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

낮잠과도기의 후폭풍

by 반짝반짝 민들레

어제부터 오늘까지.

정말 숨이 가쁘다.


어제 하원할 시간에 맞춰 옷을 갈아입으려고 하던 참에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아이들 담임선생님이었다.

"네, 선생님. 지금 하원 가려는데요. 무슨 일이세요?"

선생님은 하원 시간에 말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며 전화로 미리 전달해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도대체 또 무슨 일일까.


자유 놀이 시간에 냐냐가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단다. 그런데 야야가 가위를 들고 와서는 느닷없이 냐냐가 그림 그리던 종이를 자르려고 했단다. 냐냐는 "하지마!" 라고 네 번이나 외쳤다고 한다. 그런데 거기에 화가 난 야야는 냐냐의 머리채를 잡고 놓질 않았다고 한다. 선생님께서 제지하셨지만 야야는 머리채를 휘잡은 손을 놓지도 않고 계속해서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단다. 그때문에 냐냐의 머리칼은 꽤 뽑혔다고 했다.

나중에 선생님께서 야야에게 왜 그랬냐고 물어보셨는데 야야는 울기밖에 하지 않았단다. 추후 냐냐에게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는 했다고 했지만, 그리고 엄마와 아빠에게는 절대 비밀이어야 한다고 신신당부 했다고 했지만... 나는 모른척 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 제가 아이를 좀 훈육해도 될까요? 아이가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기에..."

"네, 그럼요. 그래야 가정에서도, 원에서도 '이런 행동은 안되는 거구나' 알 수 있을 거예요."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하원 전에 애들아빠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하원을 하거든 냐냐와 애들아빠는 데이트를 가라고 했다.

야야는? 나는 이때만큼은 야야에게서 좋은 걸 하나 꼭 빼앗고 싶은 마음이 매우 컸다.

하원을 하는 아이들의 표정에 살짝 긴장감이 보였다. 나는 얼른 냐냐를 아빠에게 넘겼다.

"냐냐야, 아빠랑 잘 놀고 와."

야야는 금방 울상이 되더니 곧 터졌다.

"나도 냐냐처럼! 나도!"

"야야, 친구를 아프게 한 아이는 재밌는 걸 할 수 없어. 넌 엄마랑 집에 가야해. 왜 그런지는 알지?"

야야는 쉽사리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야야 옆을 지나가던 어르신분들은 왜 아이가 이렇게 우냐며 한 말씀씩 하셨다. "혼나는 중이에요." 딱 한 마디만 하고, 눈은 계속 야야를 지켜보았다. 개중엔 아이가 우는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고 싶으셨는지 가까이 다가오시는 분도 계셨고, 그땐 야야도 창피한지 내 뒤로 숨었다. 아이가 우는 게 화가 나는 게 아니라, 숨 쉬듯 무례한 그런 분들 때문에 눈알이 빠질 것 같이 화가 났지만 우선은 이를 악물고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야야는 냐냐처럼 아빠랑 놀고 싶다며 울음을 쉽게 거두지 않았지만 내가 뜻을 굽히지 않으니 나중엔 울음을 그치고 그냥 내 손을 잡고 걷기만 했다.

"그런데 야야, 아까 어린이집에서는 냐냐한테 왜 그랬어?"

물어보았다. 알고 싶어서.

"지금은 말 하고 싶지 않아요." 그렇단다. 그래서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오늘은 하원 직후부터 야야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선생님, 아이들 낮잠 잤나요?" 오전 7시 전에 깬 아이들이 오늘은 체육수업도 있고 졸린 감기약을 먹으니 낮잠을 잤겠거니, 하고 여쭤봤지만 낮잠을 자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구나. 그래서 표정이 좋지 않았구나. 2차전 각오 단단히 해야겠다, 생각했다.

나는 냐냐와 둘이 손을 잡고, 야야는 이모와 둘이 손을 잡고 각각 공원을 반대편으로 해서 돌았다.

그리고 만나는 지점에서 파트너를 바꾸어 집으로 가기로 했다.

"오늘은 어린이집에서 뭐가 제일 재미있었어?"

"......"

대답이 없었다. 질문을 바꿔서 야야가 좋아하는 케이크 이야기를 꺼냈다.

"야야, 케이크중에 뭐가 제일 맛있어?"

"......"

"야야, 엄마가 질문하는데 뭐해?"

"다른 걸 보고 가는 중이에요"

"뭘 보고 있는데?"

"풀이요"

그렇다기에 그냥 더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차가 다니는 길에서 갑자기 집에 가지 않을거라며 내 손을 자꾸 놓으려고 했다. 나는 억지로 아이를 잡아끌었다. 하원 차들이 많이 지나다녀서 위험했다.

