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스펙보다 중요한 것은 ?
게임 마케팅 단톡방에 재밌는 링크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디지털 마케팅 대행사(모비데이즈) 인턴 채용공고였는데, 전형 중에 '덕후전형'이라는 게 있었어요.
처음엔 웃기다고 넘겼어요. 덕후를 뽑아서 뭘하려는거지?
근데 한참을 생각하다 보니, 이게 타이밍이 묘하더라고요.
경력 5년 이상. 우대사항: AI 활용가능자
신입이 낄 틈이 없습니다. 체감으로 아는 사람은 이미 알겠지만, 숫자로 보면 더 노골적이에요.
개발직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마케터도, 기획자도, 이제 경력직 시장이에요. 이유는 간단해요.
신입/주니어가 하던 일 (자료 정리, 리포트 초안, 뉴스 클리핑, 데이터 정리) 이걸 이제 AI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하니까.
연봉 3천 주고 신입 교육시키는 것보다, 월 2만원짜리 구독이 효율적이라는 계산이 나오기 시작한 거예요.
(심지어 CPA등 전문직 자격증을 가진사람도..)
그러니까 지금 시대에 "인턴을 뽑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사실 꽤 의도가 담긴 것 같아요.
인턴/신입을 왜뽑을까? 그리고 왜 '덕후'일까.
잠깐 생각해봤습니다. AI가 잘하는 거.
패턴 인식, 요약, 번역, 코드, 반복 작업. "이 데이터로 리포트 뽑아줘" 딸깍 하면 2분이면 나와요.
그럼 AI가 못하는 건?
"이 게임 3스테이지 보스전이 왜 유저들한테 호불호가 갈리는지" 체감하는 것.
커뮤니티 밈 하나가 어떤 맥락에서 나왔고, 왜 지금 터지는지 냄새 맡는 것.
아이돌 팬덤에서 '마스터'와 '홈마'의 차이가 브랜드 콜라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아는 것.
이건 머글의 시선에선 프롬프트도 잘 쓸 수 없어요.
수천 시간을 직접 좋아하고, 파고들어야만 쌓이는 감각이니까.
덕후전형이라는 게 결국, "AI가 절대 대체 못하는 영역을 가진 사람"을 뽑겠다는 선언인 것 같아요.
"좋아하는 걸 해라"는 말, 예전에도 있었잖아요.
근데 현실은 달랐어요. 게임에 미친 사람이 게임 마케터가 되려면, 게임 지식 말고도 엑셀이랑 GA4도 해야 했고요. 덕질의 깊이가 대단해도 그걸 비즈니스로 연결하려면 전혀 다른 스킬셋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성공하는 덕후는 소수였어요. 좋아하는 것과 돈 버는 것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었으니까.
근데 그 거리가 지금 급격하게 줄고 있어요.
엑셀? AI가 해줍니다. 데이터 분석? 프롬프트 하나면 돼요.
리포트 초안? 2분이면 나오고요. 경쟁사 클리핑? 자동화 가능합니다.
덕질과 비즈니스 사이를 가로막던 '실무의 벽'을 AI가 낮춰버린 겁니다.
예전에는 "좋아하는 거 있어? 좋아, 근데 엑셀은 해?"였다면,
이제는 "좋아하는 거 있어? 좋아, 나머지는 AI가 도와줄게"가 되는 거예요.
마케팅이 결국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잖아요.
데이터는 "20대 남성이 이 게임에 평균 47분을 쓴다"고 알려주지만,
그 47분 안에서 유저가 어떤 순간에 흥분하고, 어떤 순간에 이탈하는지는 직접 해본 사람만 알아요.
AI는 감정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지만, 감정을 '가질' 순 없습니다. 새벽 3시에 눈이 번쩍 뜨이는 그 감각.
커뮤니티에서 "이거 왜 아무도 얘기 안 해?" 하고 글을 쓰게 되는 그 충동.
이건 학습이 아니라 경험에서 오는 거고, AI가 가장 흉내 내기 어려운 영역이에요.
덕후전형이 재밌었던 건, 이걸 채용 전형으로 공식화했다는 점입니다.
"스펙 대신 덕력"이라는 한 줄이, "AI 시대에 뽑아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한 꽤 진지한 대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I가 대단한 건 맞는데, 결국 AI는 조합기입니다. 기존에 있는 데이터를 학습해서 "이 맥락에선 이런 말이 나올 확률이 높다"를 계산하는 거지, 아무것도 없는 데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건 아니에요.
창의적으로 보이는 결과물도 결국 누군가가 만든 원본의 재조합이고요.
그러면 그 원본은 누가 만드느냐.
커뮤니티 밈, 팬 번역, 리뷰, 공략, 2차 창작, 떡밥 정리, 입덕 가이드... 이런 걸 아무 대가 없이 새벽까지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찐덕후들이요.
AI가 "이 게임 커뮤니티에서 이런 반응이 많습니다"라고 요약할 수 있는 이유는, 누군가가 그 반응을 처음 만들어냈기 때문이에요. AI의 학습 데이터를 실질적으로 공급하는 사람들이 덕후인 셈입니다.
AI는 조합한다. 덕후는 조합할 원본을 만든다. 이 구조에서 누가 더 대체 불가능한지는 꽤 명확하지 않나요.
단톡방에서 링크 하나 보고 여기까지 왔어요.
솔직히 4년차인 저한테도 찔리는 얘기입니다. 실무 스킬은 쌓이는데, "나는 무엇에 미쳐있는가?"라고 물으면 바로 답이 안 나와요. 리포트는 빨라졌고, 광고 세팅은 능숙해졌는데, 그거 AI도 하는 일이잖아요.
물론 덕질만 하면 다 되는 건 아니에요. "게임 1만 시간 했어요"가 곧 "게임 마케팅 잘해요"는 아니니까.
좋아하는 걸 아는 것과 그걸 성과로 바꾸는 건 여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근데 적어도 방향은 보이는 것 같아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보다 "무엇을 깊이있게 좋아하는가"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
그게 허튼 소리가 아니라, 진짜 구조적으로 그렇게 되고 있다는 거.
이건 오늘 글의 주인공 모비데이즈 덕후전형 공고인데
미쳐있는 것이 있는 여러분들께 바칩니다.
https://recruit.mobidays.com/2f8426b6-1626-80ca-a1b8-ddfaeab7b2b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