안 법 제정이 너무 지체되었기에 우선 도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피해구제 특별법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거쳐, 법사위원회에 회부되었다. 피해구제기금 부과 등 여러 쟁점이 있는 법안이었고, 유가족연대 등 일부 피해자들의 반발이 있는 상황에서 법사위원회 통과를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법안 심사가 있는 당일 법사위 회의장 밖에서 출입구를 지켰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유가족연대 대표들도 반대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왔다. 피해자들끼리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가슴 아픈 상황이었다. 근처에 오지 못하도록 나는 엄포 아닌 엄포를 놓기도 했다. 오고 가는 의원들이나 국회 직원들이 법사위 출입구 앞에서 벌어지는 피해자들 간에 대치 상황을 안타깝게 지켜봤다.
법사위 여야의원들도 해당 상황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소관 상임위에서 합의된 법안이었고, ‘징벌제와 소급적용’과 같은 쟁점 조항을 법사위에서 추가하는 것은 사실상 무리가 있었다. 이런 이유로 해당 법안이 법사위에서 뒤집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가족연대 등 일부 피해자들의 반대 목소리가 있는 사안이었으므로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다행히 해당 법안은 법사위를 통과했고, 이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나는 피해구제 특별법 통과로 큰 시름을 놓았다. 그동안 해온 가습기살균제 피해대책 활동의 ‘큰 획’이 그어졌다고 생각했다. ‘이제 활동을 그만해도 되겠다. 이제 본래의 내 자리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유가족연대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기에 피해자들끼리 대치하는 불미스러운 상황까지 감수한 것에 대해서도 마음에 크게 걸렸다.
피해자들은 무리가 있더라도 가장 높은 수준의 요구를 해야 하고, 그것이 피해자들에게 최선이며, 피해자를 대변하는 사람은 그래야 한다는 것도 모르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요구가 무리하다면, 국회가 국회의 책임감을 통해 알아서 조정했을 것이다. 피해자 모임을 맡고 있던 내가 나서서 법안에 대해 한계를 짓고 법안이 통과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한 것이 적절한 선택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피해자들의 반대로 법이 무산되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는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피해대책 활동을 해오면서 가장 힘든 기억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