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소야대’ 20대 국회의 시작과 국정조사특위
19대 '여대야소' 국회는 가습기살균제참사 피해구제 문제를 해결하는데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20대 국회는 2016년 5월 30일부터 시작되었다. 20대 국회는 ‘여소야대’로 재편되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참사로 국민들은 20대 총선에서 정부와 여당을 심판했다.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가 여소야대 국회를 만들었다. 다수 야당이 ‘정치적 힘’을 갖게 되었다. 야당 의원들은 가습기살균제참사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2016년 상반기가 검찰 수사와 옥시 불매운동으로 가습기살균제참사 여론이 뜨겁게 달궈졌다면, 2016년 하반기는 20대 국회가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를 진행하면서 문제해결의 전면에 나섰다. 19대 국회와 비교하여 확연하게 달라진 20대 국회 모습을 보면서 정치 변화와 정치적 힘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20대 국회는 2016년 7월 6일 ‘가습기살균제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마련을 위한 특별위원회’(이하 국정조사특위)를 구성하고 조사계획서를 채택했다. 국정조사특위는 현장조사(7.25-8.12), 기관보고(8.16-8.18), 청문회(8.29-8.30), 종합기관보고(9.2), 영국 현지조사(9.20-23)를 진행했다. 영국 현지조사에는 국정조사 위원 5명과 옥시 피해자 등 피해가족 7명이 동행하였다. 국정조사특위 활동은 사건의 진상을 드러냈고, 가해기업의 사과를 받아냈다. 피해구제 특별법을 마련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나는 피해대책 활동을 하면서 간혹 놀라운 경험들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열릴 것 같지 않은 문들이 열리는 경험이었다. 피해 문제 해결을 요구하면서 ‘두드려야 할 문’들이 여럿이 있었다. 다급하니까 두드려 보고, 두드려야 하니까 두드렸다.
국정조사특위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요구했다. ‘요구한다고 해서 설마 되겠나.’ 하는 의문과 불안이 늘 따랐다. 문제 해결의 벽은 높은데, 우리들의 역량이 미치지 못한다고 느꼈다. 그동안 해결되지 않는 상황으로 인해 불신도 있었다. 20대 국회가 여소야대로 바뀌었다고 해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상하지 못했다.
가습기살균제 문제 해결을 지원해 왔던 정의당 심상정 의원실의 박항주 보좌관이 ‘팁’을 주었다. 다수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적극적으로 압박하여 특위 설치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한다.’것이었다.
물론 당시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자체적으로 가습기살균제 문제해결을 위한 국회특위를 구상하고 있었다. 우원식 원내대표도 가습기살균제 문제해결을 원내대표 공약으로 내세웠다. 나는 내가 사는 지역의 지역구 의원이었던 당시 더불어민주당 이언주 의원을 통해 당 특위 구성을 요구했다. 이 의원은 적극 나서주었다.
상황이 상황이었고, 기회가 기회였다. 국정조사특위의 ‘문’을 열기 위해 피해자 가족들과 함께 국회를 부지런히 쫓아다녔다. 여야 원내대표단을 찾아 면담을 다녔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의원회관 사무실을 찾아다니며 읍소했다.
피해자모임(가피모)은 2016년 5월 9일 더불어민주당 당시 김종인 대표와 가습기살균제참사 대책특위 양승조 위원장 앞으로 ‘가습기살균제 참사 관련 피해대책 및 재발방지대책 요구안’(이하 요구안)을 전달했다.
요구안을 통해 국회가 진정성을 갖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여 줄 것, 청문회와 국정조사를 통해 진상조사, 진실 규명,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이러한 내용이 포함된 ‘가습기살균제 특별법’을 요구했다. 정부와 기업의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 이외에도 요구안에는 세부적인 많은 요구사항들이 있었다.
5월 23일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를, 5월 25일 국민의 당 박지원 원내대표를, 5월 31일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를 면담했다. 각 당의 원내대표를 찾아 국회 특위 구성과 피해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6월 7일 환경부 정연만 차관을 면담하고 피해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이러한 활동은 효과가 있었다. 각 당에서 가습기특위가 구성되는 흐름이 형성되었다. 각 당의 특위는 당 차원에서 토론회를 여는 등 공론화를 이어갔다. 야당 주도로 국회특위에 대한 요구가 제기되면서 여당도 압박을 받게 되었고, 결국 국정조사특위가 구성되었다.
