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장창 깨져버렸습니다.
아이들이랑 같이 식사를 하기 시작한 후부터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식사할 때 쓰는 그릇들을 본인들도 쓰고 싶어했다. 평소 아이들이 쓰는 그릇은 실리콘 흡착식판, 실리콘 흡착그릇, 깨지지 않는 유아 물컵 등.. 깨지지만 예쁜 그릇들이랑은 거리가 멀다.
언제 아이들에게 그릇을 줘야할까, 고민하다가 '깨지지 않는' 그 그릇들부터 오픈을 해보았다.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어 줄 때, 과일을 담아줄 때 등등.
그 '깨지지 않는' 그릇을 꽤 믿었던 것 같다. 점점 아이들에게 그 그릇으로 주는 날이 많아졌다. 물론 아이들도 좋아했다.
토요일 오전, 달걀후라이를 해서 '깨지지 않는' 그릇에 담아주었다. 그리고 나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쨍그랑' 그릇 깨지는 소리가 났다.
아뿔싸. 당장 현장으로 가보았다. 정말이지 '산산조각' 났다는 말이 딱일 정도로 처참하게 조각나서 흩어졌다.
두 아이들은 모두 울었다. 야야는 그 시간에 자석블록을 가지고 놀고 있었는데 쨍그랑 소리에 놀라서 울고, 달걀후라이를 먹던 냐냐는 본인이 그릇을 떨어트렸는데 와장창 깨지기까지 해서 놀라고 좌절감도 들었던 것 같다. 계속 자기가 떨어트려서 깨졌다는 말을 되뇌었다.
자던 남편이 나와서 깨진 그릇을 치워주고, 나는 우는 아이들을 달랬다. 아무도 그릇이 깨질거라고 생각 못한 상황이었다. 아직 유리그릇을 잘 모르는 아이들도, '깨지지 않는' 그 그릇이 깨지는 걸 태어나서 처음 본 나도.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엄마도 아기때 그릇 많이 깼어."
그러자 아이들의 불안온도가 조금은 가라앉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럼 엄마도 그릇 깨고 울었어?"
"응. 놀라서 많이 울었지. 그렇지만 할머니가 괜찮다고 했어."
나의 말을 들은 아이들의 눈망울이 금세 맑게 걷혔다.
"아기는 실수할 수 있으니까?"
"그럼. 엄마가 아기때 할머니도 엄마한테 그 얘기를 해주셨어. 아기는 실수할 수 있다고 말이야."
애들이 혹여 작은 파편들을 밟을까 무서워서 몇번이고 그 주변을 닦았다. 아이들은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다시 달걀후라이를 해줬을 땐 실리콘 그릇에 담아주었는데, 또 그 유리그릇에 달라는 말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깨지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었던 그릇이 허무하게 와장창 깨진 걸 보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그리고 곧이어 그걸 곧이 곧대로 믿은 나 자신에게도 어이가 없어 실소가 나왔다.
그래.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고, AI도 실수를 할 수 있는 마당에 깨지지 않는다고 광고했을 뿐인 그릇이 깨지는 게 놀랄 일인가?
세상은 그렇고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다.
나는 그 그릇이 정말로 안 깨지는 그릇이라 믿고 있었다. 고등학교 가정 실습 시간에 사용하던 그릇이 그 '깨지지 않는'다는 그릇이었는데, 내가 실수로 바닥에 그릇을 떨어트렸는데도 그 그릇이 깨지지 않았다. 무척이나 신기했다. 아마도 그 이후로 정말 그 그릇은 깨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커진 것 같다.
결국 세상은 그렇고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다. 영원히 견고할 것 같은 그 어떤 것도,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그 어떤 것도,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실수 하나에 와장창 깨지고 무너져 버린다. 만물의 나약함을 늘 인지는 하고 있었지만, 정작 내 손으로 쥐여준 나만의 믿음이 산산조각 나는 광경 앞에서 나 역시 철저히 나약한 만물일 뿐이었다. 그래, '절대'가 어딨어.
그릇이야 깨질 수 있다. 오히려 깨진 그릇으로 인해 야야와 냐냐는 마음을 좀 더 단단하게 동여맨 것 같았다. 주말 내내 아기는 실수할 수 있다며 본인들 입으로 면죄부(?)를 남발하고 다녔으니까.
오전의 그 소동 이후, 친정엄마가 내 주말 육아를 도우러 와 주셨다. 따끈따끈한 아침 소식을 전하며 "엄마도 어릴 때 그릇 많이 깼다고 말해줬더니 좀 진정하더라구." 라고 말씀드렸다.
내 이야기를 다 듣고 엄마가 한 말씀 하셨다.
"넌 정말 그릇, 컵 하나 안 깼어. 신기하다니까."
얘들아, 할머니가 그렇다고 하시네.
괜찮아. 엄마가 안 깨고 큰 몫까지 많이 깨도 되니까, 다치지만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