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야, 힘들면 좀 걸어보렴.

이상은 Tempo rubato, 현실은 Presto.

by 반짝반짝 민들레

등원길에는 꼭 집 앞에 있는 공원을 가로질러 가야한다.

이 공원만 그런것인지, 다른 공원들도 그런것인지 모르겠지만 유난히 새들이 많다. 비둘기, 까치, 참새, 또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를 가진 직박구리까지. 아침엔 직박구리 노랫소리를 듣는게 그렇게 상쾌하고 좋을수가 없다. 짧은 등원길이지만 "새 소리 좀 들어봐.", "아저씨들이 풀을 다듬으셨네. 풀 냄새 너무 좋다. 맡아봐." 등등 아이들에게 하나씩은 미션을 준다. 아이들도 그럴땐 곧잘 말을 듣는다.


어느날, 까치 한 마리가 풀밭에서 콩콩콩 걸어다녔다.

"얘들아, 저 까치는 왜 저렇게 걸어다닐까?"

엉뚱한 질문을 아이들에게 던져보았다.

"먹을 걸 찾고 있나봐." 아이들이 말했다.

"그런데 까치는 날개도 있는데 왜 굳이 걸어다닐까? 날개로 날면 더 빨리 갈 수 있고 먹을것도 더 빨리 찾을 수 있을텐데."

등원길에 엉뚱한 생각을 한 번 더 해보라고 질문을 더 내놓았다. 그랬더니 그 뒤에 아이들의 말이 압권이었다. 그 답을 내놓은 아이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내 엉뚱한 질문이 너무 무안해질 정도의 답이어서 오늘 아침에 또 유유히 걸어가는 까치를 봤을때도 그 답변이 바로 생각났다.


"엄마, 까치도 날기만 하면 힘드니까 걸어다니죠."


평생 까치의 마음까지 알아차리지는 못하겠지만, 까치가 인간의 말귀를 알아듣는다면 아이들의 변호에 손을 들어주지 않을까? 내가 까치라면 내 마음을 그렇게 헤아려준 아이들이 너무 고마울 것 같다.


그렇지. 까치에게는 날개만 있는 게 아니라 두 다리도 있으니 날기만 할 게 아니라 두 다리로 걸을 수도 있겠지.

나는 왜 까치든 비둘기든 걸어다니는 걸 보면 늘 '날 수 있는 애들이 왜 저렇게 걸어다닐까?' 라는 생각을 했을까?

아이들의 무해한 유쾌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아이들에게는 자주 "아기는 실수할 수 있는거야." 라는 말을 한다. 그런 말을 할 때는 주로 아이들이 물을 엎질렀을 때, 배변 실수를 했을 때, 혼자 하겠다고 고집부린 일이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았을 때 등 아주 다양하다.

"그럼 어른은 실수할 수 없어?"

아이들이 물어보았다.

"아니야. 아기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실수할 수 있지.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 그치만 어른들은 실수를 하면 자기에게 마음속으로 사과를 해야 해. '나야, 정말 미안해' 이렇게 말이야.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실수했다면 그 사람에게도 사과해야 해. '정말 미안합니다' 이렇게 말이야. 아기의 실수와 어른의 실수는 다른거야."

최대한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게 말해주었다. 이해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으나, 며칠 전 냐냐와 역할놀이를 하면서 '아, 아이들이 그때의 내 말을 이해했구나' 싶은 순간이 있었다.


내가 아기, 냐냐가 엄마역할을 맡았다. 나는 무지막지하게 무논리 떼를 쓰는 척 했다. 냐냐는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하더니 "아가야, 다 울고 이야기하렴. 엄마는 나가있을게."라는 말을 남기고 방을 나갔다. 나는 더 크게 우는 척을 했다. 울음소리가 끊기지 않게 계속 소리내었다. 그러자 조금 있다가 냐냐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나를 안아주며 말했다.

"아가야, 많이 속상했지? 엄마가 화내서 미안해. 아가가 떼를 쓰니까 엄마도 화가 났어. 정말 미안해."

냐냐엄마(냐냐)는 엄마아가(나)에게 결코 화내지 않았다. 그런데 들어와서 달래준답시고 저런 말을 건네니 진짜 엄마인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평상시에 아이들이 종종 무논리 떼를 시전할 때가 있는데, 그때 난 도깨비같이 무서운 얼굴을 하고는 "너, 다 울 때까지 엄마한테 말하지 마. 다 진정하고 말해." 라는 말을 남기고 아이 옆에서 잠깐 떨어져 있는다. 그리고 아이가 좀 진정이 된 것 같으면 먼저 와서 저 말을 건넨다. "많이 속상했지? 엄마가 화내서 미안해. 네가 갑자기 떼를 쓰니까 엄마도 순간적으로 화가 났어. 정말 미안해."


아이들이 내 마음을 알아준 것 같아 너무 고마웠다. 아기는 울 수 있다. 그렇지만 우는 아기 앞에서 화를 내는 건 어른의 실수라고 생각한다. 할 수는 있지만 사과는 반드시 해야 하는 그런 어른의 실수 말이다.

나의 그 별것 아닌 말들이 아이들에게 위로가 되었던걸까? 별 걸 다 기억해준다는 새삼스러움과 동시에 내게도 큰 위로가 되었다.


아이들과 있을 땐 전속력으로 날갯짓만 해왔던 것 같다.

마음이 조급해지고, 울컥 화도 많이 내고. 느긋하게 관망해도 됐을텐데, 숨 좀 고르고 천천히 걸어도 됐을텐데 뭐가 그렇게 큰일이고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몸도 마음도 정신도 바빴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아이들은 내 실수를 알아주고 내 마음을 다 알아주고 위로까지 톡톡히 해주는데.


나는, 까치에게 날개가 있다는 이유로 늘 날아야 한다고 무의식적으로 믿어왔지만, 아이들 눈에는 까치도 가끔은 중력을 온전히 느끼며 걷고 싶은 '지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훤히 보이나 보다.


나도 이젠 조금만 속도를 늦춰보고 싶다.

매일매일 생각이 커나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다.

매일 보아도 질리지 않는 까맣고 커다란 눈동자를 더 가까이서 오래 보고싶다.


그래도 내일 아침엔 또 등원준비 추격전이 벌어지겠지.

하하. 과연 언제쯤 여유롭고 느긋할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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