집 앞에서는 갑자기 주저앉더니 오리걸음으로 걸어다니겠다며 뒤뚱뒤뚱 오리걸음으로 걸어갔다.

"그래? 그럼 계단도 그렇게 올라가봐."

이렇게 말하자 야야는 갑자기 냅다 짜증을 냈다. 그건 안될 것 같았나보다.

겨우겨우 집까지 와서는 신발도 벗지 않고 하의부터 벗으려고 발버둥을 치더니, 맘대로 벗겨지지 않자 내게 짜증을 확 쏟았다. 그 순간, 나는 내 머릿속 퓨즈가 치익 타버린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같이 짜증냈다.

"너 지금 뭐하는거야? 아까 밖에서부터 넌 안되는 행동만 하고 있어!"

야야는 내게 소리 지르지 말라며 울었다. 하지만 이미 뱉어버렸고 난 걷잡을 수 없었다.

"그만 징징대! 아까부터 하지 말라고 했지?"

야야에게 짜증을 내며 소리지른 그 순간 내 마음은 그냥 될 대로 돼라, 였던 것 같다.

축농증으로 밤새 기침하느라, 야야가 내 옆에 와서 날 가로질러 자느라 수면도 엉망이었고, 그렇다고 낮잠을 자거나 푹 쉰 것도 아니었고 나도 그 순간엔 미칠 것 같았다. 마치 내 몸과 내 신경이 아이를 향해 방어기제를 마구 뿜어내는 것 같았다. 알고 있었지만 화를 멈출 수가 없었다. 그 때 애들 이모와 냐냐가 들어왔고, 난 옆방으로 잠깐 피신해 마음과 정신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한 번 터진 화는 쉽게 사그라들지 못했다.

혼자 들릴듯 말듯 중얼거리면서 화를 토해내며 애들 먹일 저녁을 만들고 있었는데 그 떄 야야가 다가왔다.

"엄마, 응가했어요."

그래. 이제 그만 해야겠다. 못난 마음을 접고 아이와 화장실에 들어갔다.

"야야, 엄마가 너무 미안해. 엄마가 어른인데 어른답지 못하게 너한테 화를 너무 많이 내버렸어. 엄마가 화를 그렇게까지 낸 건 절대 야야 잘못이 아니야. 엄마가 뾰족한 마음을 조절하지 못해서 그런거야. 정말 미안해."

나는 야야를 꼭 안아주며 사과했다. 그러자 야야도 말했다.

"엄마, 아까 내가 짜증 많이 내서 미안했어요. 내가 마음대로 하고 싶었는데 엄마가 못하게 해서 화가 났어요. 그런데 엄마가 화낼 때 도깨비 같아서 무서웠어요."

"그랬구나. 무서운 마음이 들게 한 거, 엄마가 너무 많이 잘못한거야. 용서해 줄 수 있니?"

"네, 그럼요!"

나는 야야와 화해의 뽀뽀를 하고 손을 잡고 화장실을 나갔다.



이 모든 난리는 낮잠과도기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아이들은 만3세 형님이 되면서 낮잠을 잘 때도 있고 안 잘 때도 있다. 요즘은 주로 안 자는 것 같다.

아이들 반에서 우리 애들이 12월생으로 가장 막내이기도 하고, 애들이 아주 아가때부터 잠이 다른 아가들보다 좀 적은 편이라 낮잠을 조금이라도 자주길 바랐는데. 다른 친구들이 그 시간에 자유놀이를 하고 있으니 당연히 같이 놀고 싶은 마음이 크겠지, 싶지만..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집에 와서 난리법석을 피우는 모습을 보면 울컥 화가 난다.

그러니까 잠을 자지 그랬어.


언제 이 지옥같은 과도기가 끝날지 모르겠다. 대체로 한 아이가 발동이 걸리면 다른 아이는 뭔가 그 모습을 반면교사(?) 삼는것인지 얌전히 잘 있어주지만, 둘 다 터질때도 종종 있다. 그 땐 정말 내 인내심의 바닥도 아니고 지하 저 멀리까지 뚫려버리는 것 같은 폭발욕구가 들끓는다.

요즘 공주병도 심해진 야야와 냐냐는 낮잠과도기까지 겹쳐 이 어미를 하찮은 무수리로 만들어 버리기 일쑤다.

언제쯤 끝날까. 공주병은 그래도 귀여우니 봐줄 만 한데, 낮잠과도기는 너무나 고통스럽다.


낮잠이 이렇게 무섭다.

나는 누가 자라고 하면 10분안에 잠들 자신 있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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