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친절을 곡해하지 말 것.
얼마 전 아이들과 등원 중에 같은 반 아이를 만났다.
원 입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등원거부가 조금 있는 아이였는데, 우리 애들보다도 더 큰 아이가 엄마한테 안아달라고 하자 그 어머님은 아이를 얼른 안아주셨다. 나는 그 아이에게 "우리 같이 딸기밭 가자~" 하며 같이 등원을 했고, 어머님께 그냥 인삿말로 "아휴, 힘드시죠?" 라고 했다.
그러자 그 어머님이 이렇게 대꾸하셨다.
"저는 그래도 한명이잖아요."
이 말을 들은 직후, 기분이 확 묘해져서 얼른 가시는 방향으로 가시라고 손짓하고 나는 일부러 길을 반대로 틀었다.
"힘드시죠?" 라는 인삿말에 "저는 그래도 한 명이잖아요." 라는 대답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너는 둘이라 나보다 평소에 더 힘들텐데 무슨 남 힘드냐는 질문이냐, 라는 무언의 대답이었을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냥 "네" 혹은 "괜찮아요" 라고 대답할 수 있었을 텐데 굳이 둥이까지 몰고 들어가는 희한한 물귀신 화법은 무엇일까. 참 대답 독특하게 한다, 싶었다. 그리고 애들 아빠에게 그날 밤 이 이야기를 늘어놨더니 "여유가 없어서 그래." 라고 했다.
여유...
생각해보니 나도 비슷한 경험이 많았는데 잊고 지냈던 것 같다.
몇 달 전, 친정 엄마와 아이 둘을 소아과에 데리고 갔는데, 그날따라 냐냐가 무진장 울어댔다. 집에서 그래도 정신없는데 사람들 많은 밖에서 그러고 있으니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그래서 화가 머리 끝까지 난 표정으로 약국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왔다갔다 하길래 "자리에 앉아." 차갑게 한 마디 던지고 뒤돌아 서 있었는데, 어떤 아이 엄마가 본인 아이와 꿀 떨어지는 장난을 치고 있다가 굳이 내게 말을 걸었다.
"쌍둥이예요?"
정말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던 난 속으로 '보면 모르나' 하고 그냥 일부러 대답을 하지 않았는데, 그런 걸 지나치지 못하는 친정엄마는 그 아이엄마의 질문에 일일이 다 대답을 해 주셨다. 그 상황에선 듣고 있자니 화가 더 치밀어 올랐다. 난 그때 너무 심사가 뒤틀려 있었기 때문에 '저 엄마는 분명 너무 힘든 날 보면서 본인은 우아하게 육아하고 있다는 안도감에 신이 났을 것이다' 라는 말도 안되는 판단을 맘대로 해버렸다. 그리고 집에 가는길에 친정엄마와 대판 싸웠다.
"엄마는 모르는 사람들이 질문하는 거 일일이 답변 좀 달지 마. 나 아까 엄청 열받아 있었던 거 안 보였어? 누구 편이야?"
누구 편이냐니... 지금 생각하면 참 얼토당토않은 말이지만, 그 당시엔 진짜로 화가 단단히 났었다.
엄마는 단지 누군가 질문을 건넸기에 답변을 한 것 뿐이라며 그렇게까지 화를 내는 날 이해하지 못하셨다.
그렇게 엄마와 난 충돌을 했고, 결국 나중엔 내가 사과드렸지만 그때만 해도 솔직히 탐탁지 않았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흐른 뒤, 등원 때 그 어머님의 대답에 내 못난 과거가 생각남과 동시에 성찰까지 된 것이다.
보통의 사람은 나 자신의 힘든 것이 가장 우선인 것 같다.
몇 개월 전 약국에서의 나도 그 상황에선 내가 제일 힘든 사람이었고, 만일 그렇게까지 화가 나지 않았었다면 "쌍둥이예요?" 라는 일상적인 질문에 "아, 네." 라고 일상적으로 대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때의 나는 마치 궁예라도 된 것처럼 남의 마음을 함부로 재단하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이지 처절하게 여유 한 톨도 없었기 때문에 나오는 못난 심보였지 않았나, 싶다.
아침마다 등원 거부를 하는 아이 엄마들의 마음도 그때의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냥 일상적인 "힘드시죠?"라는 질문에 별로 유쾌한 대답을 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아니면.. 그 어머님의 "그래도 저는 하나잖아요."라는 답변이 '애 둘인 너를 되려 응원한다'는 투박하지만 순수한 의미일 수도 있지 않을까.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가며,
역시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옛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싶었다. 여유가 없이는 뭘 하든 좋게는 안 나간다.
다행히 요즘 그 아이는 등원 거부가 많이 줄어든 것 같아 보였다. 이제 그 어머님도 전보다 좀 더 여유가 생기시겠지.
하원이 약 한 시간 남았다.
내 체력 곳간을 30분 정도 충전하고 나가봐야지.
곧 여름이 다가올 것 같은 미지근한 공기가 너무 이르다.
봄도 더 살랑일 여유가 없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