‘반신반의’했던 국정조사특위가 구성된 것도 신기한 일인데, 여기에 다시 ‘행운’(?)이 따랐다. 국정조사특위를 '누가 이끌 것인가'가 중요했다. 가능하면 그 분야에 전문성이 있고, 힘이 있는 이가 전면에 나서주면 좋다. 우원식 의원이 국정조사특위 위원장을 맡았다.
우원식 위원장은 20대 국회에서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 첫 원내대표를 맡고 있었다. 환경분야, 노동분야에서 전문성과 소신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의원 중 한 명이었다. 당 을지로위원회 활동을 통해 서민과 약자를 대변해 왔다. 우원식 의원의 000 선임보좌관도 환경단체 출신으로 환경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높았다.
우원식 의원이 위원장으로 선출된 만큼 국정조사특위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국회 밖에서는 검찰 수사를 통해 많은 것이 드러났다. 이로 인해 피해자들과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옥시 불매운동이 거셌다. 모든 국면이 달라졌다. 우원식 의원은 판을 크게 ‘세팅’했다. 피해자들과 간담회와 토론회 등을 통해 가능한 많은 요구들을 수용했다.
나는 피해자 모임 대표로서 국정조사를 앞두고 국회에서 열린 여러 토론회에 적극적으로 참석해서 국정조사에 바라는 것들을 전달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6년 7월 11일 국회에서 개최된 ‘가습기살균제 재난 국정조사 어떻게 할 것인가–숨겨진 진실, 가습기살균제 원인과 책임-’이었다. 신창현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김삼화 국회의원(국민의당), 이정미 국회의원(정의당)이 공동주최한 토론회였다.
나는 이 토론회에서 제1발제를 맡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의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 요구사항’을 발표했다. 발제를 통해 가습기살균제 피해 문제 해결의 원칙을 제안했다. 피해구제를 방치함으로써 피해자의 인권과 생명권이 외면당했다고 주장했다. 조속한 피해자들의 원상회복을 요구했으며, 피해자 구제를 최우선의 원칙으로 삼을 것을 요구했다. 시간이 경과한 만큼 이 사건의 특성에 맞게 피해구제의 새로운 사회적 합의기준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이어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특별법 제정, 정부와 가해기업의 진정 어린 사과, 건강피해를 포괄적으로 구제할 수 있는 건강영향피해조사위원회 구성과 구제기준 마련을 요구했다. 폐 손상뿐만 아니라, 다른 장기의 건강피해 기준을 마련하고 판정을 서둘러 줄 것을 요청했다.
3,4단계 피해 문제 개선 등 모든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지원 방안을 요청했다. 기존 판정도 서둘러 진행해 줄 것을 요구했다. 피해자 찾기와 전수조사 등을 통한 실태조사를 요구했다. 화학물질 노출에 따른 건강피해를 모니터 하고 상담과 치료를 할 수 있는 중독센터, 화학물질건강센터를 요청했다.
피해자들의 트라우마, 정신건강 지원을 요청했다. 피해자단체 지원, 기업이 파산한 경우 피해자 지원방안, 가해기업 기금/분담금 조성 및 배분을 위한 공익위원회 설치 및 가해기업배상협의회 운영, 가해기업의 재발방지 대책 마련 및 공표 그리고 이행감시 방안 마련, 생명안전 및 재발방지와 추모사업을 위한 가해기업의 생명안전기금 설치를 제안했다. 그 외 중대재해기업처벌 강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집단소송제도 도입, 유해화학물질 규제 강화 등 제도개선을 요구했다.
이외에도 2016년도에는 국회에서 진행하는 여러 토론회에 부지런히 참석했다. ‘인명피해 야기 기업 처벌법 입법 토론회’(주최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6.15), ‘가습기살균제 재발방지, 제도개선 대책’(주최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특위 야당특위위원, 10. 26),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 대책, 충분한가?’(주최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국민의당 김삼화 의원・정의당 이정미 의원,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발암물질 없는 사회 만들기 국민행동, 12.12) 등.
2016년은 가습기살균제 문제해결의 가장 큰 변곡점이 되는 시기였다. 토론회나 언론 인터뷰 등 기회가 닿는 대로 피해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2016년은 피해자 모임의 대표로서 가장 바쁘게 활동했던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