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불붙은 옥시 불매 소비자운동
2016년 검찰 수사로 대표적인 가해기업 옥시레킷벤키저의 행태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피해자들과 국민들은 ‘뿔’이 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문제가 해결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믿고 싶었고, 믿기도 했다.
검찰 수사로 드러난 실체는 전혀 달랐다. 옥시는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서 협박하고 우롱하고 있었다. 옥시는 2011년 8월 정부가 밝힌 역학조사 결과마저 부정하고 뒤집으려고 했다. 옥시는 국내 최고의 로펌을 소송 대리인으로 내세워서 피해자들과 맞섰다. 옥시의 협박과 회유에 개별적인 소송에 나섰던 피해자들은 흔들렸고, 일부는 회유당했다.
가해기업들은 옥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굴지의 국내 대기업들이 관여되어 있었다. 이들은 옥시 뒤에 숨어 있었다. 숨어 있기만 했던 것인지, 아니면 뒤에서 협잡하고 있었는지 진실은 모른다.
2016년 검찰수사 결과가 드러나기 전까지, 이런 사실을 몰랐던 피해자와 국민들은 속았다고 분노했다. 이 시기를 어떻게 평가하고 바라봐야 할까. 피해자는 피해자대로 고통받았고,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호갱’ 취급을 당한 것은 아니었을까.
가습기살균제참사는 기업이 만든 소비자 제품을 사용하고, 소비자가 피해를 입은 전형적인 소비자 문제였다. 참사가 처음 드러난 당시에는 소비자단체들은 가해 기업과 소비자들 간에 통상적인 분쟁처리 절차를 따랐다.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했고, 소비자분쟁조정 절차를 밟았다.
나는 이런 상황이 잘 납득되지 않았다. 소비자단체들이 상황을 다르게 봤어야 했고, 다르게 대응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즉 소비자단체들은 통상적인 대응 방식 외에도 이후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었는지 적극적으로 모니터링을 했어야 했다. 피해구제가 지연되고 있었다면 피해자들과 함께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어야 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소비자단체들 활동소식은 잘 들리지 않았다. 내 눈에만 그랬던 것이었을까. 주관적 판단이었고, 개인적 서운함이었지만, 당시에는 그랬다. 알 수 없는 답답함이 한 곳에 있었다.
2016년 검찰수사로 옥시의 추악한 모습이 드러났을 때, 상황은 ‘반전’되었다. 잘 보이지 않았던 소비자단체들의 모습이 전면에 등장했다. 이들은 ‘옥시 불매운동’으로 모였다. 옥시 불매운동에는 소비자단체연합 등 소비자단체와 함께 환경운동연합, 참여연대, 경실련 등 국내 굴지의 시민사회단체들이 합류했다.
2016년 4월 25일 광화문광장에서 37개 시민사회단체들이 참여하여 옥시불매운동을 알리는 첫 기자회견(‘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 기업 처벌촉구와 옥시상품 불매선언’)을 진행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소비자단체 10곳이 참여해 그 위용을 과시했다. 언론들의 취재열기도 뜨거웠다.
이날 기자회견은 옥시불매 선언과 함께, 가해기업의 제품을 수거하여 폐기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불매’를 상징적으로 표현하여 눈길을 끌었다. 당시 기자회견장에 참석했던 나는 발언을 통해 “(가습기살균제 피해대책) 활동을 시작하면서 가장 기대했던 변화가 검찰의 수사와 소비자 불매운동이었다.”라며, 격한 감동의 소회를 밝혔다.
이후 옥시 불매운동은 더욱 규모가 확대되었다. 2016년 5월 9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2차 옥시불매운동 기자회견이 진행되었다. 참가 단체 규모도 50여 개 단체로 확대되었다. 참가단체들은 5월 10일부터 16일까지 일주일 동안 ‘옥시제품 집중 불매운동’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각 참가단체들은 이 기간 동안 옥시 제품을 집중 수거하여, 2차 집중 불매운동 마지막 날인 16일에 여의도에 있는 옥시 본사 앞에 전시하겠다고 밝혔다.
나는 이날도 발언을 통해 “옥시 불매운동이지만, 정부와 국회가 제대로 하지 않으면 정치권에 대한 불매도 나서달라.”라고 호소했다. 지난 1차 불매선언 기자회견 때보다도 감정이 더욱 뭉클했다. 나는 그동안 '소비자단체나 시민단체들의 힘이 왜 가습기살균제참사로 모이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가습기살균제참사에 다시 불이 붙었고, 꿈에나 그렸던 ‘소비자 불매운동’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더욱이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옥시불매운동에 함께 참여하면서 그동안의 서운함과 답답함이 사라졌다. ‘고마움과 연대의 감정’이 격하게 올라왔다. 피해자 가족의 대표이자 당사자로서 느끼는 감정이었다.
스스로 무든 감정의 소유자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날은 큰 감동을 느꼈다. 다수의 힘이 주는 힘 때문이었는지, 불매운동이라는 특성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나도 모르게 지쳐 있다가 이때부터 ‘판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어떤 자신감이 생겨서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옥시불매운동 3차 선언은 2016년 5월 31일 여의도 옥시 본사 앞에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이제 옥시는 끝났다.’라며, 옥시 불매운동의 성공을 대외적으로 선언했다. 이로써 한 달여 동안 진행된 옥시 불매운동의 여정이 일단락되었다. 참여단체는 83개로 늘었다.
이 기간 동안 옥시 불매운동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환경단체와 소비자단체들이 주도했다. 공공기관도 가세했다. 당시 故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6년 4월 28일 페이스북 1인 생방송을 통해 광역단체장으로서는 처음으로 ‘옥시 제품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옥시불매는 누리꾼들을 통해서도 퍼졌다. 어떤 동네 약사는 개별적으로 옥시 불매를 선언했다. 2016년 옥시 불매운동은 대한민국 소비자운동과 환경운동의 역사에서 기억될 만한 활동이었다고 나는 평가한다.
옥시 불매운동 참가단체들은 2016년 5월 23일 그동안의 옥시 불매운동을 평가하는 회의를 진행했다. 이날 논의 자료를 통해 “옥시불매 운동이 전 국민과 전 지역의 운동으로 활성화되고 있으며, 옥시의 매출이 급감하고 있다. 대형유통업체나 온라인, 편의점에서도 옥시 물품에 대한 주문이 줄고 있다. 옥시 불매 운동이 직접적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국회나 전문가 등을 중심으로 법과 제도 등 안전사회에 대한 요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