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삶은 변주곡 그 자체.

by 반짝반짝 민들레

나는 변주곡을 좋아하지 않았다. 숨은그림찾기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 둘의 연관성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아마도 '찾는데에 에너지를 쏟는다'가 아닐까 싶다.

대학 때 변주곡을 쓰기 위해 좋아하지 않는 변주곡들을 일부러 이것저것 찾아서 들어보았다. 개중 가장 좋았던 변주곡은 브람스의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였다. 이유는 브람스를 그 시기에 가장 좋아했었고, 브람스의 하이든 주제에 의한 변주곡도 있었지만 오케스트라는 귀가 피곤해서 많이 듣고 싶지 않았다. 마침 과제곡도 피아노 변주곡이어서 헨델 주제 변주곡을 많이 듣고 악보도 꽤 많이 들여다 보았다.

변주곡은 처음 테마가 주어지고 이후 변주는 테마 선율을 어딘가에 은근히 숨겨놓든 대놓고 보여주든 아무튼 이리저리 잘 굴린다. 조바꿈을 하든 모드를 변경하든, 혹은 리듬을 변형시키든 박자를 변환시키든.. 이래저래 변주곡은 작곡가의 아이디어적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는 작품이다. 인생 통틀어 변주곡은 입시 때 레슨선생님의 요구에 몇 번 울면서 써봤고, 대학때 과제라서 써본 것 말고는 손도 안 가고 잘 듣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때 난 왜 바흐 골드베르크는 듣지 않았을까...?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그 즐겨 듣던 쇼팽과 브람스, 그 이후 시대의 작곡가 곡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아마도 전공 특성상 평소에도 음악을 들으면 화성이 신경쓰이고 조바꿈 때마다 귀에 콱 박히는데 낭만주의부터의 음악들은 화성과 조바꿈이 화려하다보니 둥이를 육아하는 현실도 고달픈데 음악으로까지 피곤함을 느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즐겨듣게 된 게 르네상스-바로크-고전 음악들이었다. 그 중 이전과 다르게 정말 좋아하게 된 작곡가가 바흐이다.

인성음악도 나에게는 피로로 다가와서 기악음악을 주로 듣다보니 처음엔 독주악기 연주에 빠졌고, 나중엔 관현악을 즐겨듣게 되다가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듣고 그때부터 일주일에 한두번은 굴드의 1981년 레코딩을 꼭 듣고 있다.


글렌 굴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연주했지만 굴드만큼 와닿는 연주는 내게 없다. 아마도 많은 바흐 애호가들이 굴드를 사랑할 것 같다. 특히 81년 레코딩은 굴드의 말년 연주로, 선율을 따라 호흡하는듯한 굴드의 허밍이 압권이다. 혹자는 굴드의 허밍이 거슬린다고도 하는데, 그건 개인적 취향이기 때문에 그 또한 충분히 존중한다. 나는 굴드의 허밍을 일부러 더 듣기 위해 숨 죽이고 귀 기울이는 편이다.


1955년 레코딩과 1981년 레코딩.

어떤 레코딩이 더 우월하다고 결코 단정지을 수 없다.

55년 레코딩은 정말이지 그 활기가 반짝이다못해 눈부실 지경이다. 연주하는 스피드와 호흡은 마치 우리집 둥이들이 귀 닫고 미친듯이 에너지를 소비하는 모습과도 같다. 듣고 있으면 "얘들아, 엄마랑 같이 가야지!" 하고 아이들을 쫓아다니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만큼 에너지 넘치고 좋은 의미로 숨 가쁜 느낌이 든다.

81년 레코딩은 굴드의 음악 인생을 이 레코딩에 모두 담아놓은 것 같다. 한 청년의 탄생과 그 인생의 서사, 그리고 마지막.

그래서인지 81년 레코딩의 아리아 다 카포는 들을 때마다 진심으로 숨 죽이고 듣게 된다. 마치 남의 인생의 마침표를 귀로 듣는 느낌이다. 너무나 조심스럽고, 너무나 감사한 마음마저 드는 그런 경외로움.


아이들과 함께하는 내 지금의 삶은 55년 레코딩처럼 활기차고 바쁘다. 선율을 따라 허밍하긴 하지만 아이들의 에너지 덕분에 내 그저 그런 허밍은 자연스럽게 묻힌다. 그렇지만 난 그게 되려 고마울 따름이다. 나라는 인간 하나만 놓고 본다면 정말 보잘 것 없지만, 내 옆에 있는 가족들 덕분에 그나마 허밍이라도 내며 살고 있음에 그저 감사하다.


이런 내게도 언젠가 81년 레코딩과 같은 때가 오겠지.

그 땐 좀 더 힘이 빠지고 좀 더 유연해질까?

그 땐 뜻하지 않은 변주에도 긴장하지 않고 잘 어우러질 수 있을까? 나의 '81년 레코딩'이 궁금해진다.


아침마다 듣는 FM라디오에서 골드베르크 테마가 나오면 "엄마가 정말 좋아하는 곡이야. 크게 들어보자." 하고 볼륨을 높인다. 그럼 아이들이 "와, 이 음악 정말 좋다!" 라며 고개를 양 옆으로 가볍게 흔드는 시늉을 한다. 이런 순간들이 너무나 귀하다.


이젠 변주곡이 피로하지 않다. 변주곡이야말로 삶 그 자체인 것 같다. 예상하든 예상치 않든 이미 우리 인생은 변주가 한 가득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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